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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PEACE Oct 20. 2022

조지아 Day9. 천국과 지옥의 우쉬굴리

여자 혼자 조지아 여행 / 우쉬굴리 쉬카라 빙하 트레킹

10/17_2022


어젯밤 술을 먹어서 오늘 우쉬굴리까지의 덜컹거리는 길을 참아낼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숙취는 없었다.


그래도 빈 속은 좀 힘들 거 같아서 라면을 먹고 짐을 거실로 빼두고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메스티아 4일 차가 되니까 영업한다고 대화 나눴던 택시 기사들이나 호스텔 친구들을 길거리에서 만나서 인사하고 이야기 나누게 돼서 현지인 체험을 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탄 미니벤

어제 굴러 떨어진 돌 때문에 오늘 못 갈 수도 있을 거 같단 생각을 하면서 갔는데 역시 터미널에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옆 터미널에 한국인 한 분이 서계셔서 인사를 했는데 그분께선 오늘 우쉬굴리 못 간다고 들었다고 했다.

역시나 돌에 맞아 깨져있는 유리창

우선 내가 탈 버스 터미널로 갔는데 또 여기선 돌을 다 치웠다고 갈 수 있다고 했다. 100% 신뢰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갈 수 있다고 하니 탑승!

가다가 이런 뷰 포인트에서 한번 내려줬다. 근데 갑자기 어제 호스텔에서 만났던 태국인 친구 무냐가 튀어나옴! 우리 버스터미널에서 차 2대가 출발했는데 뒤차에 타고 있었던 거였다. 여기서 보니까 또 반가웠다.

가는 길에 돌이 어디서 떨어졌는지 너무나 알 것 같은 구간도 지나고 험한 길도 지나가지만 대부분 포장이 된 길을 지나갔다. 물론 맨 앞자리에서 구불구불한 길을 보면서 가니까 무섭기는 매한가지였다. (일행끼리 붙어 앉을 수 있도록 하다 보니 또 앞자리에 타게 됐다.)

메스티아-우쉬굴리 3박 4일 트레킹 하는 사람들이 들린다는 이파리, 아디시, 엔구리 같은 마을도 지나쳤다. 처음엔 ‘아 다음에 메스티아 오면 순례길 걸었던 거처럼 우쉬굴리까지 트레킹 해야지!’ 했는데 점점 길이 험해질수록 그런 생각이 좀 사라졌다..^^

우쉬굴리 마을 입구 초입부터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멋졌다. 우쉬굴리는 5개의 마을이 모여있는 지역인데 그중 제일 입구에 있는 마을은 1993년인가 1991년인가 9일 동안 내린 엄청난 눈의 여파로 탑과 집이 거의 다 사라지고 사람들도 많이 죽었다고 했다.

우쉬굴리 도착! 도착하자마자 압도하는 대자연에 할 말을 잃었다.


같이 코룰디를 다녀왔던 한국인 2명도 오늘 같이 우쉬굴리에 왔는데 마을 아래쪽에 숙소를 잡았다고 했다. 나는 동네를 돌아보면서 적당한 곳을 찾아볼 생각이라 우선 위쪽으로 가보겠다고 하고 혼자 걷기 시작했다.

old tower hostel인데 가지 마세요.. 이유는 아래에..

얼마 안 올라가서 부킹에서 봤던 호스텔이 있어서 들어가 봤다. 부킹보다 싸거나 같으면 묶으려고 했는데 부킹이랑 똑같이 20라리라고 해서 묶기로! 기대 이상의 컨디션이었다.

원래는 내일 날씨예보가 좋아서 트레킹을 가려고 했는데 오늘의 날씨도 놓칠 수 없어서 가방을 싸들고 밖으로 나갔다.

시네마 DEDE에서 본 영화에서 나온 교회가 숙소 근처에 있었는데 그쪽으로 일단 가봤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술 마시며 노래 부르고 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아침에 만난 한국인 한 분을 만났다. 그 터미널에서는 오늘 우쉬굴리 못 간다고 해서 다른 택시로 합승해서 왔다고 하셨다. 다행히 가격은 똑같이 50라리!

우리가 길을 잘못 들었는지 사람들이 보통 걷는 찻길 말고 동물들이  뜯어먹는 숲길로 걷게 됐다. 길이 아닌  느낌이었지만  걸음 걷다 말고 멈춰 서서 우와,, 하고  가다가 우와,, 하면서 걸었다.

메스티아가 최고로 예쁜 산동네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내가 이런 풍경을 모르고 살아왔다는 게 슬플 정도로 경이로운 풍경이었다.


