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한강)

by 궁금하다

언니가 있었다면, 생각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나보다 꼭 한 뼘 키가 큰 언니. 보풀이 약간 일어난 스웨터와 아주 조금 상처가 난 에나멜 단화를 물려주는 언니.

엄마가 아플 때면 코트를 걸치고 약국에 다녀오는 언니. 쉿 조용조용히 걸어야지. 자신의 입술에 집게손가락을 대며 나무라는 언니. 이건 아주 간단한 거야. 쉽게 생각해 봐. 내 수학문제집 여백에 방정식을 적어가는 언니. 얼른 암산을 하려고 찌푸려진 이마.

발바닥에 가시가 박힌 나에게 앉아보라고 하는 언니. 스탠드를 가져와 내 발 언저리를 밝히고, 가스레인지 불꽃에 그슬려 소독한 바늘로 조심조심 가시를 빼내는 언니.

어둠 속에 웅크려 앉은 나에게 다가오는 언니. 그만 좀 해. 네가 오해한 거라니까. 짧고 어색한 포옹. 제발 일어나. 밥부터 먹자. 내 얼굴을 스치는 차가운 손. 빠르게 내 어깨에서 빠져나가는 그녀의 어깨.(언니.p.114.)


이야, 어떻게 이렇게 쓰지? 대단하다.


하지만

이거 뭐 소설이라니까 소설인 줄 알지?


나는 인물, 사건, 배경을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한강이 소설가라는 점 때문에 나는 왠지 모르는 선입견이 있었던 모양이다.

노벨상을 수상한 대 작가의 어렸을 적 추억담(정겹고 아련한) 정도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왜 유명한 사람이 들려주는 어렸을 때의 에피소드들 말이다.

원래 지나간 옛일들은 아련한 슬픔, 구수함, 그리움 같은 것들이 있지 않나?


그리고

그런 걸 기대하고 봤으니 재미있을 리가 없다.

책을 다 읽고서는 어느덧 투덜거리는 내 모습을 본다.


이거 뭔 소리냐?


더군다나 요즘같이 비현실적인 일이 많이 일어나는 현실 속에서,

현기증 나는 현실 속에서,

차분하게 이 소설을 읽기에는 내 호흡이 너무 가빴다.


길지도 않고 여백도 많아서

읽는 시간 자체는 오래지 않았지만,

뭔 소리인지 모르겠는 말들을 읽고 앉았기에는, 약간 고통스럽기까지 한 시간들이었다.

그야말로 내가 제일 싫어한다고 주워섬기던

"내면의 진정성, 비대한 자아"(누가 얘기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의 끝판왕 같은 느낌이다.

문장 자체가 뛰어나지만

아름다운 문장으로 된 알 수 없는 이야기(?)는 좀..... 공허하다.

(알 수 없다기보다는 호흡이 느린 이야기가 맞을 것 같기도 하다)


『흰』은 '흰색'을 중심으로 65편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이야기는 흰색과 관련된 사물이나 개념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성찰합니다. 작가는 흰색을 단순한 색채를 넘어, 순수함과 시작, 동시에 죽음과 비움을 상징하는 다층적인 의미로 활용하여 독자들에게 깊은 사유를 이끌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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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은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삶에서 흰색이 가지는 의미를 재발견하고,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고 평가합니다. 또한, 한강의 섬세하고 서정적인 문체는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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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는 진지한 여러분들이 여러 리뷰를 남겨주셨다.


하지만 나는
내 리뷰에서 쓰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말을 여기에서 쓰고 싶다.


이 책은 내 취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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