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의 여자(아베 코보)

by 궁금하다

성(性)스러운 소설.

나는 오래간만에 나도 모르게 후방 주의, 두리번거리며 책을 읽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중학교 때쯤인가 보던 그, 뭐, 거시기한(?) 소설들 있지 않나 말이다)

바로 그 욕망을 분출하던 남자. 니키 준페이.


<성명, 니키 준페이. 31세. 신장 1미터 58센티미터, 54킬로그램. 머리는 다소 벗겨졌고 올백, 포마드는 사용하지 않음. 시력은 우 0.8, 좌 1.0. 피부는 약간 가무잡잡하고 얼굴은 긴 편. 미간이 좁고 코가 낮음. 각진 턱과 왼쪽 귀밑에 점이 있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특징 없음.>


일견 왜소하고 곤충채집에 진심인 전문가(요즘 말로 거의 덕후의 경지다), 초등학교 교사를 하는 일반적 소시민이다. 그런 만큼 그도 처음부터 욕망이 분출하는 남자는 아니었다. 소설의 초반부 니키 준페이는 스스로 절제하는 모습까지 있다.


알몸으로 엎드려 있는 여자의 뒷모습은 음탕하기 그지없어 거의 동물처럼 보였다. 자궁을 움켜잡고 뒤집기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나, 그런 생각을 한 순간 심한 굴욕감에 숨이 막혔다. 머지않아, 여자를 괴롭히는 형리로 둔갑할 자신의 모습이 군데군데 모래가 묻어 있는 여자의 엉덩이 위로 떠오른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알고 있다……. 언젠가는 그렇게 된다.……. 그리고 그날, 너는 발언권을 잃게 된다.……


하지만 결국 그는 처참하게 무너진다. 왜냐면 그는 보통의 남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까짓 모래 구덩이를 못 나와?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의문. 그 의문은 그 모래 구덩이가 바로 이 사회라면, 그러면 이해가 된다. 작가가 이 사회를 모래 구덩이에 빗댄 거라면 너무도 이해가 된다.

우리가 이 사회에서 허우적대듯 준페이가 모래 구덩이에 빠지고 만 거라면……

이 사회가 제도와 각종의 인간관계로 인간을 옭아매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이 사회를 도저히 벗어날 수 없듯이 준페이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준페이는 여러 번 탈출을 시도한다.

여자를 묶고 마을 사람들을 협박하기도 하고

몰래 만든 밧줄로 구덩이를 올라오기도 한다.


계획을 짠 지 나흘째……. 늘 몸 씻는 물을 배급해 주는 토요일 오후에 실행에 옮기기로 하였다. 그 전날 밤에는 감기에 걸린 척하고 일찍부터 푹 잤다. 여자에게 아스피린을 찾아오라는 무리한 일을 시켰다. 잡화상 선반에 방치되어 있던 것이라 그런지, 완전히 변색되어 있었다. 소주와 함께 두 알을 삼키자 단박에 효과가 나타났다.


무사히 올라왔다!

가마니를 움켜잡고, 손톱은 벗겨져 나갈 것 같은데, 안간힘을 쓰고 기어오른다. 보라, 바로 지상이다! 이제 손을 놓아도 떨어질 염려는 없다. 그런데도 가마니를 움켜잡은 채, 한동안 팔에서 힘을 뺄 수가 없었다.


갑자기 달리기가 힘들어졌다. 유난히 다리가 무겁다. 심상치 않다. 그냥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다리가 푹푹 빠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쌓인 눈 같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정강이가 절반이나 빠져 있었다. 놀라서 빼내려고 힘을 준 반대쪽 다리가 이번에는 무릎까지 푹 빠지고 말았다. 이 무슨 봉변인가……. 사람 잡아먹는 모래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은 있지만…….


그러나 그는 모래늪에 빠지고 결국 마을 사람들에게 목숨을 구걸해 구덩이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까마귀를 붙잡아 외부로 편지를 보낼 계획까지 세우며 탈출을 포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뿐, 까마귀를 잡으려던 덫은 뜻밖의 신선한 물을 얻을 수 있는 우물이 되고 준페이는 마을 사람들처럼 밖으로 다닐 수 있는 방법을 묻는다. 그런 그에게 촌장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여자를 강간하라고 주문한다.


