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결혼에 대한 완벽히 실존주의적 해석
(출판사의) 영악한 제목 짓기, 요런 생각이 들었다.
제목에서는 아무래도 '낭만적 연애'가 눈에 들어온다.
(원제는 The Course of Love인 모양인데, 확실히 영악하다)
누군들 낭만적 연애를 꿈꾸지 않겠는가?
비록 현실이 그렇지 않더라도
이 소설은 장편 소설이고 내용도 충분히 상상 가능하다.
그런데 소설 같지 않다. 예전에 있었던, 그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시초라는 '짝'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이 떠오른다.
인물, 사건, 배경 해 가지고 사건이 긴장감 있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라비와 커스틴이 남자 주인공, 여자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데, 라비를 '남자 1호', 커스틴을 '여자 1호'로 바꾸어도 상관없지 싶다.
등장인물들과의 독자의 거리.
애정촌에서의 생활을 보여주고, 내레이션을 깔듯이
설레는 첫 만남 후에 지지고 볶는 일상을 내레이션과 함께 보여줌으로써
계속적으로 등장인물들과의 거리가 부각된다.
성욕은 처음에는 단지 생리적 현상, 호르몬을 깨우고 신경 말단을 자극한 결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실은 감각적이라기보다 관념적이다. 무엇보다 받아들여졌다는 생각, 외로움과 부끄러움이 끝날 거라는 전망과 관련이 있다.
“이제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그녀는 놀리듯이 말한다. “솔직히 맨 처음에 레스토랑으로 걸어갈 때였어요. 당신 엉덩이가 예쁘다는 걸 그때 알았죠. 당신이 따분하게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늘어놓는 중에도 내내 그 생각만 했어요. 그날 밤, 우리가 지금 누운 바로 이 침대에 널브러져서…… 그 엉덩일 쥐어보면 어떨지 상상했어요……. 이런, 여기까지. 나도 부끄러워지려 하네. 아무튼 그 순간이겠네요.”
이런 식이다. 내레이션은 고딕체? 인물의 삶은 명조체? 요런 식으로 서술되면서 등장인물들에게 과몰입되는 것을 방지한다.
그리하여 293페이지의 분량에서 낭만적 연애는 71페이지 정도까지. 그 이후는 지긋지긋한 일상이다.(영악한 제목 짓기, 사랑이란 것에서 낭만적 연애란 초기에 조금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던져버리지 않게 만드는 것은 그 디테일한 일상의 묘사 덕이 아닐까?
이 책이 출판된 것이 2016년이니까 거의 십 년 전, 유럽 사람 이야기인데, 기가 막히게 나의 삶과도 비슷하다.
그 디테일한 생활에 대한 공감, 결혼한 남자의 속마음(기본적으로 소설은 라비의 관점에서 진행된다), 이런 것들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71페이지까지의 낭만적 연애 이야기가 끝나면 작품의 후반부까지는 그 후의 일상에 관한 이야기다.
(인생은 짧고 정말 해야 할 일이 무수히 많은데) 이케아 통로에 서서 어떤 잔을 구입할지 같은 사소한 문제로 다투다 점점 더 언짢아하고 급기야 다른 쇼핑객들의 주의까지 끄는 건 완전히 시간낭비라는 걸 둘 다 똑같이 의식하면서도, 그들은 이케아 통로에 서서 어떤 잔을 구입할지 같은 사소한 문제로 다툰다. 20분 후 두 사람은 서로를 바보 같다고 힐난한 뒤 구입할 뜻을 접고 주차장으로 돌아간다.
(커스틴의 친구들과 만난 후)
집에 오는 길에 라비는 한마디도 하지 않다가 피곤하다고 말하고, 무슨 일이냐는 질문에 그 유명한 “아무것도 아냐”로 대답한다. 아직 새로 칠한 페인트 냄새가 나는 아파트로 들어오자 그는 소파배드가 있는 서재로 향하더니 문을 꽝 닫고 들어간다.
“아이참!” 그녀가 들리게끔 목소리를 높인다. “적어도 왜 그러는지는 말을 해줘야지.”
그러자 그가 대답한다. “빌어먹을. 날 좀 내버려 둬.” 두려움은 가끔 이런 식으로 목소리를 낸다.
그리고 이후에 남자 1호와 여자 1호는 아이를 낳고 외도를 하고 아이는 자란다.
그리고 마침내는 결론에 이른다. 라비는 이제야 결혼할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결혼한 지는 16년이 되었지만 이제야 좀 늦게 라비는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낀다. 역설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결혼이 단지 그 이수 과정에 등록한 사람에게만 중요한 수업을 해준다는 점을 감안할 때 준비는 예식에 선행하기보다 대개 10~20년 후에야 갖춰지는 것이 정상이다.
이제 라비는 낭만주의 개념들이 재난을 낳는다는 것을 안다. 그의 준비된 마음은 완전히 다른 기준들에 기초한 결과다. 그가 결혼할 준비가 된 것은 무엇보다 완벽함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연인이 '완벽하다'는 선언은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징표에 불과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우리를 상당히 실망시켰을 때 그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을 알기 시작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자신이 미쳤음을 자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미쳤다는 생각은 철저히 직관에 반한다. 우리는 자신이 지극히 정상이고 대체로 선량하다고 생각한다. 발을 못 맞추는 건 나머지 사람들이라고...... 그렇지만 성숙은 자신의 광기를 감지하고, 적절한 때에 변명하지 않고 인정하는 능력에서 시작된다.
라비와 커스틴이 결혼할 준비가 된 것은 그들이 서로 잘 맞지 않는다고 가슴 깊이 인식하기 때문이다.
낭만주의 결혼관은 ‘알맞은’ 사람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는 우리의 허다한 관심사와 가치관에 공감하는 사람을 찾는 것으로 인식된다. 장기적으로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너무 다양하고 특이하다. 영구적인 조화는 불가능하다.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파트너는 우연히 기적처럼 모든 취향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 지혜롭고 흔쾌하게 취향의 차이를 놓고 협의할 수 있는 사람이다.
...... 그처럼 완전히 평범한 인생을 사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모든 것을 유지하고, 거의 정상인이라는 지위를 계속 확보하고,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하고, 결혼 생활을 지속하면서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 이 계획들이 어느 영웅담 못지않게 영웅적인 면모를 보일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고 나서 불현듯 드는 생각은
이 소설이야말로 결혼에 대한 실존주의적 해석이라는 것이다.
현실이 부조리함을 깨닫고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라는 카뮈 형의 가르침과시지프 신화(알베르 카뮈)
사랑의 시작이 낭만적 환상임을 깨닫고 그 속에서(그럼에도 결혼을 했다면) 최선을 다해 생활을 하라는 알랭 드 보통의 가르침.
놀랄 만큼 유사하다고 생각했고
정말 그렇다면
이것은 소설인가?
철학인가?
결국 삶이란 낭만적 연애가 아니라는 얘기를 길게도 늘어놓았다.
하지만 읽는 도중에는 '맞지, 맞지'하면서 재미있게 읽었다.
작가 이름은 보통이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는 보통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