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각사를 읽었는데 궁금한 것은 미시마 유키오.
소년은 꿈을 꾼다. 아름다운 꿈이다.
그 꿈은 저 먼 곳의 왕녀일 수도 있고, 세계를 호령하는 영웅일 수도 있다.
소년은 항상 꿈을 꾼다.
왜냐고 물을 필요는 없다. 소년이란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소년은 답답하기만 하다.
현실의 소년은 허약한 데다가 말더듬이, 밤마다 몽정이나 하는, 그야말로 하찮은 미물에 불과하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때 소년은 비뚤어진다.
이것이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금각사의 대충의 흐름이고, 어쩌면 미시마 유키오의 삶이지 않을까?
그만큼 금각사의 구조는 단순하다.
나(미조구치)가 금각사를 불태운다. 그 와중에 밝고 순수한 쓰루카와라는 친구가 있었고, 우울하고 사악하기까지 한 가시와기라는 친구가 있었다.
나(미조구치)는 그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생각이 많아진다. 어떻게 보면 친구들과 만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해 나가는 소년 만화와 비슷하다.(소년의 내면인지, 미시마의 내면인지 모를 복잡해 보이는 사유를 걷어낸다면)
그리고 등장하는 여자들.
그녀들은 나(미조구치)에게 계속해서 좌절을 던져주고, 나(미조구치)는 끝내 자신이 여자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런 그(미조구치)에게 변명이 되는 것이 바로 미, 절대적인 미, 바로 금각인 것이다.
그리고 그 절대적인 이상(미)에 다가갈 수 없음을, 그 절대적인 미라는 것이 현실적인 것이 아님을 알았을 때 그(미조구치)는 금각을 불태워 버리고자 하는 비뚤어진 욕망에 사로잡히고 만다.
나를 태워 죽일 불이 금각도 태워 없애 버리리라는 생각은, 나를 거의 도취시켰다. 똑같은 재앙, 똑같은 불의 불길한 운명 아래에서, 금각과 내가 사는 세계는 동일한 차원에 속하게 되었다. 나의 연약하고 보기 흉한 육체와 마찬가지로, 금각은 단단하면서도 불타기 쉬운 탄소의 육체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때로는, 도망치는 도둑이 고귀한 보석을 삼켜서 숨기듯이, 내 육체의 속, 내 조직 속에 금각을 숨겨 갖고 도망칠 수도 있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소년 시절,
동네에서 가장 예쁜 우이코에게 들이댔다가 실패한 나(미조구치)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날 밤, 우이코의 고자질로, 그녀의 엄마가 내 숙부 집에 찾아왔다. 나는 평소에 온화하던 숙부에게서 심한 질책을 당했다. 나는 우이코를 저주하며 죽기를 바랐는데, 수개월 후에 그 저주가 이루어졌다. 이후로 나는, 남을 저주하는 일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자나 깨나 나는 우이코가 죽기를 바랐다. 증인만 없다면, 지상에서 수치는 근절되리라. 타인은 모두 증인이다. 그러나 타인이 없으면 수치라는 것도 생기지 않는다. 나는 우이코의 모습, 어두운 새벽 속에서 물처럼 빛을 발하며 내 입을 잠자코 주시하던 그녀의 눈 뒤에서, 타인의 세계—즉, 우리들을 결코 혼자 내버려 두지 않고, 자진하여 우리들의 공범이 되며 증인이 되는 타인의 세계—를 본 것이다. 타인이 모두 멸망하여야 한다. 내가 정말로 태양을 향하여 얼굴을 들기 위하여는, 세계가 멸망하여야 한다.…….
그 우이코는 사랑했던 남자를 배신하고 그에게 죽임을 당한다.
달과 별, 밤하늘의 구름과, 즐비한 삼나무 능선이 하늘과 접하는 산, 얼룩 같은 달그림자와 허옇게 솟아 있는 건물, 이러한 것들 속에서, 우이코의 배신이라는 투명할 정도로 맑은 아름다움이 나를 도취시켰다. 그녀는 혼자서 가슴을 펴고 이 하얀 돌계단을 걸어 올라갈 자격이 있었다. 그 배신은 별이나 달, 혹은 창 모양의 삼나무와 동일한 것이었다. 즉, 우리 증인들과 함께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자연을 받아들이는 행위였다. 그녀는 우리들의 대표자로서 그곳을 걸어 올라간 것이다.
