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예니 에르펜베크)

by 궁금하다

영혼까지 탈탈 털린 느낌이다.

어떻게든 꾸역꾸역 읽었지만 지금은 하얗게 재만 남은 느낌.

이 책을 추천해 준 내 친구는 이 소설의 어떤 점이 재미있었을까? 자못 궁금하다.


아빠, 나 사랑하는 사람 생겼어. 누군데? 열 살 많아요. 뭐, 좋네. 아니, 아빠보다 열 살 많다고. 아, 그래,라고 아빠는 말하고는 수화기 너머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다.


그렇다. 베를린에 사는 여자 카타리나는 자신보다 서른네 살이 많은 남자 한스와 사랑에 빠진다.

그럴 수 있다. 십 대 후반의 어린 여자와 50대의 남자.

그리고 이제 이 소설이 현실적이기 위해서는 헤어지는 것이 맞지 않을까? 아마도 그것이 현실일 것이다.


갑자기 사랑에 빠지는 것은 그렇다 치자. 사랑이란 교통사고와 같아서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일어날 수 있으니까.(내가 존경하는 형님의 말씀대로)

초로의 남자도 교통사고를 당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전개는 헤어짐이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처음에 둘이 순식간에 사랑에 빠지는 것을 볼 때부터 나는 조마조마했다. 헤어지는 것이 당연하니까.

헤어짐을 기다리는 초조함이랄까?

그리고 그들은 헤어진다. 4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소설에서 중반 정도 이후부터 헤어지는 과정이다.

만남과 사랑 2/5, 헤어짐과 사랑 3/5

그런데 바로 그 2/5 정도의 분량에서 보이는 사랑은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았다.

한스는 유부남이고 카타리나도 알고 있다. 아내 잉그리트가 눈치를 못 채게 한스는 꼼꼼히 사랑을 관리한다. 자신의 집 침대에 카타리나를 끌어들이고 카타리나가 갈 때는 흔적들을 용의주도하게 지운다. 뻔뻔하게도 카타리나 앞에서. 당연한 듯이.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여자는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듯이. 무신경하다. 또한 한스는 작가니까 이래저래 말이 많다.(먹물들은 원래 그런가?)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고 카타리나에게 자신의 취향을 과시하며 그녀에 대한 사랑을 나불대지만 카타리나를 벌거벗겨 관찰하고 혁대로 그녀를 때리며 사랑을 나눈다.(나중에는 말채찍으로)

좋다. 사랑하고 둘이 모두 기뻐한다면 뭐, 그럴 수 있다.

그렇지만 아름답지는 않았다. 설레지도 않았고.


이후 카타리나가 베를린과 먼 지역(프랑크푸르트 안 데어 오데르)의 극장의 무대 미술 인턴으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바딤이라는 젊은 직장 동료와 관계를 하게 된다.

그리고 발각.

지옥 같은 한스의 가스라이팅.

카세트테이프에 그녀의 배신을 하나하나 지적해서 녹음을 하고 그녀는 그의 카세트테이프에 조목조목 답변을 써내야만 한다.


잊지 마, 충격의 원인은 네게 있었어.

넌 너무도 쉽게 말하는구나. 내가 너를 더 자주 찾아왔다면 그런 일이 없었을 거라고. 내가 네 동료들의 비웃음을 견딜 수 있었을까? 너에겐 너무 쉬워. 나에겐 너무 어렵고.


4월에 비로소 다시 시작된, 우리의 매달 11일은 예전처럼 행복한 기념일로 지켜질 수 없어. 나 자신도 고통스러워. 정확히 이 년 전 프랑크푸르트에서의 9월부터, 넌 매달 11일의 기념일을 망쳐놓으려 했어.


솔직히 내가 왜 너와 헤어지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카세트 작업을 그만두려 했던 봄에 네게 준 편지에 이렇게 적었지. 이런 패배를 해결하려 했던 건 기본적으로 일종의 도피였다. 카세트 작업을 중단하면 내가 어디서 도망쳤는지가 드러날 것이다. 그런데 이런 6개월간 무엇이 드러났지?

A면. B면. 60분. 추운 계절을 목전에 두고 카타리나는 다시 헤드폰을 낀 채 테이블 앞에 앉아 있다.


내게 거짓말을 한 것도 좋지 않지만, 그보다 훨씬 더 안 좋은 것은 네가 스스로를 속였다는 거야. 왜 그랬는지 스스로 자문해봐야 할 거야. 그런 자기기만에 빠질 수 있는 사람에게 내가 하고 싶은 조언은 한 가지뿐. 예술에서 손 떼.


지난한 이 가스라이팅의 과정, 학대하는 남자와 거기에 순응하는 여자.

도대체 왜 헤어지지 않는 거냐?

소설의 후반부로 가면서 나는 폭발 직전까지 간 것 같다. 남자는 어떻게 이리도 이기적일 수 있는가? 여자는 왜 이리 우둔한가?

결국 독일이 통일되면서 동독의 방송국 작가로 일하는 한스는 실직하고 카타리나는 자연스럽게 한스를 떠난다.


그리고 그 기나긴 회고의 마무리는

자신의 장례식에 올 거냐는 한스의 뻔뻔함이다.


내 장례식에 올 거야?

그녀는 앞에 놓인 커피 잔을 내려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내 장례식에 올 거야? 그가 다시 묻는다.

당신은 아직 살아 있어요.

내 장례식에 올 거야? 하지만 그는 세 번째로 묻는다.

그래요. 물론 가요. 그녀가 말한다.

내가 봐둔 자리 옆에 자작나무가 있어.

좋군요. 그녀가 말한다.

넉 달 뒤 피츠버그에서 그녀는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는다.


p.s. 소설 말미에 에필로그에는 동독에서 일한 비공식 요원의 이야기가 나온다.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

이 소설은 작가의 개인적 사건과 역사적 사건을 하나로 엮어낸 뛰어난 작품이라는데...... 나는 제대로 읽어내지 못 했다.

그래도 동독과 서독,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풍경은 제법 신기하더라.


keyword
작가의 이전글코스모스(칼 세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