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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PEACE May 17. 2022

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2019)

노동자로 살아가기

*이 책은 단편집으로, 인상 깊었던 세 작품

<잘 살겠습니다>와 <일의 기쁨과 슬픔>, <탐페레 공항> 위주로 쓰인 리뷰입니다.


 


<잘 살겠습니다>

나에게 보내는 응원


줄거리

이 책의 첫 번째 이야기 <잘 살겠습니다>에서는 자본주의 한국 사회를 명확히 꿰뚫어 보는 시선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이 세상의 이치는 <잘 살겠습니다> 주인공의 입을 빌려 말하자면 "오만 원을 내야 오만 원을 돌려받는 거고, 만 이천 원을 내면 만 이천 원짜리 축하를 받는 거라고. 에비동에 새우가 빼곡하게 들어 있는 건 가게 주인이 착해서가 아니라 특 에비동을 주문했기 때문인 거고, 특 에비동은 일반 에비동보다 사천 원이 더 비싸다는 거." 즉 1+1은 2라는 정확한 기브 앤 테이크 공식이다.


 그런 세상에서 '세상 물정을 몰라' 그 공식을 따르지 않는 빛나 언니가 있는데, 그녀는 긴 머리를 치렁치렁 늘어 뜨리고 다녀 ‘총무과 라푼젤’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고, 부서 이동 공지에 대한 답장을 전체 회신으로 돌려 '전체회신녀'라는 별명까지 얻은 주인공의 입사 동기였다. 전체 회신을 할뻔한 적이 있는 주인공은 그 사건을 통해 빛나 언니에게 약간의 동질감을 동정심을 느끼는 한편 '나였으면 그러지 않을 텐데'라며 한 발자국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주인공이 분노를 터트리게 되는 사건이 곧 발생한다. 그리 가깝지도 않은 사이에 결혼 정보를 물어보려 결혼식 사흘 전에 따로 청첩장을 받아내는 약속을 잡아 특에비동을 먹고 결혼 정보까지 알아내 놓고는 결혼식장에는 오지도 않고, 자신의 청첩장은 주인공의 키보드 밑에 넣어두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25,000(축의금 대신 먹은 밥값)-13,000(내가 청첩장 주면서 산 밥값)=12,000] 이 계산 아래 주인공은 그 금액을 맞추어 선물을 사서 전달한다. 하지만 뜻밖에도 빛나는 언니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주인공의 선물을 사진 찍어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까지 해둔다.


 결국 빛나 언니의 답례떡에서 새벽녘의 온기를 느끼는 주인공은 빛나 언니가 잘 살기를 바란다.







<잘 살겠습니다>의 주인공은 야망이 있는 여성으로, 원하는 부서로 가기 위해 '일 잘한다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라는 말을 들을 만큼 일을 해야 했다. 그럼에도 입사 동기인 남자 친구는 세전 천삼백만 원을 받는 현실. 이 소설집은 그런 자본주의 사회에 내던져진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피해를 주기 싫고, 받기도 싫은 개인주의가 팽배한 이 세계에서 자신이 깨닫고 알아내고 성장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결국 제자리걸음을 하게 된다. 빛나 언니가 세상 물정을 모르는 밉상 캐릭터로 그려지긴 하지만, 그런 빛나 언니의 행동에 주의를 준 사람이 있었으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어쩌면 여태까지 그 누구도 빛나 언니에게 세상 물정을 알려주지 않을 것일 수도 있다. 주인공 역시 '세상 물정 모르는' 언니를 표면적인 위로를 건넬 뿐 인간과 인간의 내면의 소통은 하지 않는다. 이 세계는 그런 게 당연한 거다.


세상 물정을 알려주다가 꼰대가 되어버릴까 입을 닫고, 조금이라도 세상 물정에 눈 뜬 사람과 일하기 위해 경력이 1년일지라도 경력직을 뽑고, 신입은 오갈 곳을 잃는 세계. 세대 간 직급 간 소통이 부재되어가는 세계. 그런 세계가 너무 시리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우리네 삶이 시리게 얼어붙지 않고 유지될 수 있는 까닭이 이 이야기에 있다.


주인공은 이 세계의 공식을 잘 지키는 사람이다. 그런 주인공이 "빛나 언니에게 알려주려는" 행위는 어쩌면 오만함으로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이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주인공과 빛나 언니의 관계는 더 깊은 연대를 요하는 듯하다. 주인공과 빛나 언니의 차이는 세상 물정에 밝고 어둡고 뿐이지, 결국  첫 부서 발령부터 연봉까지 남자 입사 동기와의 차별을 겪어야 하는 사람 아닌가. 그래서 주인공은 진정으로 알려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새벽 온기가 남아있는 답례떡을 먹으며 빛나 언니가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은 같은 집단의 사람으로서의 응원이다. 그런 작은 속마음의 응원들로 우리의 세계가 아직 얼어붙지 않은 건 아닐까?