숨이 가빠 오는 가운데,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친척 남자와 불륜을 저지르는 엄마.
모기장이 바람에 부풀었다가, 바람을 여과시킨 후, 부자연스럽게 흔들렸다. 그렇기 때문에 바람에 밀리는 모기장의 모양은, 바람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바람과는 관계없이 각도가 변하였다. 다다미를 대나무 잎사귀처럼 비벼 대는 소리는, 모기장 자락이 내는 소리였다. 그러나 바람에 의한 것과는 다른 움직임이 모기장에 전하여져 왔다. 바람보다도 미세한 움직임, 모기장 전체에 잔물결처럼 번지는 움직임, 그것이 성긴 천을 팽팽히 당겨 대며, 안쪽에서 보는 커다란 모기장 전체를 불안으로 가득한 호수의 수면처럼 만들었다.
아버지가 잠을 깬 사실을 안 것은, 기침을 참으려는 호흡이 거칠고 불규칙하게 내 등에 닿았기 때문이다. 그때 갑자기, 열세 살인 내가 뜨고 있는 눈은, 크고 따듯한 물체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곧 알아차렸다. 아버지의 두 손바닥이 등뒤로부터 뻗어 나와 내 눈을 가린 것이었다.
지금도 그 손바닥의 기억은 살아 있다.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한 손바닥, 등뒤에서 넘어와, 내가 보고 있던 지옥을 순식간에 그 눈으로부터 뒤덮어 가려버린 손바닥. 타계(他界)의 손바닥. 사랑인지, 비애인지, 굴욕 때문인지는 모르나, 내가 접하고 있던 끔찍한 세계를 순식간에 중단시키고, 어둠 속에 묻어 버렸던 손바닥.
나는 그 손바닥 속에서 가볍게 끄덕였다. 양해와 합의가, 내 자그마한 얼굴의 끄덕임으로 즉시 전하여지자, 아버지의 손바닥은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손바닥이 명령하는 대로, 손바닥이 치워진 다음에도, 불면의 아침이 밝아 와서 눈꺼풀이 눈부신 햇살을 통과시킬 때까지, 완고히 눈을 감고 있었다.
아버지가 죽고 나서 금각사에 도제로 맡겨진 이후, 미군과 함께 금각사를 구경하러 왔던 창녀(미군의 명령을 받은 미조구치에게 배를 밟힐 때 그녀는 임신 중이었다)
헤이, 하고 미군이 소리쳤다. 나는 돌아보았다. 가랑이를 넓게 벌린 채 버티어 선 그의 모습이 눈앞에 있었다. 손가락으로 나에게 신호하고 있었다.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른 차분한 목소리가, 영어로 이렇게 말하였다.
“밟아. 네가, 밟아 봐!”
무슨 소린지 나는 몰랐다. 하지만 그의 파란 눈은 높은 곳에서 명령하고 있었다. 그의 넓은 어깨 뒤에는, 눈에 덮인 금각이 빛나고, 씻어 낸 듯이 파란 겨울 하늘이 촉촉이 어리어 있었다. 그의 파란 눈은 조금도 잔혹하지 않았다. 그것을,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서정적이라고 느낀 것은 어째서일까?
그의 굵은 손이 내려와, 멱살을 잡고, 나를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명령하는 목소리는 역시 따듯하고 부드러웠다.
“밟아. 밟으라니까!”
저항할 상황이 아니었기에, 나는 고무장화의 발을 들었다. 미군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내 발은 내려와, 봄날의 진흙처럼 부드러운 물체를 밟았다. 그것은 여자의 배였다. 여자는 눈을 감은 채 신음하였다.
“더 밟아, 더!”
나는 밟았다. 처음 밟았을 때의 위화감이, 두 번째에는 솟구치는 희열로 변하였다. 이것이 여자의 배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이것이 가슴이다, 하고 생각했다. 타인의 육체가 이토록 공처럼 정직한 탄력으로 대답하는 것은 예상 밖이었다.
“이제 됐어.”
