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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PEACE May 27. 2022

소년을 위로해줘 / 은희경 (2010)

서툰 지구의 떠돌이에게

 


줄거리

연우는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으로 패션 잡지 에디터인 엄마와 둘이 살고 있다. 연우는 민기훈이라는 선배가 살았다는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벽에 그려진 날개 그림과 딱 들어맞는 거울의 자리, 연우는 민기훈이라는 사람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창밖을 보자 어떤 여학생이 자신의 방을 올려다보고 있다. 연우는 그 여학생에게 이곳에는 더 이상 그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내가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첫사랑이었다.

 채영이 민기훈에게 보냈던 엽서를 계기로 가까워진 두 사람은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나눈다. 연우는 철없는 것 같지만 가끔은 어른 같은 엄마와 그녀의 애인 재욱 형, 자신과 잘 맞는 친구 독고태수과 그의 동생 독고마리, 그리고 채영과 평화로운 성장기를 그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느 날, '그리핀'과 자신, 민기훈과의 연관관계를 떠올린다. 채영이 사랑했던 것이 자신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연우는 채영을 피한다. 재욱 형과 엄마와 여행을 떠난 연우는 채영이 쓴 소설을 뒤늦게 읽어보고 채영에게 돌아가려 하는데.. 



 

01. 성장은 혼자서 할 수 없다.


인생을 긴 막대기로 본다면 주인공은 시작의 지점에 있는 청소년 강연우다. 연우는 이사한 후 전에 살던 또 다른 누군가 그려둔 날개 그림에 자신의 연필로 그림을 덧그려 날개를 단다. 인간은 홀로 성장할 수 없듯 연우 주변의 인물들은 연우를 성장시킨다. 이 작품에서 연우의 성장 드라마를 이해하려면 등장인물에 관한 짧게나마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우선 연우의 엄마 신민아 씨는 흔한 엄마답지 않은 쿨한 스타일로, 담배 피우는 학생들을 보고는 "연우! 담배 피울 거면 니코틴이 적은 걸로 펴!"라고 말한다. 신민아 씨의 서사는 주인공이 성장하게 될 미래, 즉 어른의 이미지의 연결 다리에 있는 존재 같다. 친구 같은 엄마, 때론 어른일 수밖에 없는 엄마, 어른이지만 연우가 위로해 줘야 하는 존재다. 중간중간 서술되는 신민아 씨의 이야기로 예상컨데 그녀는 정해진 가치에 따르지 않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외톨이의 삶을 살아온 듯 보인다. 그리고 그녀의 연인 재욱 형은 고지식한 어른과는 다르지만 자신만의 세계가 확고하고 지식인의 면모를 갖춘 또 다른 유형의 어른으로 연우에게 마라톤을 가르쳐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연우의 친구 독고태수는 자유로운 영혼, 미국에서 '큐트걸'을 다치게 하고 이유 없이 찾아오는 질풍노도의 감정에 동물원을 자주 찾았던 소년이다. 연우가 심드렁이라면 독고태수는 불 화산이랄까. 거침없는 성격으로 상극처럼 보이지만 G-그리핀의 랩을 주고받을 수 있는 영혼의 단짝이다. 그리고 그의 쌍둥이 동생 독고마리. 연우의 친구이자 연우를 짝사랑하는 이야기의 주요 인물 중 가장 반듯하고 어떠한 체계 속에 있는 인물이다.

 그리고 채영. 연우의 첫사랑이자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아이. 큰 후드를 머리에 쓰면 보호받는 기분을 느끼고 손끝이 빨개지도록 손을 물어뜯는다. 채영이 민기훈에게 보냈던 엽서는 '카프카'였고, 채영은 카프카를 읽으면 자신이 왜 미움받는지 알 것 같다고 한다. "너는 날 미워하지 않는 종류의 사람 같아." 채영의 말에 연우는 운명을 느낀다. <소년을 위로해줘>에서 연우의 성장기는 채영을 만나고 사랑이 왔다 가는 과정에서 큰 줄기를 이루어 뻗어나간다.

 태어나 유치원부터 사회생활까지, 인간은 인간과 맞붙이 치며 사회화되어간다. 그것을 우리는 성장이라고 한다. 각자의 인간은 죽는 순간까지 저마다의 성장을 하고 있다. 흔히 성장기를 청소년기까지로 보는 이유는 타인이 자신의 성장에 개입될 여지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인생의 초목을 다지는 시기에 이루어내는 성장은 인생의 무드를 결정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바르고 유용한 어른이 되어야 한다. 20살이 되었다고 바로 어른이 아닌 것처럼 나이와 관계없이 나의 앞에 앞서 나가는 어른을 따라 성장한다. 



02. '가정'의 의미는?


이야기에서는 세 가지의 가정을 보여준다.