<일의 기쁨과 슬픔>

그래도 우리 잘 살아보자


줄거리


두 번째 이야기 <일의 기쁨과 슬픔>의 주인공은 스타트업 특성을 고려하여 수평적 업무환경 조성을 위해 영어 이름을 부르도록 되어있지만 대표와 얘기할 때는 "데이빗께서 요청하신..."이라고 말하게 되는, 심지어 대표는 그것을 흡족해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는 실질적 막내인 안나이다. 안나의 회사에서 만든 중고 직거래 앱 '우동마켓'에는 새 전자제품을 대량으로 판매하는 거북이알이라는 유저가 있다. 데이빗은 매일 고가의 전자제품을 새 제품으로 올리는 그 유저를 의심하며 안나에게 거북이알을 만나보라고 지시한다.


 이야기의 전말은 이러하다. 거북이알은 대기업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회사의 오너는 SNS에서 꽤나 인기가 많았다. SNS 팔로워들은 "회장님, 루바 공연 열어주세요!"라며 댓글을 달았고, 거북이 알은 그에 따라 특진이 걸린 내한공연을 성사시켰다. 하지만 회장의 인스타가 아닌 홈페이지에 내한공연 소식을 먼저 공지했다는 것으로 회장은 불같이 화를 내었고, 결국 특진도 취소되고 밉보인 거북이알은 월급을 포인트로 받게 된 것이다.


그런 거북이알의 사연을 듣게 된 안나는 거북이알의 중고 물품을 하나 더 구매해 앙숙과도 같은 케빈에게 선물한다. 마침 들어온 월급으로 홍콩행 왕복 비행기 표를 끊는다. "오늘은 월급날이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하면서.






월급을 포인트로 받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마음이 동하는 이유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보다도 더 말도 안 되는 일이 매 순간 도사리고 있는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세상에서도 우리는 각자의 세계에 존재하며 각자의 슬픔과 기쁨을 느껴야만 한다. 그 슬픔과 좌절, 기쁨과 행복과 별개로 세상은 쉽사리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의 '기쁨'을 알아서 찾아야만 살아갈 수 있다.


 표면적인 효율성을 핑계로 비효율적으로 하루 30분을 갉아먹는 스크럼을 하는 스타트업 회사 대표와 자신의 '인스타 자아'를 무시당했다는 이유로 승진을 누락시키고 포인트로 월급을 주는 회장이 있듯, 어딜 가나 우리의 위에는 더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있는 듯하다.


게다가 그런 비효율성과 무데뽀로 추진하는 갑질에 속절없이 피해를 입는 건 연약한 우리일 뿐이다.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우리는 '기쁨'을 찾지 않고서는 자리를 보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주인공에게는 조성진이, 거북이알에게는 거북이가 기쁨이다.


월급 대신 찍힌 너무 많은 포인트에 비참함을 느낀 거북이알의 밤은 어쩐지 내게 없었던 일이지만 같은 슬픔을 느끼게 했다. 그 밤이 지나 결국 해가 떴고 거북이알은 어김없이 우리를 슬픔으로 몰아넣는 세계 속에 존재하며 출근을 해야 한다는 점이 그랬다.


확실한 건 개인의 좌절이 얼마나 깊고 슬프냐는 문제와 세상은 달라지냐는 문제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어 보인단 거다. 변화는 거북이의 속도보다 느리다. 그런 세상에서 거북이알은 그녀의 기쁨을 지키기 위해 노동을 포기하지 않았다. 포인트를 돈으로 전환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결국 찾게 된다.


노동을 대가로 급여를 타 먹는 우리에게 노동 그 자체가 삶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결의는 조금 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를 슬픔에 몰아넣는 세상에서도, 그래도 기쁨을 찾으며 잘 살아보자'라고 건네는 따뜻한 응원에 감동할 수밖에 없다.






<탐페레 공항>

말랑한 기억 조각 가지고 살기


줄거리


주인공은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가는 길에 핀란드의 탐페레라는 작은 도시를 경유하는데, 그곳에서 세계 2차 대전에 참전했다는 늙은 노인과 짧은 산책을 하게 된다. 3개월간의 워킹홀리데이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자 우체통에는 노인이 보낸 사진과 편지가 들어있었다. 주인공은 3개월간 노인을 문 앞에 세워둔 것처럼 반가운 마음에 편지를 뜯어보고 답장을 해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이런저런 핑계 끝에 결국 답장을 하지 못한다.


