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 읽은 몇몇 동화책은 영혼에 각인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동화책의 교훈이란 어떤 근원적인 금기, 사회화의 필수적인 과정으로 작용한다.
그 시절 읽은 동화책들이 나이 들어서 구체적으로는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아도, 그 분위기 같은 것이 노스탤지어(?)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즉, 사람들은 원전의 줄거리 따위는 잊은 채 끊임없이 그 분위기, 자기가 느꼈던 감정을 스스로 재생산해서 소모하는 중인 것이다.
아이들 책꽂이에 꽂혀 있던 이 책에 불현듯 눈이 간 이유도 바로 그런 이유와 상통한다.
뮤지컬(지킬 엔 하이드)로 할리우드 영화(젠틀맨 리그였나?) 등등으로 익숙하게 소비되고 있기는 한데, 결말이 어떻게 되더라?
변호사 어터슨은 사회적으로 명망 높은 헨리 지킬 박사의 친구이고 어느 날 산책 중에 하이드라는 추악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이후 하이드는 거침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흔적 없이 사라진다. 헨리 지킬과 연관성(유언장에 하이드가 거론된다든지, 지킬의 연구실에 하이드가 드나든다든지 하는 등) 때문에 괴로워하던 어터슨은 어느 날 밤, 지킬 박사네 하인의 부탁으로 지킬 박사의 집으로 가게 되고 거기에서 자살하고 마는 하이드를 발견한다. 이후 지킬 박사의 또 다른 친구 라니언의 유서와 지킬 박사 본인이 남긴 최후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이드와 지킬이 동일 인물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길이도 짧고 줄거리도 단순하다.
헨리 지킬은 사회적 안정, 제도를 잘 지키는 모범 시민이고
그 수표에 서명했던 사람은 아주 교양이 높을 뿐만 아니라 저명하신 분이죠.
주인님은 키가 크고 풍채가 좋은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자는 오히려 난쟁이에 가까웠습니다.
하이드는 범죄자에 못생긴 사나이다.
그냥 못생긴 것이 아니라 추상적으로 못생겼다.(극단적으로 미움을 받는 하이드가 불쌍할 지경) 그는 악의 고갱이로서의 이미지를 가져야만 했다.
그의 인상에는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기분 나쁘고, 어딘지 모르게 혐오스러운 얼굴이지요. 저는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처음 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왜 그런 느낌이 드는지 알 수가 없어요. 어딘가 추하고 볼품없다는 느낌을 주는 모습이었지만 딱히 한 군데를 꼽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의 결론은 "사람이란 마음속에 추악한 욕망을 지니고 있지만 그 욕망이 점점 자라도록 방치하게 되면 결국 망하고 만다"는 것이다.
헨리 지킬은 고통을 겪으면서도 약을 복용한 후에 젊어지는 육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해방감을 얻지만 나중에는 지킬로 되돌아오는 약의 양을 늘려야 했고 방심하고 있을 때면 저절로 하이드로 변하기도 한다.
이것은 전형적인 쾌락의 중독 과정.
게다가 변신하는 약물을 만드는 방법도 좀 어이없었다.
그는 얼굴에 웃음을 띠며 고개를 끄덕여 감사를 표한 다음 붉은 팅크 액체 약간과 가루약 한 봉을 섞더군. 처음에는 붉은빛을 띠고 있던 혼합물은 결정이 녹기 시작하자 이내 밝은 색으로 바뀌며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니 약간의 수증기를 내뿜었다네. 그러더니 갑자기 용솟음이 멈추고 혼합물이 어두운 자주색으로 바뀌었다가 다시금 서서히 연한 초록색이 되더군.
결국
느껴지는 것은
19세기 후반 유럽인들의 편견(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강렬한 종교적인 흑백논리(선과 악, 죄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
그 당시 유럽인들이 식민지 사람들을 어떻게 볼지,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인종 차별의 인식을 그때도 보여주고 있다는 점.
이런 것들이라서 좀 놀랐다.
강렬한 교훈성 때문에 이 소설을 도서관 어린이 코너에 분류해 놓기도 하는 것 같던데.....
이러니까 아이들이 읽기에는 부적합하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