하지만, 절간 사람들은 부사에게서 그 이야기를 듣고는, 내 비행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쓰루카와는 눈물을 글썽이며 내 손을 잡았다. 그 투명한 눈은 나를 바라보았고, 그 소년다운 순수한 목소리는 나를 감동시켰다.
“정말로 너는 그런 짓을 했니?”
그리고 나(미조구치)는 절의 도움으로 오타니 대학을 다니게 되고, 그때 만나게 된 하숙집 딸.
우리들이 자리 잡은 곳은, 색이 바래고 벌레 먹은 철쭉꽃 그늘이었다. 하숙집 딸이 어째서 그런 식으로 나와 어울릴 마음이 생겼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세상에는 수치심과 다정함이 넘치는 무저항도 있겠지만, 그녀는 통통하고 자그마한 손 위에, 낮잠 자는 사람 몸에 달라붙는 파리처럼, 내 손을 그냥 달라붙게 해 놓았다.
그러나 기나긴 키스와 그녀의 부드러운 턱의 감촉이 내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무척이나 꿈에도 그리던 행위였지만, 현실감이 옅고 희박하여, 욕망은 별개의 궤도를 달리고 있었다. 하얗게 구름 낀 하늘, 대나무 숲의 바람소리, 진달래 잎사귀를 기어오르는 무당벌레의 필사적인 등반...... 이러한 것들은 여전히 아무런 질서도 없이 제각기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오히려 눈앞의 여자를, 욕망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자체로부터 도피하고 싶었다. 이것을 인생이라고 생각하여야 한다. 전진하여 획득하기 위한 하나의 관문으로 생각하여야 한다. 이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인생은 나를 찾아오지 않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나의 조급한 마음에는, 더듬거리며 제대로 말을 꺼내지 못할 때의, 온갖 굴욕이 떠올랐다. 나는 결단코 입을 열어, 더듬거리면서라도 무엇이건 말을 하여, 인생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가시와기의 그 잔혹한 재촉, '더듬거려! 더듬거리라구!' 하는 그 거리낌 없는 외침이 내 귓전에 되살아나, 나를 고무하였다...... 나는 서서히 손을 여자의 옷자락에 밀어 넣었다.
그때 금각이 나타났다.
그녀는 내가 갑자기 주눅이 든 것을 보고는, 곁눈으로 노려보며 몸을 일으켰다. 몸을 돌려 뒤돌아 앉아서, 핸드백에서 꺼낸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경멸은, 마치 옷에 붙은 가을철의 도깨비바늘처럼, 내 살갗을 온통 찔러 대었다.
구름이 낮게 덮여 있었다. 가벼운 빗방울이 주위의 풀잎과 진달래 잎사귀를 때리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황급히 일어나, 방금 전의 정자로 발길을 서둘렀다.
꽃꽂이 선생은 어릴 때 쓰루카와와 함께 우연히 한 번 본 그 꽃꽂이 선생이다. 그녀는 전쟁 때문에 헤어져야 하는 남자 친구와 이별하고 있었고(그때는 마침 임신 중), 그 장면을 목격한다. 그리고는 가시와기에게 버려지는 꽃꽂이 선생을 다시 만나게 된다.
나는 그 장면을 보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짙은 색 찻잔 속에서 거품을 띄우고 있는 연둣빛 차에, 희고 따듯한 젖이 뿜어 나와, 방울을 남기며 잔 속에 담기는 모양, 고요한 차의 표면이 하얀 젖으로 흐려져 거품을 일으키는 모양을, 바로 눈앞에 보듯이 역력히 느꼈다.
사내는 찻잔을 들고, 그 기이한 차를 남김없이 마셨다. 여자의 하얀 가슴도 감추어졌다.
우리 둘은, 긴장하여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나중에 차분히 생각하니, 그것은 사관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와 싸움터로 나가는 사관과의, 이별의 의식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하지만 그 당시의 감동은, 어떠한 해석도 불가능하였다. 너무도 넋을 잃고 바라보았기에, 어느 틈엔가 남녀가 방에서 모습을 감추고, 넓은 주홍빛 양탄자만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나는 그 하얗게 돋보이던 옆얼굴과, 더없이 하얀 가슴을 보았다. 그리고 여자가 사라진 뒤, 그날 하루의 나머지 시간도,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나는 집요하게 생각하였다. 분명히 그 여자는, 되살아난 우이코임에 틀림없다고.
