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혼자 조지아 여행 / 코룰디 호수 트레킹
10/15_2022
오늘은 코룰디 호수에 가는 날! 아침에 일어나서 어제 챙겨온 굽다리 한 조각과 커피를 마시고 센트럴까지 걸어갔다.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지는 게 트레킹 하기 좋은 날씨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오늘은 좀 걷고 싶었다.
센트럴에 가서 어제 조지가 말한 게이까를 찾으려고 하는데 누군지 모르겠어서 와글와글 모여있는 기사들한테 가서 게이까를 아냐고 물어봤다. “잇츠미!” 하면서 다가오는 사람에게 어제 조지한테 연락처를 받았다고 이야기하는 중인데 갑자기 누군가 “한국사람??!”이렇게 말을 걸어왔다.
한국인 3분도 오늘 코룰디를 간다고 해서 같이 타고 가기로! 후에 이스라엘 친구 2명도 합승해서 총 6명이서 각자 40라리를 내고 코룰디 호수 트레킹 시작 지점으로 향했다.
트빌리시 공항에서 시내까지 100라리 눈탱이를 맞았던 나로서는 코룰디 가는 40라리 전혀 아깝지 않았다. 이런 험한 길을 가는데 그 정도는 받아야지..
앞에 가던 차가 완전히 빠져있었는데 기사 아저씨가 가서 그 차를 빼줬다. 돌아온 기사 아저씨한테 박수 쳐주고 있었는데 또 빠진 차.. 결국 우리 뒤에 오던 차에서도 사람들이 몇몇 나와 그 차를 겨우 빼주고 먼저 지나가게 됐다.
이런 지프차 아니면 절대 못 올라갈 험한 산길.. 마슈로카 타고 메스티아 들어오는 길은 별 거 아니다. 코룰디 갔다 오고 나니까 마라케시에서 메르주가 10번도 갈 수 있을 듯. 앞자리에 타서 더 시야가 좋아서 그랬는지 정말 굴러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거 같았다.
그리고 조지아는 우리나라랑 위도가 같아서 10월이면 단풍을 볼 수 있다! 유럽지역을 돌다 보면 의외로 단풍을 보기가 힘든데 10월에 조지아에서 단풍을 보게 되다니 신기하고 기뻤다.
올라가는 동안 기사 아저씨가 조지아 노래를 틀고 부르기 시작ㅋㅋㅋㅋ구라미한테 나중에 물어보니까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한 국민 음악 같은 거랬다. 나한테 들려주다가 구라미도 따라 부름ㅋㅋㅋㅋ 조지아인들도 흥이 음주가무의 국민인 것이 분명하다.
하차 포인트에서 내렸는데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안 보였다. ‘그래도 뭐 어쩌겠어!’ 비는 눈으로 바뀌었지만 일단은 올라가기 시작!
마지막 등산이 2월의 한라산이었는데 다시 설산을 걷자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경험을 또 언제 해보나 싶어서 신나게 올라감. 중간중간 뒤를 돌아봤는데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등산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다.
올라가다 또 뒤돌아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헛웃음이 났다ㅋㅋㅋㅋ히말라야를 오르면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고도가 올라가니 좀 더 숨이 찼다.
그럼에도 여행 일주일 차에 한국 사람을 만난 게 좋은 컨디션에 작용했다. 오랜만에 뇌 주름이 펴진 상태로 이야기하니까 너무 좋아서 올라가는 게 힘든 줄도 모르고 올랐다.
얼마쯤 올랐을까? 작은 호수가 보였다. 우리는 이게 코룰디 호수인 줄 알고 역시 호수는 별 거 없구나 하고 사진 찍고 놀았다. 근데 이게 코룰디 호수가 아니었던 건에 대하여..
조금 더 올라가니 진짜 코룰디 호수가 보였다. 아까 그 호수보다 크긴 했지만 역시나 별 거 없었다. 날씨가 좋으면 반영이 보였을 텐데 날이 흐려서 검은 호수 그 자체였다ㅋㅋㅋㅋ
그래도 비가 아닌 눈이 와서 새하얀 산속 검은 호수가 예뻤다. 적당히 땀도 흘리고 나니까 기분도 최고! 여기서 사람들이랑 사진 찍고 놀았다. 다른 분들이 가져오신 과자도 나눠먹고 진짜..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좋았다. 내 눈을 빼서 소중한 사람들에 나눠서 보여주고 싶을 만큼 좋았다.
