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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PEACE Oct 23. 2022

조지아 Day11. 가장 쉽게 나를 달래는 법

여자 혼자 조지아 여행 / 스바네티 박물관, 메스티아 산책

10/19_2022

어제 싱숭생숭하게 메스티아로 돌아와서 딱히 계획이 없었다. 우쉬굴리에서 트레킹은 지겹도록 해서 트레킹을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 때문에 오늘은 뭘 할까, 하며 테라스로 나갔는데 날씨가 너무 좋았다. 이 날씨를 놓칠 수 없어서 나가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은 대충 준비를 하고 밥부터 먹으러 갔다. 코룰디 호수 트레킹 갔다 왔을 때 내려줬던 식당이 내가 구글맵에 찍어둔 샤슬릭 맛집이었다.

<Lushnu Qor Restourant Beer Garden> 돼지고기 샤슬릭 15라리+콘브레드 with치즈 5라리+아메리카노 5라리+서비스차지 10% = 27.5라리


첫 입은 맛있었는데 너무 짜서 도무지 끝까지 먹기가 힘들었다. 결국 조금 남기고 구글 맵에 아무 곳이나 찍어서 메스티아 설산을 보러 가자 싶어서 다시 숙소 쪽으로 건너왔다.


저 빨간 표지판 뒤로 가야했음..

여기를 가려고 하니 너무 길이 아닌 곳으로 가야 했다. 이틀 내리 쉬카라 빙하를 갔다 온 후유증이 있어서 다시 턴.


생각해보니까 공항 쪽으로는 구라미랑 저녁에만 가봤지 낮에는 안 가봐서 그쪽으로 방향을 돌려서 걸어갔다.


낮에 가니까 이런 풍경이구나. 코룰디 호수 트레킹 가는 길이 건너편으로 보이고 알고 보니 그 길이 찰라디 빙하 트레킹 가는 길이었다. 날씨가 좋아서 너머로 찰라디 빙하가 살짝 보이고 또 뒤를 돌면 메스티아 마을이 보였다.


메스티아 공항

하지만 지나가던 차가 태워준다고 할 때나 아저씨들이 대뜸 인사하면서 이것저것 물어볼 땐 거부감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오늘은 조지아 남자를 굳이 마주치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인적이 점점 드물어졌다. 찰라디 빙하 가는 길과 오르막길로 나누어졌는데 빙하까지 갈 것도 아니라서 그냥 오르막 쪽으로 가봤다.


수평 안맞은 게 아니고 지형이 이렇답니다..

올라가다 보니까 찻길이 끊기고 잔디밭이 펼쳐지고 찰라디 빙하가 빼꼼 보였다. 문을 닫은 작은 정교회와 거기서 뒤를 돌면 보이는 코룰디 호수 가는 길, 그 너머의 라일라 산 그리고 설산과 대비되는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나무들이 보였다.


이때 나 메스티아에 잘 있구나, 하며 기분이 많이 풀려서 사진도 찍어보고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돌아오는 길. 아까 정교회 앞에서 나무 울타리를 치던 아저씨가 태워준다고 했는데 그냥 거절을 했다. 그래도 좀 걷기 전 보단 진심으로 웃으며 거절할 수 있었다.


공항을 다 와갈 때쯤 갑자기 빗방울이 조금 떨어지기 시작했다. 저 멀리 설산까지 거의 먹구름이 덮여있었다. 조금 서둘러 걸어서 우선 숙소로 돌아왔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 커피를 타서 좀 마시고 메스티아 뷰를 볼 수 있는 교회로 가봤다. 사실 아까 언덕에서 본 풍경보다 나을 건 없었지만.. 그냥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는 날도 하루 남았단 게 조금 슬펐다.



메스티아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미련도 덜 남겠지 싶어서 스바네티 박물관(Svaneti Museum of History and Ethnography)도 갔다. 10라리로 알고 갔는데 20라리로 오른 가격, 그래도 이왕 들어온 김에 들어가 봤는데 거의 종교화나 종교에 관련된 11-14세기 스바네티 지역에서 발굴된 것들이 전시되어있어 기독교에 대해 잘 모르는 나로서는 좀 아까운 가격이었다.


