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혼자 조지아 여행 / 진짜 우쉬굴리 쉬카라 빙하 트레킹
10/18_2022
우쉬굴리에서 1박을 했던 건 밤에 별을 보기 위해서였는데 어제의 사건 때문에 별은커녕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아침이 거의 다 돼서야 잠에 들어서 10시쯤 눈 뜨자마자 양치만 하고 짐을 다 챙겨서 나왔다. 근데 주인아저씨랑 딱 마주침.
그냥 지나가려는데 나를 불러 세우고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하더라. 딱히 마음이 풀리진 않았지만 뭔가 더 조치를 취하느라 시간 버려가며 여행을 망치기도 싫고 더 생각하기도 싫어서 알겠다고만 하고 나왔다.
나와서 걷는데 오늘은 날씨가 더 좋았다. 그럼에도 내 마음은 찝찝하고 자책감도 남고 도무지 좋아지질 않았다. 한참을 걷다가 일단 뭐라도 좀 먹자 싶어서 문 연 카페를 찾는데 문 연 곳이 많이 없었다.
수프 15라리 + 콜라 4라리 = 19라리
돌아 돌아 한 군데를 찾아서 들어갔다. 영어를 전혀 못하셔서 수프를 시키면서 낀지(고수)만 빼 달라고 부탁했는데 다행히도 맛있는 고깃국이었다. 그리고 어제저녁도 그랬지만 수프엔 라면 부순 것도 같이 들어있었다.
우쉬굴리 강아지들은 메스티아 애들보다 더 큰 거 같다. 이정도면 사자 아닌지.. 밥 먹는데 저렇게 옆에 있다가 벌떡 일어나서 식탁 냄새 맡다가 다시 안았다.
오늘은 3시에 메스티아 돌아가는 버스를 타야 해서 쉬카라 빙하 쪽으로 한 30분만 걸어갔다가 돌아올 생각이었다. 어제는 풀길로 갔으니 찻길로도 걸어가 봐야지 하면서 걷는데 정말 날씨가 좋았다.
이쯤 걸어가고 있는데 미니 벤 한대가 서더니 타라고 했다. 괜찮다 하고 다시 걸어가는데 또 막 부르길래 다시 보니까 어제 내 뒤차를 운전했고 또 나랑 코룰디를 같이 갔던 기사 아저씨였다!
반가워서 인사하니까 너 오늘 메스티아 가는 거 아니냐면서 타라길래 탔다. (이때까지만 해도 난 그냥 어제는 사람이 많아서 2대가 왔는데 오늘은 사람이 별로 없어서 한대만 왔나 보다 생각했음)
근데 쉬카라 빙하 쪽으로 차가 계속 갔다. 내가 어제 한참을 걸어왔던 길을 이렇게 쉽게 오다니 조금 허망하다 생각하는 와중에 어느새 쉬카라 빙하 카페 주차장에 도착했다.
내려서 일단 버스표를 보여주며 “이 차 메스티아 간단 말 맞지?” 이러니까 맞다고 그랬다. ”어제 나 다른 차 타고 왔는데 이 차 타면 되는 거 맞냐”라고 다시 확인했는데 ”노 프라블럼” 이라며 날씨 좋다고 올라가자고 했다.
사실 어제 걸었던 것과 잠을 못 잔 게 겹쳐서 30분만 설렁설렁 걸을 생각이었는데 또 막상 코앞에 오니까 어제 못 가본 끝까지 가볼까 욕심이 났다.
중간에 기사 아저씨는 힘들다고 3시까지 오라며 돌아갔다. 근데 내가 어제 간 지점은 완전 입구였다. 점점 더 길이 험해져서 사진 찍을 생각도 접고 모든 걸 주머니에 넣고 걷기 시작했다.
정말 힘들어서 진짜 돌아갈까 싶었는데 저 멀리 앉아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게 끝 지점이겠거니 싶어서 마지막 힘을 짜내서 결국 도착!
가까이서 보나 멀리서 보나 멋졌지만 좀 다른 건 빙하 안에서 균열이 일어나는 소리들이 들렸다. 날씨가 좋아서 정말 전부 다 보였는데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사진에도 안 담기는 풍경이었다. 너무 장대해서 현실감이라곤 전혀 없었달까.
한참을 빙하 앞에 앉아있다가 1시 50분에 서둘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난 잘 가꾸어진 등산로만 다녀본 사람인지라 내려가는 길이 너무 힘들었다. 길이 만들어진 게 아니라 사람들이 다녀서 풀이 좀 꺾여있는 곳을 가는, 길이 길이 아닌 길을 따라 올라왔는데 넘어지지 않으려고 바닥을 보며 걷다 보니 내 키만 한 갈대숲 사이에 들어와 있는 거 아닌가.. 맞다.. 길을 잃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쉬카라 빙하 트레킹은 올라갈 때 오른쪽으로 빙하가 녹아 흐르는 계곡을 따라 걸으면 된다는 건데 물소리를 따라 거대한 돌들을 기어가듯이 넘어서 겨우 다시 길을 찾았다.