눈 길은 하산이 더 힘들다. 이 정도 날씨를 예상 못해서 스틱이나 아이젠도 준비 안 했는데 꽤 미끄러웠다. 메스티아 시내에는 스키 장비는 물론 등산 장비를 빌려주는 곳이 있으니 짐을 줄이려면 적절히 이용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러나 난 챙겨 온 무릎보호대도 까먹고 온 사람.. 무릎 연골을 갉아가면서 내려가고 있는데 구름이 점점 걷혀가기 시작했다.
멀리서 우리가 타고 온 지프차가 보일 때쯤 구름이 더 많이 걷혀서 안갯속에 감춰져 있던 설산 봉우리가 점점 더 많이 보였다.
진짜 너무 좋아서 여기서 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이런 풍경을 자주 보고 살면 마음씨가 좋아질 수밖에 없을 거 같았다. 메스티아 사람들이 대부분 친절하고 여유 있어 보이는 건 다 이런 자연을 곁에 두고 살기 때문 아닐까.
같이 간 한국인들도 너무 좋아서 마지막까지 열심히 사진 찍고 놀았다ㅋㅋㅋㅋ 두 분은 코룰디에서 비박을 한다고 하셔서 이스라엘 친구랑 한국인 1분이랑 내려가려는데 기사 아저씨가 서성이던 어떤 등산객에게 뭐라 뭐라 하더니 같이 태워서 내려가기 시작.
운전하다가 맞은편에서 차를 만나면 냅다 멈추고 창문 내리고 대화한다. 이게 조지아 문화인 거 같은데 처음 마슈로카 탔을 때는 ‘??? 길 한가운데서요???’ 이런 느낌이었는데 며칠 있었다고 이 문화가 너무 정겹게 느껴졌다.
내려가다가 또 걷고 있는 아저씨를 보더니 세워서 조지아어로 뭐라 뭐라 말을 했다. 아무래도 산이라 위험할 수도 있다 보니 걸어서 내려가는 사람들을 보면 태워가는 분위기인 거 같았다.
그래도 나라면 이런 길을 걸어서 올라가지 않을래요.. 나도 장기 여행으로 나온 거라면 돈도 아끼고 시간도 많으니 날 좋은 날 잡아서 걸어 올라갈 생각도 했을 텐데 이번 여행은 끝이 정해져 있는 여행이라 다시 한번 이런 길을 차 타고 올라올 수 있음에 감사했다.
내려갈 때는 더 무서웠고 더 예뻤다. 아마 올라오는 길에 내리던 비 때문에 지반이 약해져 있거나 웅덩이가 파진 곳이 많아서 기사 아저씨도 엄청 주의를 기울여서 운전하시는 게 느껴졌다. 웅덩이를 넘어갈 때는 또 정말.. 굴러 떨어질 수도 있겠구나.. 하며 괜스레 안전벨트를 붙잡아봄..
나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에 기사 아저씨는 베테랑이다.. 몇 번이고 이곳을 왔다간 사람이고 믿을 수 있다.. 혼자 신뢰를 되새기며 다시 메스티아에 도착! 그런데 웅덩이를 몇 번 넘다가 차에서 꽝! 하는 소리가 났었는데 아무래도 차에 뭔가 문제가 있는 거 같았다. 우리를 태웠던 지점까지 가지 않고 다리 쪽 카페에 차를 세우고 “여기 하차푸리 맛있어! 들어가 봐”하면서 별안간 호객을.. 그리곤 차를 살폈다.
나랑 다른 동행은 멀미를 심하게 해서 뭔갈 먹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그분의 숙소로 가서 차를 마시며 사진을 주고받기로 했다. 그런데 카톡이 안 됨.. 위에서도 서로 카톡 아이디를 주고받으려고 했는데 안돼서 산이라 그런가.. 했는데 알고 보니 카톡 데이터 센터에 불이 나서 그런 거였다. 카톡 없는 한국인은 전화번호 없는 코리안과 같죠.. 결국 아이디만 알아오고 서버가 복구되면 사진을 주고받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와서 씻고 다시 나갈 준비를 했다. 오후 5시쯤이었고 날씨가 갑자기 좋아서 이 날씨를 놓치면 안 되겠다 싶었다. 물이랑 저녁도 살 겸 나가서 걷기 시작. 생각해보니 이때는 아침에 굽다리 한 조각, 산에서 내려와서 동행 언니 숙소에서 빵 조금 뜯어먹은 게 다였다. 조지아 와서 왜인지 식단이 엉망이다ㅋㅋㅋㅋㅋ내 근육 돌려줘요ㅜ
컵라면이 있으면 사려고 시내 쪽으로 걸어가는데 결혼 행사를 보게 됐다. 장식을 한 차 4~5대가 쭉 따라가면서 클락션을 엄청 울렸다. 선루프로는 사람들이 나와서 그 풍경을 찍고 있음. 결혼식이 끝나면 이렇게 차를 타고 클락션을 울리며 축하해주는 게 문화라고 함. 몇몇 마을 사람들도 나와서 그 차들이 왔다 갔다 하며 클락션 울리는 걸 웃으며 보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토요일이구나,, 토요일 예식이었다보다..^^ 미셸이 친구도 일요일에 결혼한다고 하던데 내일도 이 거리는 시끄럽고 신나겠군.
