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러스트(에르난 디아스)

by 궁금하다

돈이 좋기는 하다. 나도 그것을 알고 있다.

불면의 밤을 보낼 때, 나는 거부가 되는 상상을 한다.

거부가 되기 위해서, 나는 우선 로또에 당첨이 된다. 그것이 시드 머니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주식으로 굴리는 거다. 코인은 너무 변동성이 크고, 그래도 주식이 낫다.

100억, 1000억, 1조.......


나의 욕심은 끝이 없고, 잠에 들기까지 액수는 계속 늘어난다.


그리고

여기에 그런 조만 장자가 있다.

앤드루 베벨.

요즘으로 치면 워렌 버핏 같은 양반이라고 하겠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소설은 1부를 마치고 2부에 들어갔을 때 왈칵 짜증이 난다.(사전 정보를 보지 않고 이 소설을 접하면 1부와 2부가 같은 인물들 같은데 이름이 다른 점에서 굉장한 혼란을 느낀다. 뭐지? 작가는 전혀 친절하지 않다.)


이 소설의 1부는 소설 속 현실의 억만장자인 앤드루 베벨의 냉혈한 같은 면모를 폭로하겠다는, 소설 속 소설가 해럴드 배너가 쓴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앤드루 베벨의 아내인 밀드레드 베벨이 헬렌이라는 가명으로 등장한다. 그녀는 매우 총명하고 재기가 있었지만 결국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비극적인 인물로 그려진다.(1부에서 억만장자의 이름은 벤저민 래스크, 아내는 헬렌 래스크)


2부는 앤드루 베벨의 미완성 자서전이다. 이 책에서 앤드루 베벨은 뛰어난 사업가 집안의 피와 재산을 물려받아 가문의 재산을 엄청나게 증식시킨 천재 투자자로 그려지며, 그의 아내 밀드레드 베벨은 음악과 소설 읽기, 꽃꽂이 등을 좋아하는 가정적이고 몸이 약하며 순종적인 여성으로 묘사된다.(그리고 이런 자서전의 이야기는 3부에서 대필 작가의 회고를 통해, 앤드루의 조종에 의한 글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3부는 앤드루 베벨의 미완성 자서전을 대필한 작가, 아이다 파르텐자의 회고록이다. 파르텐자는 앤드루 베벨의 비서로 일하면서 그가 불러주는 내용을 토대로 하되 그녀 자신의 경험을 추가하고 원고를 땜질하거나 대패질하는 방식으로 앤드루 베벨의 자서전을 써나간다. 이후 원로 작가가 된 파르텐자는 당시의 경험을 회고하며 앤드루 베벨이 해럴드 배너가 퍼뜨린 ‘왜곡된 이야기’를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고치려 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그가 온갖 자금력을 동원해 해럴드 배너의 작품과 작가로서의 인생 전체를 삭제해 버리고 자신이 구성한 새로운 밀드레드 베벨이 아이다 파르텐자의 개인적 경험을 훔쳐다가 밀드레드 베벨이라는 인물을 만들어내는 데 사용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파르텐자가 기억하는 앤드루 베벨은 텍스트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한편, 돈과 권력을 이용해 그 텍스트가 오직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게 할 수 있다고 믿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생각을 누구보다 잘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파르텐자는 그런 앤드루 베벨의 음모에 가담해 밀드레드 베벨의 삶을 왜곡한 자신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한편, 밀드레드 베벨이 정말 어떤 인물이었는지 궁금증을 느낀다.


4부는 아이다 파르텐자가 발견했다고 하는 밀드레드 베벨의 일기다. 이 일기에서는 밀드레드 베벨이 사실 드루 베벨을 이면에서 움직이던 투자의 천재이자 대단히 안목이 높은 현대 음악의 후원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녀의 지성은 취미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영향력과 힘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밀드레드 베벨의 일기는 앤드루의 성공 신화를 한층 더 박살 낸다. 밀드레드가 당시 주식시장의 허점을 발견하고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주가를 조작하면 위험할 수 있겠다는 말을 했는데, 앤드루 베벨이 바로 그 점을 악용해 큰돈을 벌어들였다는 점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이 일로 부부 사이는 냉랭해지고, 밀드레드는 시장 붕괴에 끼친 자신의 간접적 영향을 반성하는 의미로 다양한 복지 사업을 벌였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건을 통해, 앤드루 베벨은 주식시장의 허점을 스스로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밀드레드보다 예리하지 못한 인물일 뿐 아니라, 밀드레드와는 달리 그 허점을 악용했다는 점에서 도덕적으로도 열등한 인물임이 드러난다.

(옮긴이의 말)


1부에서 나는 천문학적인 돈을 번 벤저민 래스크가 돈(정말 엄청난 돈)을 버는 과정이 매력적이었다. 아, 돈은 이렇게 버는구나. 자본과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이 결합되면 이런 부자가 되는구나. 아, 경이롭다.

그러나 1부에서 그의 아내는 착하고 지적인데도 미쳐버리고 만다. 경련의 과정에서 쇄골이 부러지며 죽어버린다.