“이제 젖은 나오지 않아요. 아아, 불쌍한 우리 아기! 젖은 나오지 않지만, 당신에게, 그때처럼 해서 보여 드릴게요. 그때부터 저를 좋아해 주셨잖아요. 지금, 저는, 당신을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어요.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부끄러울 거 없어요. 정말로 그대로 해서 보여 드릴게요.”
결단을 내리는 어조로 말하고 난 후에 여자가 취한 행동은, 광적인 기쁨이 지나친 때문으로도 보였고, 또한, 지나친 절망에 의한 것으로도 보였다. 아마도 의식(意識) 위에는 광적인 기쁨만이 있고, 그 격렬한 행위를 재촉한 진정한 힘은, 가시와기가 준 절망, 혹은 절망의 끈질긴 후유증이라고도 생각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눈앞에서 매듭이 풀리고, 수많은 끈이 풀어지고, 허리띠가 비단의 비명소리를 내며 풀어지는 광경을 보았다. 여자의 옷깃이 벌려졌다. 하얀 가슴이 살짝 보이는 언저리에서, 여자는 손으로 왼쪽 젖가슴을 꺼내더니 내 앞에 보여 주었다.
내가 일종의 현기증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 되리라. 나는 보고 있었다. 자세히 보았다. 하지만 나는 증인이 되었을 뿐이었다. 그 산문의 누상에서, 멀리 신비스러운 하얀 점으로 보였던 것은, 이처럼 일정한 질량을 지닌 살이 아니었다. 그 인상이 너무도 오랫동안 발효된 탓으로, 눈앞의 젖가슴은, 살 그 자체이며, 하나의 물질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더구나 그것은 무엇인가를 호소하며 유혹하는 살이 아니었다. 존재의 따분한 증거이며, 삶의 전체로부터 분리되어, 단지 그곳에 드러난 그 무엇이었다.
아직도 나는 거짓말을 하려고 한다. 그렇다. 현기증을 느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내 눈은 너무도 자세히 보았기에, 젖가슴이 여자의 젖가슴이라는 사실을 넘어, 점차로 무의미한 단편으로 변모될 때까지, 샅샅이 보고 말았다.
나에게 미는 늦게 온다. 남보다 늦게, 남들이 미와 관능을 동시에 발견하는 것보다도, 훨씬 늦게 온다. 점차로 젖가슴은 전체와의 연관을 되찾아…… 살을 넘어…… 불감의, 그러나 불후의 물질이 되어, 영원히 이어지게 되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다시 그곳에 금각이 출현하였다, 아니, 젖가슴이 금각으로 변모한 것이다.
이리하여 다시금 나는, 젖가슴을 품 속으로 감추는 여자의 싸늘한 경멸 섞인 눈초리를 받았다. 나는 작별을 고하였다. 현관까지 따라온 여자는, 내 뒤에서 요란하게 문을 닫았다.
이렇듯 시종 계속해서 소년은 욕망한다. 그리고 그런 그(미조구치)에게 여자들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다.
(문득 드는 생각, 소년에게 여자는 사랑의 대상일까? 욕망의 대상일까?)
어쨌거나 소년은 대학을 가고 청년이 되었지만 소년의 욕망은 성인의 사랑으로 발전하지 못한다. 몸만 커진다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듯 소년은 계속 소년일 뿐인 것이다.
이 소설은 나에게 매우 불쾌한 끝맛을 남겼다. 그렇지만 매우 설득력이 있다.
리얼리즘이 설득력이라면 나(미조구치)와 쓰루카와, 가시와기의 캐릭터는 매우 설득력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불쾌하지만 나(미조구치)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그리고 자위대 건물에서 할복을 하고 고통 속에서 옆의 목을 쳐주어야 할 남자가 익숙지 않은 나머지 여러 번 목을 쳐야만 했던, 미시마 유키오의 처참한 죽음.
그것이 바로 소년 미조구치의 방화와 겹쳐 보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다시,
금각사를 읽었는데 궁금한 것은 미시마 유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