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그녀는 대답 대신 걷는다

아침마다 창문을 여는 여자

매일 아침, H는 흐릿한 감정처럼 창문을 연다.

바람은 잿빛, 빛은 녹색, 공기엔 어제의 결말이 남아 있다.

이 글은 말하지 않는 감정이 몸 안에서 어떻게 하루를 견디는지,

그 침묵에 대해 말한다.




매일 아침, H는 같은 시간에 창문을 열었다.


바람은 투명한 잿빛이었고


빛은 묘하게 녹색이었으며,


공기에는 어제의 결말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녀는 늘 같은 위치에 얼어붙는 손가락을 느끼며


오늘이 어제의 부스러기를 밟고 시작된다는 사실을


조용히, 그러나 태연하게 견뎠다.



H의 뇌는 매일같이


날카로운 경고음을 심장 박동으로 전달했다.


익숙한 단어 하나를 듣지 않기 위해


헤드셋을 얹고, 차의 스피커를 조율했다.


아무 소리도 흐르지 않는 침묵의 장치와 함께


H는


녹색의 부유하는 공기를 향해 걸었다.


그것은 허공이었고, 숲이었고,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발바닥 아래,


낯선 통증이 피어올랐다.


통증은 감각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날아온 호출로 다가왔다.


사람들과 풍경들은 멈춰 선 H를 지나쳐갔고,


그녀는 혼자 남겨진 채


그 풍경의 일부가 되었다.






H는


말하지 못한 말들을


아주 천천히,


되감듯 꺼내 듣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들은


언제나 한 박자 늦게 도착했고,


때로는 아예 길을 잃고 오지 않았다.


H는 그 자리에 조용히 주저앉아


흙먼지가 부유하는 공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했지만,


끝내 말하지 못한 채로 남을 것이다.






어떤 오후,


아무 음악도 흐르지 않는 헤드셋을 끼고,


H는 문득


창백하게 구겨진 운동화를 바라보던


그 조용한 시선을 떠올렸다.


그 시선은


어떤 말보다 먼저


H의 갈색 눈동자 안에서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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