참고로 박물관 이 뷰는 표를 안 끊어도 볼 수 있어요

사진을 촬영할 수 없어서 못 찍었는데 옛날에 쓰던 단검이나 장총, 기원전 5세기 전부터 썼다는 동전 같은 걸 보면서 인류의 대단함을 느끼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너무 짧은 전시여서 아쉬울 따름, 그래도 이 또한 들어가 보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일이니까 괜찮았다.


숙소 테라스! 이 쇼파에 맨날 앉아있었다.

숙소로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좀 쉬었다. 밥을 먹으러 나가려 보니 비가 오고 있었다. 비를 뚫고 갈까, 그냥 또 컵라면을 먹을까 고민을 한참 하다가 쌀을 좀 먹고 싶고, 메스티아의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계속 숙소에서만 보내기는 싫어서 옷을 챙겨 입고 나갔다.


다행히 비는 거의 그쳐 가고 있었다. 카페 파노라마에 ’ 야채를 곁들인 밥’을 팔고 있는 걸 봐서 그걸 먹으러 가봤다. 구글 평점이 안 좋은데 반해 내가 느낄 땐 주인아주머니도 정겹고 음식도 나쁘지 않은 곳이다.

<cafe panorama> 치킨 수프 10라리+밥과 야채 10라리+차 5라리+서비스차지 10% =27.5라리

근데 0.5 없어서 찾고 있으니까 그냥 27만 내라고 하셨다.


야채를 곁들인 밥은 볶음밥으로 나왔고 치킨 수프도 고수를 빼 달라고 했는데 안에 죽처럼 쌀이 조금 들어있었다. 확실히 쌀이 고프긴 했는지 조지아에 와서 거의 처음으로 바닥까지 보이도록 다 먹었다. 정말 오랜만에 쌀을 먹고 나니까 우쉬굴리에서부터 안 좋았던 기분이 많이 풀렸다.


그 기분으로 동네를 크게 둘러서 걸어왔다. 오늘도 어느새 2만 보를 넘게 걸었고 다리와 발이 아파왔다. 그래도 걷지 않았더라면 하루 종일 기분이 풀리지 않았겠지.


구라미를 잠깐 만나서 걸으면서 우쉬굴리에서의 일을 말해 줬는데(만약을 대비해 간단한 상황 설명을 디엠으로 보내 놨었기 때문에..) 자세한 내막을 듣고 극대노했다. 그러면서 우쉬굴리는 메스티아 보다 더 시골이라 아직도 가끔 동물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며 메스티아 사람들은 안 그런다고 함(정말..?) 걷다가 비가 내려서 급하게 헤어지고 들어왔다.


무슈쿠디아니 매너

내일이 메스티아의 마지막 날. 원래는 우쉬굴리 빼고 4박을 예정하고 왔던 곳인데 숙소(무슈쿠디아니 매너)와 메스티아에 빠져 7박을 하게 되다니, 이런 곳을 내가 잊을 수 있을까?


모로코에서 알리네를 떠나며  다시 오겠다고 다짐했지만 그게 정말 힘든 일인    요즘처럼 다시 오기는 정말 힘들겠지. 다시 온다고 하더라도 지금 내가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 있지 않을 거다.


숙소에서 다리 건너면 시작되는 센트럴

모든 것은 사라지거나 변화하겠지. 무슈쿠디아니 매너에 처음 들어와서 본 설산을 보았을 때의 마음, 밤에 걸으며 본 타워의 불빛들의 찬란함, 내내 앉아있던 테라스의 소파와 내 방의 침대 같은 이곳의 기쁨들, 난 아마 절대 다시 느낄 수 없을 거다.


내일은 마지막 메스티아,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것들을 마지막으로 잘 느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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