그분께선 3시에 메스티아로 돌아간다고 하셔서 중간에 헤어졌다. 고작 1시간 좀 넘게 같이 걸은 건데 이런 대자연 속에서 헤어지려니까 많이 아쉬웠다. 어쨌든 혼자 다시 걷기 시작! 쉬카라 빙하까지는 우쉬굴리에서 3시간 걸린다는데 거짓말 같다. 체력이 점점 떨어지는 걸 고려하면 4시간은 걸리는 듯.

빙하는 가까워질 듯 가까워지지 않았고 혼자 걸으니까 지루하고 체력도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어제 포장해온 치즈 하차 푸리는 마을부터 같이 걸어온 강아지랑 나눠먹었다. 사실 강아지가 너무 커서 좀 무서웠기 때문에 얘가 거의 다 먹었다..^^


그래도 내가 가방 내려놓고 쉬면 옆에 앉아서 자다가 또 걸으면 따라오고 그랬다. 생각해보면 그나마 얘가 있어서 소떼들 사이도 덜 겁먹고 지나갈 수 있었다.


이런 물도 건너가고 진흙길도 걸어가야 된다. 중간중간 엄청난 크기의 소와 말들이 있는 건 당연.. 그래도 끝없이 감탄하면서 걸었다.


이제 진짜 끝이 보이는구나 싶었는데 차 두대가 지나갔다. 지나가면서 기사 아저씨가 “헤이 꼬리안~” 이럼(?) 쉬카라 빙하 카페와 캠핑장이 있는 곳까진 차가 들어올 수 있다. 그 주차장부터 쉬카라 빙하까지는 1시간이 걸리는데 이 1시간이 꽤 험한 산길이다.


난 사실 주차장까지가 끝인 줄 알고 거기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기사 아저씨가 너 혼자이고 용감한 거 알겠는데 위험하니까 저 사람들 따라가라고 했다.

여기까지 걸어왔는데 가볼까? 싶어서 우선 더 걷기 시작. 하지만 돌아갈 체력도 안배를 해야 해서 딱 3시 반까지만 가보자 생각하며 올라갔다.


(12시 반쯤 출발해서 주차장 왔을 때가 3시, 여기서 1시간을 더 올라가야 한다.)

길이 꽤나 험하답니다..

사실 이때 이미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라 너무 힘들었는데 차를 타고 온 이들은 쌩쌩히 걸어가서 결국 그들을 놓치게 됐다.

빙하 아랫면까지 보이는 지점

너무 힘들고 빗방울도 좀 떨어지는 데다 돌아갈 길을 생각하니 막막해서 여기까지만 왔다. 여기서 빙하 끝이 어슴푸레 보였는데 가봤자 비슷할 거 같았기 때문에 뒤돌아서 내려가기 시작.

내려가는 길

그렇게 다시 주차장에 도착하니 아까 그 기사 아저씨가 너 끝까지 안 갔다 왔냐며 말을 또 걸어왔다. 그래서 나 우쉬굴리까지 돌아가야 되고 날씨도 안 좋고 좀 힘들어서 그냥 중간에 내려왔다고 했다. 그러니까 내 차는 아까 봤다시피 다 찼는데 다른 차엔 남는 자리가 있어서 네가 타고 갈 수 있다며 “원웨이니까 20라리만 내면 돼”라고 했다.


그래서 고민하고 있는데 “네가 똑똑했더라면 차를 얻어 탈 생각을 하고 끝까지 갔겠지. 네가 그런 현명한 생각을 못한 이유가 뭔지 알아?”이래서 “?? 그게 무슨 뜻이야?”이러니까 “그건 네가 여자이기 때문이지”이러면서 혼자 푸하하하 웃었다(??)

진짜 기분 나빠져서 그냥 간다 하고 출발. 돌아가는 길엔 강아지도 없어져서 정말로 혼자 걸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비가 그치고 다시 해가 나기 시작했다.


근데 설상가상으로 핸드폰 배터리가 없는데 보조배터리로 충전이 안되기 시작했다. 충전이 안 되는 걸 알았던 때가 중간에 같이 걸었던 한국인께서 돌아갔던 지점이라 마을까지 그래도 한 시간 정도는 걸어야 했다.

결국 핸드폰은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사망. 조금 어둑해지니까 숙소가 어디 있는지 헷갈려서 마당에 나와있던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숙소에 도착했다.


