이 책은 동서고금의 대표적인 마녀사냥들을 소개한다.
고대 그리스부터 최근의 아프리카까지,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제2차 세계대전 중 발생한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은 워낙 잘 알려져 있어서 포함하지 않았다.) 이 책은 "왜 마녀사낭이 일어났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시대와 공간은 다르지만 각지에서 일어난 마녀사냥에는 공통적인 배경이 있다. 우선 전쟁과 재앙 등 사회적 위기가 왔을 때 사람들은 불안을 해소시킬 어떤 것을 찾았다.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을 때 그 집착은 더욱 커진다.
또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거나 전복하려 할 때 전혀 관계없는 것들을 희생양으로 끌어들였다.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 시기에 '마녀'는 어김없이 등장했다. 이러한 문제를 처음 제기하고 경고했던 사람은 이 책에 첫 번째로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다. 그는 역사 이래 최초로 마녀가 되기를 자처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인간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기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 내놓았던 스승의 가르침은 까마득하다.
간과해서는 안 될 또 한 가지는 '마녀사냥꾼'이 된 사람들이다. 강제로 동원되었던 자발적으로 참여했든, 그들은 자기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 하지 않았고, 순박한 농민이나 신실한 성직자조차도 폭력을 거리낌 없이 휘두르곤 했다. 일시적이나마 이성이 마비되면서 악은 그들에게 삼시 세끼처럼 평범해졌고, 평범한 악이 집단화된 행동으로 나타났을 때의 결과는 너무나 참혹했다.
안타깝게도 마녀사냥은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인터넷은 마녀사냥의 온상이 되곤 한다. 익명의 장막에서 사이버 폭력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그 어느 때보다 정보를 접하기 쉬운 시대에, 불확실한 사실을 근거로 불특정 다수가 누군가를 공격하는 현상은 지독히 역설적이다. 또한 최소한의 소통과 공감 능력조차 상실한 '일베' 현상은 집단적 비이성을 가까이에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작가는 책머리를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역사책과 먼 옛날의 풍문으로 듣던 내란의 기억이 이제 현실이 되어버린 지금.
비이성과 불의의 역사를 현실로 목도하고 있는 지금.
작가는 비이성의 역사를 차분히 풀어놓는다.
1. 소크라테스 재판: 소크라테스는 마녀가 되기를 자처한 인물이다. 아테네 시민들은 그에게 죽음을 명령했지만, 이조차 그가 유도한 것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스스로 가장 현명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소피스트와 철학자, 정치인, 그리고 시민에게 "너 자신을 알라."라는 메시지를 죽음으로써 강렬하게 전했다. 한편 그의 죽음은 인류에게 적지 않은 숙제를 남겼다. '민주주의는 인류가 구현한 가장 이상적인 체제'라는 명제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재판을 바라보는 후학들은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수의 결정은 언제나 옳은 것일까?" 제자 플라톤이 주장한 '소수의 결정은 언제나 옳은 것일까?' 제자 플라톤이 주장한 '소수의 철인이 지배하는 철인정치'는 곧 스승의 무덤에 바치는 헌시였다.
2. 로마 대화재와 기독교인 박해: 로마 대화재 당시 기독교인들은 네로 황제의 권력 유지를 위한 제물이 되었다. 이 기독교인 박해 사건은 화재가 권력자들의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나 그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외톨이들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 등, 약 2000년 후에 일어난 일본의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사건과 놀랄 만큼 그 이유와 배경이 비슷하다. 그러나 네로의 계획은 실패했다. 궁극적으로 로마 시민의 동의와 지지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시민들은 기독교인에게 반감을 가졌지만, 잔인한 처형 방식과 죽음을 맞는 기독교인들의 순교자적 태도에 생각을 바꿨다. 네로가 좀 더 치밀했다면 그의 의도는 적중했을지도 모른다. 마녀사냥에 성공하려면 아무리 전제 국가라도 권력자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 동의하는 다수의 존재가 마녀사냥의 성패를 결정짓는 열쇠다.