슈퍼 몇 곳을 들렸는데 컵라면이 없었다. 이 조그마한 마을(근데 중심부가 그렇지 메스티아 공항이나 주변부 메스티아 외곽지역까지 하면 절대 작지는 않은..)에 ATM도 있고 환전소도 있다. 약국이나 생활용품 파는 곳도 있음. 식료품 파는 곳에서는 아주 간단한 생활용품만 파는데 생활용품 파는 곳에선 다양한 물품을 팔고 있다.
SPAR 옆에 있는 마트를 마지막으로 가보고 없으면 주인아저씨네 부엌을 빌려서 봉지라면을 해 먹어야겠다 싶었는데 마트에 컵라면이 있었다! 근데 생각보다 꽤 비쌈. 게다가 오늘 라리 환율이 560원을 찍었단 소식을 듣고 급작 슬퍼졌었는데.. 하여간 그럼에도 사각 도시락 라면이랑 원형 도시락 라면 차이를 직접 알아보고자 샀음. 원형 도시락 라면이 더 비싸다.
물을 사려고 했는데 무거울 거 같아서 집 근처에서 사자하고 나가서 걸어가는 길, 우리 집 가는 길 카페 데데 옆 슈퍼가 오래 열길래 물을 사러 들어갔다. 근데 물 한 통에 2라리! 시내의 슈퍼보다 최소 1라리가 더 비싼 가격이었다. 사실 구라미가 조지아 그냥 탭 워터 먹어도 된다고 했는데 좀,, 괜히 물갈이할까 봐 그냥 2라리를 주고 물을 샀다.
롤리폴리 같은 과자를 상자에 쌓아놓고 팔길래 신기해서 이건 어떻게 파냐니까 1키로에 15라리라고 했다. 하나 먹으면서 가라고 주길래 “고마워~ 담에 트레킹 하게 되면 사러 올게~”하고 나와서 먹음. 과자를 별로 안 좋아해서 지나가는 기억으로 두려고 했는데 너무 맛있어서 한입 먹고 사진 찍었다. 혼자 1키로는 많아서 안 사 먹을 거지만 단체로 여행하시는 분들은 트레킹 갈 때 사 먹어도 좋을 듯.
집에 와서는 메스티아의 야경을 보면서 컵라면을 먹었다. 물 사러 나갈 때 주인아저씨가 이따 저녁에 와인이나 차차 먹자고 했는데 저녁 8시가 다돼가는 시간에 남의 공간에 찾아가는 게 조지아 사람들 기준 실례일까 아닐까 모르겠어서 그냥 라면 먹고 혼자 코냑 한 잔 마셨다. 원형 라면이 건더기가 더 실한 느낌이긴 한데 큰 차이는 모르겠다. 그냥 사각형 사 먹을래요 전..
8시쯤에 구라미가 연락 와서 또 걷자 길래 좀 피곤하긴 했는데 바로 자면 너무 속이 안 좋을 거 같아서 (그때까지도 멀미 기운이 남아있던..^^) 나가서 걸었다. 구라미는 맨날 안에서 일해서 시간 나면 밖에 나가고 싶어서 약간 안달 난 느낌이었음ㅋㅋㅋㅋ이번에는 더 많이 걸어서 2시간을 걸었다(??)
수다 떠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집에 돌아오고 나니까 무릎이 너무 너덜거리고 있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 걸음수 근황 좀 보세요..
내일은 비가 하루 종일 예보되어있어서 내일 모래 우쉬굴리로 이동해서 1박을 하고 돌아올 예정이다. 화요일과 수요일이 맑다고 해서 화요일에 우쉬굴리에서 쉬카라 트레킹을 하고 수요일에는 코룰디를 다시 가거나 찰라디 빙하를 가볼 예정..
그 말은 즉, 보르조미&아할치헤 일정은 취소란 말이다ㅋㅋㅋ메스티아와 어지간히 사랑에 빠져버린 나.. 뭐.. 제가 좋으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오늘도 또 더욱더 메스티아를 사랑하게 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