 연우의 집은 엄마만 있는 편부모 가정으로 남들이 보기에는 결핍이 있다고 편견을 가지기 쉬운 형태의 가정이다. 하지만 신민아 씨와 연우의 유대감, 그녀가 연우를 사랑하는 방식은 어느 한 부분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연우가 공부를 하지 않자,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건 힘들지만 문제는 아니라고 말하는 신민아 씨다. 연우의 성장과정을 세세히 기억하고, 연우 아빠와의 관계와 별개로 연우를 위해서 살기로 결심했던 엄마는 연우가 어떤 선택을 하든 믿어줄 것이라는 신뢰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

혼자면 재미없다는 것, 그것도 다 사람을 몇 무더기로 묶은 다음 이름표를 붙이고 마음대로 끌고 다니려는, 잘못된 세상이 만들어낸 헛소문 같은 거야. 혼자라는 게 싫으면 그때부터는 문제가 되지만 혼자라는 자체가 문제는 아니거든.

"


어른이라고 삶의 고민거리가 없는 건 아닌데, 실은 죽을 때까지 우리는 삶을 겪으며 성장하고 있을 뿐인데, 부모에게 지어지는 책임의 몫은 크다. 신민아 씨는 솔직한 타입으로 자신이 힘든 감정을 느낄 땐 돌려서든 직설적으로든 표현한다. 연우는 그런 엄마를 달래거나 신경 쓰거나 연민을 느끼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것에 익숙해진다. 그러한 과정에서 연우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심드렁'한 아이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또 다른 가정은 연우의 단짝 독고태수의 집.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단란한 집처럼 보이지만 어떤 것도 흐트러져서는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다. 태수의 쌍둥이 동생인 독고마리는 그런 집안 분위기를 대변하듯 언제나 교복을 단정히 입고 있는 반듯한 아이다. 반면 미국에 있을 때의 사건으로 신뢰를 잃은 태수는 자신의 정의로움까지도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것 같다.

 세 번째는 채영의 집. 기념일만 함께 보내면 된다고 생각하는 아버지가 군림하는 왕국이다. 엄마는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하고, 아빠는 가끔씩만 자신을 때린다는 사실을 덤덤히 털어놓는 채영. 어린 시절 영재 소리를 들었지만 그 가치를 보여주지 못하자 저능아 취급을 당했다고 고백한다. '학부모와의 대화' 이후 신민아 씨와 대화를 나누며 가정에 대한 고민을 하는 아빠라는 모습을 엿보여주긴 했지만 그 역시 신민아 씨의 입으로 전해진 간접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가정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배웠던 건데 1n 년이 지난 지금에도 가정의 형태에 대해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아기인 시절보다 아기를 낳게 될지도 모를 나이가 더 가까워진 지금, 나는 부모의 자격을 고민한 끝에 비혼과 비출산을 내 정체성으로 확정 지었다. 부모 자격이 없는 인간들도 많지만, 애초에 한 생명을 인격체로 성장시키는 것을 인간이 해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벅차다.

 어쨌든 이야기에서 보이는 3가지 가정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가정이다.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겪는 아이들에게는 어떤 가정이 가장 적절한 가정일까? 무조건적인 신뢰를 주지만 생명의 책임이 버거워 연우를 독립적인 개체로 키운 연우네? 아주 평범하지만 나에게 신뢰를 주지 않는 숨 막히는 기분을 가끔 느껴야 하는 태수네? 아무리 그래도 채영이네는 아닐 거 같다. (좋은 부모 되는 거, 참 힘든 일이구나.) 결국 가족 간의 거리도 사람과 사람의 거리로 보아 적절한 영역을 지켜주고 또 그 안에서 최대한 들여다 봐주고, 그래야 하는 거다.





03. 지금도 자라나는 중


 우리는 모두 서툴렀다. 작가가 끝의 작가의 말에 남겼듯 이 책은 서툴렀고, 서투르고, 서투를 우주의 떠돌이들을 위해 쓰인 것 같다. 청소년기에는 내가 청소년이라는 사실이 싫었다. 태수의 말처럼 가슴속에서 무엇인가 터질 듯 방방 거렸다. 어른이 되면 모든 게 괜찮아질 것 같았는데 또 막상 그런 것도 아니다. 가끔은 여전히 태수같이 굴고, 대부분의 날들은 마리처럼에 체계 안에 약간의 답답함을 호소하며 얌전히 존재하려 하고, 또 가끔은 연우처럼 '심드렁한 척'하고 있다고 느낀다.

<소년을 위로해줘>의 제목의 소년이 꼭 나인 것 같았다. 연우처럼 첫사랑과 첫눈의 추억에 휘청이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특별할 것 같았던 날 끝에 실은 내가 누군가의 대체품이 된 것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고야 마는 냉정한 자본주의는 여전히 종종 나를 휘청이게 한다. 어른이라는 건 아직도 되기에 먼 길 같았지만, 이제는 누군가에게 모범이 되고 이끌어주는 역할까지 맡아야 한다.

모든 처음은 서투른 것 같다. 채영과 연우의 사랑이 태수의 말처럼 '답답하고 이상한' 첫사랑이었던 것처럼 모든 처음은 서투르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처음인 사람들이 모여사는 사회. 결국 우리의 삶 자체가 곧 서투름인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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