3. 병자호란과 환향녀: 조선 시대 남성의 이율배반적인 민낯이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난 적이 또 있을까?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으로 희생된 여성들을 보듬어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내쳤다. 사대부들이 떠받드는 유교는 인간의 도리를 추구한다. 삼강오륜은 인간이 지켜야 할 도덕과 윤리를 강조했다. 그중에 하나인 '부부유별'은 남편과 아내에게 각자의 본분이 따로 있으니 이를 잘 헤아리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유교를 이유로 여성들을 거부했으니 이보다 더 극적인 자가당착도 없으리라. 환향녀를 더욱 비극적으로 연출한 것은 시어머니들이다. 여성차별의 이념과 제도가 고착하면서 시어머니의 존재가치는 '아들의 어머니'로 한정되었다.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이 거세된 그녀들은 곧 조선 시대의 자화상이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폐습의 잔병들은 조선이 멸망한 이후로도 사라지지 않았다. "여자니까......"라는 족쇄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4. 중세 마녀사냥: 기독교가 인간의 삶을 지배하던 중세 유럽에서 악마와 계약을 맺은 사람, 즉 마녀의 출현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마녀는 전염병과 기아 및 전쟁 등 사회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불안에 떠는 사람들은 마녀를 죽임으로써 위안을 얻고 대리만족을 느꼈다. 마녀사냥은 사회의 통합 기제였다. 사실 무고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만드는 마녀사냥은 중세 이전에도 이후에도 있었고 현대에서도 비일비재하다. 특히 인터넷은 근거 없이 개인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에 용이한 환경을 제공한다. 이렇게 마녀사냥은 시대적 환경에 적응하면서 진화한다. 마녀사냥은 현재진행형이다.
5. 드레퓌스 사건: 드레퓌스의 유일한 죄는 유대인이라는 것뿐으로, 그는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의 희생양이었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위대한 가치를 경험한 곳이라도 마찬가지였다. 개인이 국가 같은 거대한 권력과 싸우기 위해서는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의 희생이 뒤따라야 했다. 회유와 협박에 굴하지 않은 드레퓌스의 신념에 피카르와 에밀 졸라 같은 양심적인 인물들의 노력이 더해져 결국 '진실과 정의는 승리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낳았다. 그렇지만 진실과 정의는 언제나 승리할까? 인류의 역사를 살펴볼 때 반드시 그렇지는 않았으며 오늘날에도 알려지지 않았을 뿐, 이와 같은 일은 너무 많다. 그래서 우리는 거듭 드레퓌스 사건을 되새김해야 한다. 어쩌면 진실이 밝혀진 드레퓌스는 운이 좋았던 것이다.
6.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대지진이 야기한 정치, 사회적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일본 정부는 조선인을 제물로 삼았다. 당시 일본 사회에서 가장 힘없는 존재였던 조선인이야말로 흠잡을 데 없는 번제의 희생물이었다. 일본 군경은 그들이 방화범이고 살인자라는 유언비어를 은밀하고 조직적으로 퍼뜨렸다. 대재난에 망연자실하던 일본인들은 그 소문의 진위를 가릴 여유가 없었다. 더구나 식민지 조선인은 자신들보다 열등한 민족이었으니,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분풀이하기 적합했다. 졸지에 일본 사회는 '전위적 폭력'의 분위기에 집단적으로 빠졌고, 재앙으로 인한 상실감이 클수록 학살의 잔인함과 범위도 커졌다. 오죽하면 학살을 유도한 당사자가 그것을 말렸을까?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은 인간성이 파괴된 호모사피엔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정부와 민간인의 합작품이었다.
7. 매카시즘: 미국의 보수주의는 '아메리카니즘'으로 표현된다. 청교도적 신념으로 뭉쳐 신대륙을 개척하고 독립 혁명을 이루었으며 자유를 수호했다는 자부심이 아메리카니즘의 정체다.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 미국이 강대국이 되면서 아메리카니즘은 더욱 빛났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세계의 경찰'이라는 명예스러운 의무감까지 부여받았다. 이 아메리카니즘에 이제껏 보지 못한 도전자, 공산주의가 출현했다. 언젠가 위협이 될 이 도전자로부터 미국을 보호해야 한다는 보수주의자들의 강박관념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상업주의에 찌든 언론은 그 강박을 확대 재생산했고, 매카시는 이 모두를 탁월하게 활용했다. 매카시즘은 역사상 가장 포용력이 넓다는 사회에서조차 마녀사냥이 일어날 수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8. 홍위병과 문화 대혁명: '개인숭배'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마르크스는 "아무리 사회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건설에 커다란 공적을 남겼어도 모든 사업, 모든 지도를 한 개인의 수중에 맡길 수는 없다."라고 일갈했다. 그런데 공산주의 국가들에서는 개인숭배가 빈번히 발생했으니 땅속에서 마르크스는 어떻게 생각할까? 문화 대혁명은 개인숭배가 빚은 참극이다. '공산주의 수호'를 짐짓 내세웠지만 실상은 마오쩌둥의, 마오쩌둥에 의한, 마오쩌둥을 위한 각본이었다. 그는 치밀하고 냉정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물러서고 공격할 시점을 정확히 알고 상대편을 철저하게 분쇄했다.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대타를 기용했다. 그로 인해 광란의 홍위병은 역사적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반면 중국에서 마오쩌둥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문화 대혁명에 대한 비난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다.