돌아와서 보니까 보조배터리가 아니라 잭의 문제였다. 아이폰 충전기 혹시 있냐고 물어보니까 빌려주어서 그래도 충전을 할 수 있었다. 충전기를 빌리는데 주인아저씨가 자기가 피던 담배를 자꾸 피우라고 권했다. 냄새가 이상해서 마리화나냐고 물어보니까 맞다고 해서 나 안 한다고 코리안들은 노 마리화나라고 했다. 조지아 여행하면서 종종 마리화나 냄새를 맡는데 정말 싫다..

마리화나 말고 차차는 어떻냐고 해서 “음.. 그래” 하고 차차랑 커피를 얻어마시고 있는데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들려서 한잔씩 하고 가고 그랬다. 약간 마을의 사랑방 같은 곳인 가봄.


30라리 치곤 조금 부실하지 않은지..?

저녁을 30라리 주고 신청했던 상태라 차차랑 커피 좀 마시고 놀다가 저녁을 먹으러 갔다. 내가 밥 먹기 시작하니 주인아주머니께서 오셔서 티비 유튜브로 조지아 음악을 들려주었다ㅋㅋㅋ오지마을 우쉬굴리에서 스마트 티비라니 뭔가 아이러니한 순간이었다.


조지아 음악 한참 듣다가 한국 문화를 설명하는 조지아 유튜브도 보여줬는데 성형 얘기가 나오니까 나한테 넌 어디 했냐고 물어봄(??) 안 했다고 하니까 한국인들은 다하는 줄 알았다고..^^ 전부 다 하는 건 아니라고 얘기해줬다.

밥을 다 먹고 올라가려니까 아저씨가 차차를 더 마시자고 했다. 트레킹 끝나서 온듯한 여자분도 계셨고 구름이 아직 많아서 별 보일 때까지 기다릴 겸 대화를 나누려고 일단 앉았다.


그 여자분은 독일인이었는데 메스티아에서부터 걸어오신 거였다. 조금 시간이 지나 그분은 올라가고 사람들도 슬슬 집으로 돌아갔다. 나도 올라가려고 하는데 주인아저씨가 새로운 차차를 내오면서 한잔만 더 먹으라고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노래방 오픈(??)

유튜브로 노래방 키고 노래 부르면서 술 마시기 시작;;


그러고 노는 게 신기해서 구경하다가 부엌에 돌아가서 아이폰 충전기를 빌려서 올라갔는데 술 먹고 있던 남자가 2층 테라스에 앉아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 손을 붙들고 니 방 어디냐면서 막 껴안으려고 함;;


많이 취한 거 같은데 힘으로는 안될 거 같아서 어떡하지 하다가 마당 문 잠그러 나온 주인아저씨가 보이길래 내 방 불 안 들어온다고 좀 봐달라고 했다. 방 불 보러 온 아저씨 보고 네 친구 취한 거 같다 제발 좀 보내라고 하니까 알겠다고 하고 나갔다. 밖에서 얘기하는 소리 들리더니 차가 부릉부릉 하고 떠남. 거의 만취로 보였는데 여기 사람들은 진짜 음주운전 많이 한다..


엄청 불쾌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상황이 끝난 줄 알았는데 아저씨가 돌아와서는 걔 보냈다고 걱정 말라고 하면서 나를 안았다. 나는 약간 놀란 나를 달래주는 허그 같은 건 줄 알고 고맙다 하고 떨어지려는데 안 떨어지고 그 상태로 갑자기 내 엉덩이를 더듬기 시작;;; 아 진짜.. 이때 너무 열받아서 초인적인 힘이 나온 건지 내 덩치 두 배인 아저씨를 방 밖으로 밀어내고 문을 잠갔다.

창문에 그림자 보이시나요;;;

몇 번 문을 덜컹거리다가 창문 쪽으로 와서 나를 불렀다. 지나고 나서야 이렇게 글도 쓰지만 당시엔 혹시나 증거가 필요할 일이 생길까 봐 영상을 찍어둠.. 내가 대답 안 하니까 그냥 내려갔는데 호스텔 주인이니까 마스터 키가 있을 거란 그 사실만으로도 무서워서 밤에 잠을 잘 못 잤다.


화장실도 가고 싶었는데 문 여는 게 공포스러워서 그냥 참고 밤을 보내면서 내 행동에 잘못된 점이 있어서 저 사람들이 저런 행동을 한 걸까 자책도 했다.


우쉬굴리에서 좋았던 풍경을 보고 행복했던 기억은 온데간데없고 그냥 짜증 나고 화나고 무엇보다 무서웠다. 혹시 몰라서 같이 버스 타고 온 한국인과 그나마 내가 아는 조지아 사람 중 도움을 얻을 수 있을만한 구라미에게 연락을 남겨놓고 그냥 어서 이 밤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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