그럴까? …… 난 미쳐버리고 만 것일까? ……여자의 강경함에 당황하면서도, 남자의 내부에서 뒤틀린 공백이 퍼져간다……. 이렇게까지 짓밟혔는데, 새삼스럽게 체면 따위 무슨 소용이 있을까……보여지는 것을 껄끄럽게 생각한다면, 보는 쪽에도 그 정도의 껄끄러움은 있을 것이다……. 보여지는 것과 보는 것을 구별하여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나를 없애기 위한 간단한 의식이라고 생각하면 끝나는 일이다……. 더구나 그 대가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생각해야지……. 지상을 자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다! ……나는 이 썩어빠진 수면에서 고개를 내밀고 마음껏 숨을 쉬고 싶다!

여자의 기척을 가늠하여 온몸으로 돌진했다. 여자의 비명과 두 사람이 뒤엉켜 벽으로 쓰러지는 소리가 벼랑 위에 짐승 같은 열광과 홍조를 불러일으켰다. 휘파람, 손뼉 치는 소리, 추잡스런 웅성거림……. 사람 수가 늘어나 젊은 여자도 섞여 있는 듯했다. 문을 향하여 쇄도하는 손전등의 빛이 처음보다 세 배는 늘어났다.


남자는 그 날개를 자기의 날개라고 착각하였다. 벼랑 위에서 군침을 질질 흘리며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자기라고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그의 부분이며, 그들이 흘리고 있는 누런 타액은 바로 그의 욕정이다. 그는 희생양이라기보다 오히려 대리 집행인이었다.


짐승들이 모여사는 짐승들의 마을에서 그는 마침내 짐승이 되기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여자를 데리고 간 후에도 새끼줄 사다리는 여전히 매달려 있었다. 남자는 조심조심 손을 뻗어, 살짝 손가락 끝으로 만져본다. 끌어올려지지 않음을 확인하고서, 천천히 오르기 시작한다. 바다는 누렇고 탁했다. 심호흡을 해보았지만, 꺼끌 거리기만 할 뿐 기대한 맛은 나지 않았다. 돌아보니 부락 어귀에 모래먼지가 일고 있다. 여자를 태운 삼륜차겠지. ……아 참, 헤어지기 전에 덫의 정체만이라도 가르쳐줄 것을 그랬다.


딱히 서둘러 도망칠 필요는 없다. 지금, 그의 손에 쥐어져 있는 왕복표는 목적지도 돌아갈 곳도, 본인이 마음대로 써넣을 수 있는 공백이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유수 장치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욕망으로 터질 듯하다. 털어놓는다면, 이 부락 사람들만큼 좋은 청중은 없다. 오늘이 아니면, 아마 내일, 남자는 누군가를 붙들고 털어놓고 있을 것이다.

도주 수단은, 그 다음날 생각해도 무방하다.


임신한 여자를 데려간 새끼줄 사다리가 여전히 매달려 있는 상황에서 그는 마을에 남는다. 그리고 결국 7년 후 실종자 처리가 되고 만다.

그러면 여자, 모래의 여자는 뭘까? 준페이를 구덩이에 몰아넣은 마을 사람들과 한 패이기도 하고, 준페이와 고락을 같이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준페이에게 강간을 당할 때도 저항하며 존엄을 유지하고 외부 소식을 아는 수단인 라디오를 염원하기도 한다. 결국 준페이의 아이를 임신하는 여자.


준페이가 처절히 타락하고 마는 사람이고

마을 사람들은 준페이를 타락시키는 이 사회라면

여자는 뭘까?

그 투쟁의 과정에서도 오롯이 살아남은 인간의 본능 같은 것일까?


어쨌든지 간에

실존주의의 이름 하에 거명되는 소설들이 있다.


변신(카프카)의 '그레고르'는 이 엿같은 현대사회에서 서럽게 울고 있고

이방인(카뮈)의 '뫼르소'는 부조리한 이 사회에서 도도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시지프 신화(카뮈)에서 '시지프'가 세상을 냉소하며 돌을 굴려 내려온다면

'니키 준페이'는 하다 하다 짐승이 되어 버린다.


아.

그러면 나는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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