9. 캄보디아 킬링필드: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자급자족하는 이상향은 인류의 오랜 꿈이다. 전 세계의 많은 철학자와 통치자가 이상향 건설을 시도한 바 있지만, 크메르루주만큼 직접적으로 실행에 옮긴 경우는 드물었고 결과는 비극으로 끝났다. 폴 포트를 비롯한 크메르루주 지도부는 척박한 조국의 현실을 타개하려는 열망으로 뭉친 지식인들이었다. 희생정신도 남달랐다. 그러나 그들은 이상향을 건설하는 데 있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오직 자신들의 방법만이 지름길이자 바른길이라고 믿었다. 그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이념의 노예를 양성하는 일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이념을 주입하자 시골 청소년과 젊은이는 야수가 되었다.
10. 르완다 대학살: 투치족과 후투족의 차별은 르완다 왕국 초기부터 존재했다. 그렇지만 두 인종 간에 증오의 싹이 튼 것은 이방인에 의해서였다. 효율적인 식민지 정책을 실행하기 위한 어처구니없는 인종차별 때문에 르완다는 도마 위 생선처럼 반 토막이 났다. 투치와 후투는 자신들이 왜 링에 올라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하는지 의문을 품지 못하고, 오로지 상대방에게 칼날을 세웠을 뿐이다. 분쟁을 사주한 타인을 보지 못한 점이 르완다 비극의 본질이다. 평범한 개인이 집단의 일원임을 확고하게 인식하면 소속 집단의 사고와 행동에 지배를 받기 십상이다. 폭력을 행사하더라도 '집단'의 이름으로 합리화하고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로 삼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비이성적 기간은 대개 짧게 마련인데, 르완다에서처럼 오래 지속된 이유는 아카주 같은 기득권이 폭력과 분노를 지속적으로 확대 재생산했기 때문이다. 집단적인 인종적 편견도 알고 보면 기득권을 보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각 사건에 대한 구체적 과정을 설명한 후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놓았다. 외면하고 싶은 인류의 어리석음과 어두움, 잔인함.
그리고 그 끝은 각자의 판단이다.
서양의 그리스 사람들은 소크라테스를 죽였고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던 프랑스 인들은 드레퓌스를 극한까지 괴롭혔고
병자호란의 환향녀들을 조선의 사대부들은 죽음으로 내몰았고
서양 중세의 어리석은 민중들은 악마보다 더 악독한 마녀재판으로 죄 없는 사람들을 죽였고
관동 대지진의 유언비어에 속은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을 죽였고
빨갱이 사냥에 눈먼 미국은 그들의 양심을 죽이고 사람들의 입을 닥치게 했고
르완다에서는 최소의 기간에 최대의 학살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기막히게도
그렇게 박해받던 기독교인들은 중세 마녀사냥을 저지른 사람들이 되었고
독일의 나치에 의해 학살당하던 유대 민족은 지금 팔레스타인 민중을 학살하는 주체다.
어쩌란 말이냐?
작가가 차분하게 늘어놓는 이 비이성의 역사들로 하고 싶은 말은 뭐냐?
인간은 성인이 될 수도 악마가 될 수도 있으니 항상 주의할 것?
이런 것인가?
그러면 책을 읽고 있는 나는 또 어떻게 살아야 하나?
가끔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악당들은 인간이야말로 지구를 좀먹는 암종 같은 것이라 모조리 박멸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정말 그런 것 같다.
그러면 나는 지구를 위해서 유서를 써야 하나?
해변가의 모래알 하나에 불과한 내가 뭔가를 하는 것은 의미가 있나?
.......
하지만
그래도
뭔가를 해야 할 것 같다.
누군가는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다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거창한 어떤 희망 따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 지구가 망하는데 할 것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 아닐까?
아닌 게 아니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은가?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는 것밖에....
내 주변의 불의를, 내 자식의 미래를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나마도 하지 않으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