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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PEACE May 20. 2022

꽃 같은 시절 / 공선옥 (2011)

지렁이에게도 울음소리가 있다네




줄거리



입구에 돌담집이 소담하게 반기고, 계절마다 꽃이 피는 시골 마을 유정면 진평리에 사는 무술굴떠기가 집을 두고 세상을 떠난다. 한편 재개발로 합당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길거리에 나앉은 영희 네 세 식구는 트럭을 타고 어디 몸 뉠 곳을 찾아서 점점 깊은 시골로 향하는 중이다. 무수굴떠기가 떠나고 외로움에 몸을 떨어대며 약해져 가던 집에 복사꽃이 피어난다. 달빛 아래 환하게 빛나는 복사 꽃이 엮어준 인연으로 영희 네는 무수굴떠기의 집에 살 수 있게 된다. 

 

ㅡ이 꽃 때문에 영희는 진평리에 살게 되고 꽃 때문에 대책 위원장이 되고, 꽃 때문에 투쟁을 한다. 무수굴떠기의 아들 만택에게 살게 해 주어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러 간 영희를 더러 만택의 아내 귀옥은 ‘사람꽃’이라 말한다. 꽃 때문에 진평리에 살게 된 영희 꽃 때문에 울고 웃고, 꽃이 되었다.

 

진짜 이야기는 논과 밭을 가로지르는 덜그락 쾅쾅 소리로부터 시작된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유정면에 돌공장이 불법 가동을 시작하면서 온갖 농작물에는 돌가루가 씹히고 주민들은 잠을 못 이루는 나날을 보내게 된 것이다. 영희는 스스로를 외지인이라 여기며 ‘돌공장 가동 저지 시위’에서 발을 빼려 하지만 엉겁결에 따라간 시위 현장에서 “그저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만 살고 싶다”는 할머니의 말에 마음의 울림을 느끼고 대책 위원장 직을 맡게 된다.  

 

순양 석재와 순양 군청의 짜고 치기 판에 마을 사람들의 투쟁은 번번이 좌절된다. 그럼에도 영희는 주저앉지 않고 돌공장 가동을 저지하기 위해 할머니들과 고군분투한다. 군청 앞에서, 돌공장 앞에서 시위를 하고 불법시위로 경찰서를 가기도 하고 서울에서 온 소설가 해정에게 투쟁 이야기를 써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들의 왕 언니 오명순이 세상을 떠나 저승에서 무수굴떠기를 다시 만난다. 한편 투쟁에 열심이던 영희는 결국 쓰러지고, 상태는 악화되어 저승 입구에까지 혼이 오르고 마는데, 그를 발견한 오명순과 무수굴떠기는 노래를 부르며 영희의 어린 혼을 달래어 이승으로 보낸다.





이 이야기는 귀가 밝다. 거미, 새, 벌, 나무, 지렁이, 집..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저마다의 소리를 내고 있다. 공선옥 작가는 어떤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그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인듯하다. 밟으면 꿈틀 하는 지렁이의 소리를 우리는 듣지 못하고, 힘 있는 자들은 그저 살던 대로 살겠다는 작은 소망의 외침을 듣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소리를 담아내는 사람들이 있고, 이야기가 있다. 그것이 바로 <꽃 같은 시절>이다. 정보를 알아내고 이해하기 어렵고,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은 저들끼리 약속을 하고 주민들의 생활이 어떻든 상관없이 돌공장을 가동해버리고, 서울의 기사 쓰는 양반들은 그것 말고도 안타깝고 급한 글 쓸 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의 약자, 시골 노인들. 노인들은 걸음도 불편하고 귀도 잘 안 들리지만 '예전과 같이 살다가 죽겠다'라는 소망 하나로 돌 공장 앞으로, 군청 앞으로 목소리를 내러 나선다. 



이 이야기에서 또 눈여겨볼 점은 <꽃 같은 시절>은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여성이란 존재는 역사가 진행되어오는 내내 간단하고 조용히 무시당해오고 희생되어온 약자다. 마을 남정네들은 자신들 기분 좋자고 오명순네 돌담을 다 부수고, 엄한 개를 잡아먹었다. 시위 현장에서도 저들은 그늘막에서 담배나 피워대며 땡볕 아래 할머니들의 악 소리를 듣기만 하고, 정작 할머니를 위해 발 벗고 나선 건 이제 막 진평리 주민이 된 영희였다. 남성이 가부장제의 수혜로 오랜 시간을 ‘힘 있는 존재’로 군림할 때 분명 그 아래 짓밟히던 존재가 있다.


 진평리 여인들은 오명순네 돌담이 참 좋아서, 그리고 서로가 좋아서 그리고 자신의 처지가 애달파서 그 돌담을 다시 쌓고 마을의 당산나무를 지킨다. 이 마을에서의 단단한 여성연대는 흔히들 오해하는 시골 마을의 폐쇄성을 뛰어넘어 외지인 영희와 혜정을 끌어안는다.



ㅡ이야기에는 따뜻한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영희에게 이것저것, 자신의 마음까지 나누는 것에 스스럼없는 할머니들부터 꽃이 좋아서 어머니가 떠나가신 집에 살고 싶다는 영희의 말을 실없는 소리가 아닌 진심으로 받아들여주는 만택. 영희를 인간으로서 존중하는 마을 이장님, 그리고 고운 시와 같은 풍경의 마음을 가진 영희와 혜정, 복사꽃과 같이 환한 마음으로 홀로 남은 집에 영희가 사는 것에 기뻐한 무수굴떠기까지.

 

한편, 외지인이었던 영희와 혜정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처음에는 개인의 영역을 지키고자 한다. 하지만 영희도, 후에 혜정도 결국엔 할머니들이 눈물겨워 쓰지 않고 마음과 행동으로 대신한다. 영희의 마음을 바꾼 건 할머니가 건넨 대단치 않은 밥 한 그릇이었다.


시를 사랑하는 영희는 시를 쓰지 않고 “할머니들이 시”가 되었다고 말하고, 시골의 평화로운 풍경을 써서 ‘힐링’하는 글을 쓰기로 했던 혜정은 시골에서 벌어지는 ‘거시기’한 상황을 두고 그런 이야기를 쓸 수 없다며 계약을 파기하게 된다.



"

우리는 적막한 속에서 소리 없는 것들의 온갖 소리를 들었다.

소리가 없다고 해서 소리라 없는 것이 아닌 것들의 소리다.

그래서 가슴 한 쪽이 먹먹해왔다.

꼭 우리들 같아서.

우리도 소리를 안 내고 살 뿐이지 소리가 없는 것이 아닌데도

세상은 땅 파먹고 사는 아낙들은 소리가 아예 없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





이 이야기는 완전한 허구가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이야기다. 작가의 말처럼 조용하고 간단하게 묵인되는 힘없고 순한 자들의 아우성을 듣는 귀 밝은 이야기다.

 

오명순의 꽃 같은 시절은 눈부시고 푸르렀던 젊은 시절이 아닌, 자신의 목소리를 우렁차게 내고 힘 있는 사람 앞에서도 할 말을 하던 '디모(데모)'하던 때였다. 우리네 세상에는 관심 가지기 급한 이야깃거리가 넘쳐난다. 그 자체가 안타깝기도 하지만, 안타까움에서 그친다면 목 아프게 소리치는 이들의 목소리는 어디로 흩어지게 되는 걸까. 혼자 살기에는 약한 우리가 서로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일 수 있기를, 그리고 힘 있고 강한 사람들 앞에서도 우리를 믿고 목소리 낼 수 있기를 바라며 작은 응원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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