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내 손을 잡을 때(김수영)

내 것과 네 것

by 궁금하다

언젠가 방송에 출연한 유명 배우의 아내가 말했다.

"네 것도 내 것, 내 것도 내 것"이라고 말이다.

이 말이 화제가 되었던 이유는 일견 얼토당토않은 말 같지만 또 부부 사이에는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고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는 면 때문이지 않을까?

후에 그녀는 "서로를 신뢰하고 의지하자는 약속"이라 해명했다.

부부는 일심동체니까 '믿고 더블로 가.' 뭐 이런 의미이리라.

부부가 사랑하는데 내 것이 어디 있고 네 것이 어디 있겠냐.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으며 불현듯 이 이야기가 떠오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 책은 그동안 인간의 역사에 있었던 수많은 철학자들, 그리고 그들이 설파했던 수많은 이론들과 개념들을 차분하게 설명해 준다. 어렵지 않은 모국어로 친절하게.

어쭙잖게 잘난 척하기 위해서(?) 그리고 간혹 진짜로 궁금해서(?) 아등바등 공부했었던 그 이론들과 개념들을 말이다.


예를 들면 이 책의 두 번째 장에 나오는 헤겔의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 녘에야 날아간다.'라는 말.


어렸을 때 이곳저곳에서 주워들은 이 말은 나에게 의문으로 남았다.

정확히 내가 기억하는 문장은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 녁에야 나래를 편다.'(훨씬 문학적인 듯)이다.

그리고 그때 나는 생각했다.

올빼미는 오밤중에 눈깔을 번쩍이며 나무에 앉아 있는 이미지 아니냐? 그야말로 야행성인 올빼미가 저녁에 날아가는 것은 당연한 거 아니냐?

이게 말이야, 방귀야?


그리고

내가 답을 얻은 것은 한참이나 지난 후였다.

찬찬히 생각해 보면

무릇 일이란 서두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즉 뭔가 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때가 무르익어야 된다는 것.

쌀이 밥이 될 때, 뜸이 잘 들어야 맛있는 밥이 되듯이 일이 되기 위해서는 다 때가 있는 법이라는 것.

서두른다고 해서 안 될 일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이것이 내가 내 나름대로 얻은 답이다.

그래서 왠지 모르게 조급한 마음이 들 때, 나는 이 말을 떠올린다.


이 책에서 작가는


왜 헤겔은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밤에 활동한다.”라고 표현하지 않고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 녘에야 날아간다.”라고 적었을까요? 이 질문으로 우리는 이 문장의 핵심에 다가갑니다. 해 질 무렵이란 어떤 시간일까요? 어둠이 시작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빛이 소멸하는 시점이기도 합니다. 황혼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낮이 다 끝나 만물의 활동이 종료되고 정리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헤겔의 생각에 따르면, 완전한 지혜는 변화가 끝난 시점에 비로소 얻어집니다.


라고 말한다. 대충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느낌은 다르다.

내가 생활인의 관점에서 헤겔의 말을 해석했다면 작가는 철학가의 관점에서 헤겔의 말을 해석한 것 같다.


어쨌건 간에 이 책은 편안하다. 부담스럽게 않게 여러 철학의 개념들을 설명해 준다.

만약 작가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다거나 더 많은 궁금증이 일어난다면 원전을 찾아 읽으면 될 것이다.

그러면 작가와는 또 다른 내 것, 내 해석이 생기게 될 것이다.


즉, 그리하여


여러 경구들은 철학자들의 것.

그에 따른 이 책의 해석은 작가의 것.

그리고 그것을 보고 또 이것저것 생각해 보는 것은 내 것.


내 것이 별 건가?

간혹 나는 '나는 왜 이렇게 머리가 안 돌아갈까?' '내 나름대로의 독창적인 뭔가를 만들어 낼 수는 없을까?' 하면서 내가 가진 것의 빈약함을 한탄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남들한테 인정받지 않아도 내 것은 많다. 나 스스로 뭔가에 대해 내 생각을 끄적끄적하는 것이 다 내 것이니까.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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