돈을 번 대신 이렇게 아내를 잃고 마는구나. 슬프고 비참하구나.


하지만

그 뒤 소설의 여정(2, 3, 4부)은 인물의 실체를 밝히는 과정이 된다.(그것이 정말로 실체인지도 알 수 없다)


내가 출근하기 전 아침마다 밀드레드와 나는 온실에서 정기적으로 만나 기금을 어떻게 배분해야 할지 의논했다. 아, 밀드레드가 어찌나 흥분하던지! 너무도 많은 여성이 과도한 쇼핑을 통해 느끼는 전율을 밀드레드는 기부를 통해 두 배나 크게 느꼈다. 그녀는 억누를 수 없는 열정을 품고서 명분을 고르고 기관을 선택했으나, 이성에 귀 기울이라는 내 요청도 귀담아듣고 자신이 내린 선택이 재정적으로 불건전할 때마다 내 안내에 따랐다. 나의 질서 있는 접근법이 그녀의 이해할 만한 열정을 통제했다. 나는 그녀의 고귀한 노력이 최대한 먼 곳까지 최대한 큰 영향력을 미치도록 했다.


2부에서 앤드루 베벨은 자신의 천재적 능력으로 돈을 벌고, 아내가 그것을 잘 쓸 수 있도록 코치한다. 그녀는 사랑스럽고도 앤드루의 돌봄이 필요한 존재! 회고록 대필작가(파르텐자)를 통해 그런 식으로 쓰게 만든다.


첫 번째 요리부터 디저트가 나올 때까지 그녀는 책 전체를 나한테 이야기해주곤 했다. 그런 이야기에는 추측과 예상이 주석으로 달려 있었다. 나는 그 작은 수수께끼들을 정말이지 즐기게 되었다. 다만, 그런 수수께끼가 즐거웠던 건 그녀가 열정적으로 연출해 줄 때뿐이었다. 이야기를 전하는 데 몰두해 반짝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는 건 너무도 사랑스러운 일이었다. 그녀는 줄거리에 무척 매혹되었고, 나는 그녀에게 무척 매혹되었다. 우리 둘의 접시에 있는 음식이 차갑게 식을 정도였다. 그걸 알고 우리가 얼마나 웃었던지!

(파르텐자가 쓴 앤드루의 회고록)


저녁 시간이면 나는 추측과 예상을 주석으로 달아 아버지에게 그 이야기를 전해주곤 했다. 아버지는 홀린 것처럼 줄거리의 세세한 내용을 따라갔고, 나는 아버지를 엉뚱한 길로 이끌고 가짜 경고에 주의하도록 만들어 마지막 폭로 장면에서 놀라움을 고조시키는 방법을 터득했다. 아버지는 너무 정신이 팔려 먹는 것조차 잊곤 했다. “봐! 밥이 또 식었잖니! 전부 네 잘못이다.” 이야기가 끝날 때면 아빠는 종종 그렇게 말하며 가짜로 나를 야단쳤고, 우리는 웃었다.

(파르텐자의 아빠와 관련된 회고)


앤드루는 돈의 힘으로, 국가를 좌지우지하며 대필작가(파르텐자)를 조종한다. 기억에 없는 아내와의 에피소드를 대필작가(파르텐자)의 추억으로 채우며,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든 수단과 자원을 동원해 현실을 조정해서 자신에게 맞도록 구부린다’고 말하는 앤드루. 출판사를 사들여 해럴드 배너의 책 유통을 막고, 뉴욕의 공공도서관에 막대한 기부금을 내는 것을 이용해 도서관에서 배너의 책을 사라지게 하는 자본의 힘. 소름이 돋는 자본의 힘이다.

그리고 결국은 파르텐자의 회고록과 아내(밀드레드)의 일기를 통해서 그런 천재 자본가(앤드루)의 이면에 그보다 더 뛰어났었던 밀드레드가 있었음이 밝혀진다. 착하고 순종적인 밀드레드는 앤드루 베벨이 만들어낸 인물이고 실제로는 주체적이며 앤드루 베벨보다 뛰어난 투자가였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인물의 실체가 밝혀지는 모습.

혹자는 여기에서 여성주의적 관점을 읽어내고, 혹자는 라쇼몽식 서사의 발전된 모습을 읽어내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뭘 느꼈냐구?


내가 받은 느낌은 '음, 그렇군' 정도다.

내가 느낀 자본의 힘, 추리소설적인 구성, 누구 말마따나 라쇼몽식 서사. 등등은 그렇게 강렬하진 않았다.

'음, 그렇군.' 이 정도다.


추천사에서 언급하는 '지독히 현실적이면서 놀라울 만큼 환상적인 소설'(소설가 정한아)이라는 평은 내게는 와닿는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독후감을 쓰기가 굉장히 힘든 소설.


소설은 그런 대로 재미 있었는데......

독후감 쓰기는 왜 이렇게 힘들었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자유론(존 스튜어트 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