시간이 꽤 흐르는 동안 주인공은 '다큐 PD'라는 꿈을 접고 4대 보험의 안락함이 있는 회사로 취직을 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신입 피디 공개채용 공고를 보고 자기도 모르는 새 이력서를 채워가던 중 '인생에서 가장 후회했던 경험과 그 이유를 기술하시오.'라는 문항에서 노인에게 답장을 하지 못한 것을 떠올리게 된다. 서랍 깊숙이 묻어두었던 노인의 편지를 다시 꺼내어보자 사진이 구겨지지 않도록 시리얼 박스를 뒤에 덧붙여 놓고 자신의 연락처까지 남겨두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은 이미 노인이 죽었을 것이라는 예감과 슬픔에 충동적으로 전화를 건다. 다행히 노인은 자고 있었다. 주인공은 뒤늦게 답장을 쓰기 시작한다.







<탐페레 공항> 이야기는 나의 삶을 누가 엿보고 간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나에겐 고심 끝의 결정이자 엄청난 도전이고 인생의 특별한 이벤트였는데,

다 준비하고 나서 보니 결국 남들이 한 번씩 해보는 걸 나도 똑같이 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게,

유행의 일부일 뿐이라는 게, 그저 준비운동을 마친 것일 뿐이라는 게,

조금은 씁쓸하게 느껴졌다."

탐페레 공항 중


이런 화자의 말처럼 우리나라 청년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이 참 많다. 대학 졸업과 학교 성적은 당연하고 대외활동이나 영어성적, 자격증뿐만 아니라 해외 연수나 워킹 홀리데이 같은 경험도 필요하다. 나의 젊은 날에는 꽤 특별한 이벤트였던 편입, 여행, 인턴 등의 경험도 유행이자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하는 것 중의 일부일 뿐이었다는 걸 알았을 때는 조금 슬펐다. 나에게는 특별했던 것이 이 세상에서는 전혀 특별할 것 하나 없는 경험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것 같다.



주인공에게 할아버지(얀)와의 만남이 꿈과 같았던 이유는 아마도 자신의 꿈(다큐 PD)을 마음 편히 털어놓을 수 있었던 오로라 같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얀과 '나'는 백야가 없는 겨울에 핀란드를 다시 찾아 오로라를 찍겠다는 약속을 했다. 오로라가 일렁이며 사라지듯 이제 '나'는 꿈을 잃었고, 4대 보험 어쩌고 하는 단어에 푹신함을 느끼게 되었다. 얀을 만났던 '나'와 지금의 '나'는 얇은 선으로 이어진 사람일 뿐 다른 종류의 사람이 된 셈이다.



백야, 2차 대전에 참전한 눈먼 노인, 산책, 오로라를 보러 오겠다는 약속, 서로를 찍는 사진, 이 모든 키워드는 마음을 말랑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세계는 말랑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기에는 참으로 퍽퍽하고 험난한 곳이다. 인기 강사들은 '독하게 공부하라'라고 말하고 '독하게 성과를 내야' 승진을 할 수 있다. 그런 세상에서 말랑한 마음을 잊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가.


하지만 우리가 인간이라서 다행인 건 영영 잊지 않고 다시 꺼내어볼 수 있다는 점이다. 고단하고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말랑한 기억의 조각이 늘어가길 바란다.







이 단편소설집에는 본 글에 소개된 <잘 살겠습니다>, <일의 기쁨과 슬픔>, <탐페레 공항> 외에 자본주의 현대사회에서 여성에게 위협이 되는 폭력과 혐오에 대해 유쾌하게 꼬집어낸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와 <새벽의 방문자들>, 노동자로서 살아가는 것이 익숙한 주인공이 청소 도우미를 고용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도움의 손길>, 꿈을 향해 달려가는 효율성이 능률이 떨어지는 냉장고와 비슷한 청년의 이야기를 다룬 <다소 낮음>이 실려있다.

일전에 [뻔뻔한 딕&제인] 영화 보고 이 자본주의 인간의 존엄성만으로 자본주의의 논리를 뛰어넘어 설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가졌다. 나는 여전히 이 세상에서 내가 어떻게 나의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저 나와 같은 존재의 사람들을 응원하고, 일의 슬픔이 몰아치는 세상에서 기쁨을 찾아내고, 꿈같은 추억을 종종 떠올리며 나의 꿈을 잊지 않으려 하며 살고 있다.

이 소설집이 그려내는 인물들도 그렇다. 모든 주인공들은 특별히 잘나거나 불우하지 않고 아주 평범한 개인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하듯 이 세계의 못남을 미워하다가도 타협하고, 살아가기 위해 일의 '기쁨'을 찾아내고, 꿈같은 한때를 추억하는 사람들이다. 이 책은 나의 이야기이자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다.

그럼 모두들 열심히 노동하고 그에 맞는 대가를 받으시길, 가끔은 좋은 기억 조각을 꺼내 웃으시길,

그리고 잘 사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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