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트(이희영)

by 궁금하다

페인트.


부모 면접의 줄임말이다. parent's interview를 줄여서 페인트,

nation's children을 줄여서 NC, 그래서 고아원은 NC센터.


이런 식이다.

이것은 작가가 '낯설게 하기'를 작동시키는 방식인 것이다.


청소년문학상의 심사위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모가 없는 영유아와 청소년들을 정부에서 '국가의 아이들'로 직접 보호 관리한다는 발상으로 시작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거침없이 달려 나가는 이야기이다. '청소년이 직접 자기 부모를 선택한다'는 문제적인 가정이 이 작품의 핵심이자 독자를 몰입하게 하는 매력 요소이다. 부모를 직접 면접하고 점수를 매겨 선택할 수 있다는 상상은 독자들에게 현실을 전복시키는 쾌감을 선사한다.(정이현, 정은숙, 김지은, 오세란 심사위원)


작가는 가까운 미래. 시기가 특정되지는 않았지만 저출산의 위기가 심각해진 어느 미래를 상상하고 세계를 만들었다. NC센터라는 곳에서, 그곳의 직원들을 가디언으로(줄여서 가디) 설정하고 그곳에 기거하는 아이들을 이름이 없는 존재로(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미성숙한 존재, 1월에 입소했으면 제누, 그리고 숫자 301 이런식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우리 사회의 차별, 편견,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심사위원들의 말처럼 부모를 면접하고 점수를 매겨 선택하는 발상의 전환.(만약 내 아이라면 나를 선택할까에 대한 자신 없음이 나를 이 책 앞으로 끌어당긴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제법 참신한 발상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소설 속에 모든 것들은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주제를 전달하기 위한 설정.

그것이 너무 눈이 띄어서 조금 부담스럽다.


가디언들은 헌신적인 동시에 인간적인 고민을 지니고 있다.

제누 301(주인공)은 영리하고 똑똑한 아이이고 그 범상치 않은 아이가 괜찮은 어른들을 만나서 소통하고 차별과 편견으로 가득 찬 세상이지만 잘 헤쳐나가리라고 상상하게 만들면서 끝이 난다.


결국


내 유년은 회색이었다. 흰색과 검은색 중에서 검은색이 더 많이 섞인 잿빛 회색. 나의 아이에게는 이런 색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노력한다.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다. 사랑한다, 그저 사랑한다, 꾸준히 말할 수밖에. 나는 나 자신에게도 종종 "괜찮아."라고 말해준다. 실수하고 실패하고 틀리고 더디 가도, 고개를 끄덕인다. 누군가 내게 왜 청소년소설을 쓰느냐고 묻는다면 바로 이런 이유를 들고 싶다. 유년 시절의 나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라고. 늦지 않았어, 지금이라도 하면 돼. 괜찮아, 잘될 거야.

소설 속에 나오는 것처럼 내 안에도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가 있다. 그 아이와 놀아 주는 일이 나에겐 글쓰기다.


나는 작가의 말에서 '유년 시절의 나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라는 말에 주목한다.

그리고 작가는 교육이나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해소하는 자신의 이상을 소설로 드러낸 것은 아닐까? 싶다.

소설이 다 그런 거 아니야?

청소년소설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거 아니야?

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따뜻한 위로와 냉철한 현실 인식, 그 사이의 줄타기라는 것은 정말로 어렵다.


예전에 '가버나움'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거기서는 주인공 아이가 부모를 고소한다.

'발상의 전환'이라면 이 소설과 비슷하다 싶은 면이 있다.

그러나 '가버나움'에서 보여주는 현실의 잔인함, 핍진함이 이 소설에서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

SF영화에서 흔히 보았던 희고 깨끗한 공간, 그 속에서 지내는 아이들.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최초의 '발상의 전환'은

어느덧 익숙한 교육 철학의 설교처럼 느껴져서 후반부로 갈수록

조금 재미가 없었다.


착한 소설이라 뭐라 하기가 좀 애매했지만

그래도 어쩌랴.

내 취향이 아닌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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