올라갈 때는 빙하를 보면서 가니까 방향 감각을 잃을 이유가 없었는데 내려갈 땐 딱 보이는 목표지점이 없어서 길 찾는 게 너무 힘들었어서 동행을 구해서 가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우여곡절 끝에 내려와서 다른 사람들이 올 때까지 차에 앉아있는데 기사 아저씨가 와서 차차 좋아하냐며 오늘 메스티아 가서 차차 먹자고 함(??) 그래서 ”아,, 나 좀 피곤해서 안 될 거 같은데”라고 하니까 무릎을 잡고 흔들면서 피곤할 때 차차 먹으면 잠 잘 온다고 함;;
어제 일도 그렇고 막 만지는 것도 짜증 나서 정색하고 너랑 차차 먹기 싫다니까 어깨 으쓱하며 사라졌다가 다시 와선 “우쉬굴리에서 쉬카라 빙하 오는 거 40라리인데”라고 하는 거 아니겠음? 그래서 “나 우쉬굴리에서부터 탄 거 아니고 네가 메스티아 간다고 타라며” 이러니까 그럼 원웨이 가격만 내라고 했다. 좀 짜증 났는데 차차 타령 듣는 거 보단 나을 거 같아서 그냥 “나 거의 입구에서 탔으니까 30낼게” 하고 30라리를 줬다.
같이 차 타고 왔던 사람들이 늦게 내려와서 3시 20분쯤 쉬카라 빙하 주차장에서 출발했다. 근데 우쉬굴리에 도착하니까 “너 차 바꿔 타야돼!”라고 해서 바꿔 탔다. 그때 갈아타는 차는 좀 더 작았고 나 말고 승객도 2명밖에 없었다. 게다가 새 차 기사가 좀 타박하는 말투로 처음 탔던 기사한테 뭐라 하길래 이때부터 좀 싸한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든 오늘 메스티아로 가기만 하면 되니까 일단 갈아탐.
내려오는 길에 호수도 들리고 날씨가 좋아서 우쉬바 산도 전부 다 보였다.
어찌어찌 메스티아에 도착. 우쉬굴리 풍경은 정말 멋졌는데 체력적으로도 힘들었고 내가 경험한 일도 좋지 않아서 메스티아 입구에서부터는 그냥 빨리 숙소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터미널에 내렸는데.. 갑자기 어제 우쉬굴리 탈 때 운전했던 기사가 나한테 다가와서 너 왜 3시에 안 왔냐고 그랬다. 그래서 “나 네 친구가 메스티아 간다고 그거 타라고 해서 탔다”니까 네 기사는 난데 걔 말을 왜 듣냐고 함(??) 그래서 그 기사한테 연락 못 받았냐 하니 못 받았고 나 너 30분 기다렸다, 다른 승객들도 기다렸다, 넌 걔 말 말고 네 기사 말을 들었어야 했다, 걔 차는 정원이 다 차있었다며 화가 엄청 나 보였다.
얘기를 들어보니 연락도 못 받았고 나를 태우는 것도 얘기가 안되어 있던 거였고 미니 벤 시스템이 우리나라처럼 버스 회사에서 인원에 따라 버스를 운행하는 개념이 아니라 버스 회사에서 표를 끊으면서부터 승객이 기사에게 배정되는 거 같았다. 우쉬굴리에서부터 날 태워온 기사는 원래 내가 탔어야 할 기사랑 친한 사람인데 마침 우쉬굴리에서 태워올 사람이 있어서 부탁한 거라고 했다.
내심 억울했지만 시스템을 몰랐던 내 잘못도 있고 어쨌든 기사 포함 여러 명이 날 기다린 데다 다른 사람한테 부탁까지 했을 그 사람도 화날만하다 싶어서 사과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쉬굴리 분명 좋았는데 왜 이렇게 기빨리고 힘든지.. 그나마 숙소에 와서 다시 방에 짐을 푸니까 좀 마음이 편안해졌다.
밀린 빨래를 돌리고 샤워를 하고 그냥 하루 종일 침대에서 있었다. 사람 만날 기분도 아니고 나가기도 싫어서 라면을 먹고 밀린 일기를 쓰는데 정말 여러 의미로 어메이징 했던 우쉬굴리의 1박.
아직까지 그 1박이 어떻게 기억될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끝까지 다녀와서 미련이라곤 남을 게 없을 것 같다. 만약 가지 않았더라면 언제가 한 날엔 ‘아 그때 끝까지 가볼걸’ 생각도 들었겠지. 어마어마했던 우쉬굴리, 부디 시간이 지나 좋은 기억만 남고 사라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