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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PEACE May 03. 2022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 김려령 (2011)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


한 줄 평


저마다의 마음속에 씨앗이 있단 믿음






줄거리


 무명 동화 작가 오명랑은 몇 년째 괜찮은 작품을 내지 못한 채 엄마와 새언니에게 일하라는 장난 섞인 구박을 듣고 있다.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이야기 듣기 교실을 연 오명랑은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하기로 결심하는데...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어느 날, 아리랑아파트 후문 건널목에 우스꽝스러운 아저씨가 나타난다. 머리에는 수동 신호등을 쓰고 건널목이 그려진 카펫을 깔아 교통을 지휘하는 '건널목 씨'이다. 그는 초등학교 등교 시간이면 카펫을 깔고 아이들을 안전하게 등교시킨다. 아리랑아파트 주민 쌍둥이 형제를 구해주다 얻어맞은 건널목 씨에게 마음을 연 아리랑아파트 주민들은 머물 곳이 변변치 않은 건널목 씨에게 빈 경비실에서 지내도록 한다. 어느새 건널목 씨의 작은 집(경비실)은 주민들이 나누어준 이불과 살림살이들로 가득 찬다.



 한편 아리랑아파트 1502호는 부부 싸움이 끊이지 않았는데, 그 부부의 딸인 도희는 싸움을 피해 종종 경비실로 오곤 했다. 개교기념일인 수요일, 도희는 건널목 씨를 따라 태희와 태석이 사는 창고 같은 집을 찾게 된다. 태희와  태석의 엄마는 2년 전 집을 나갔고 아빠는 위가 아파 죽었다. 돌봐줄 보호자 없는 그들을 건널목 씨가 수요일마다 들러 봐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집 나갔던 태희의 엄마가 돌아오고 건널목 씨는 또 다른 건널목이 필요한 곳을 찾아 떠났다. 오명랑이 이야기 듣기 교실에서 들려주었던 이야기는 본인과 가족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야기의 끝은 이렇다. 건널목 씨 같은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따뜻함을 전하는 용기




 이야기에서 '건널목'의 의미는 흔히 받아들이는 통제의 의미가 아닌 안전장치이자 위로로 매개된다. '언제 어디서든 카펫 건널목을 펼치는 것이 할 일'이라 생각하는 건널목 씨는 부모의 부재로 세상에 덩그러니 놓인 태석이와 태희, 가정불화에 상처받는 도희에게 건널목 같은 어른이 되어주었다.



 한편 건널목 씨가 언제 어디서든 카펫 건널목을 펼치게 된 데에는 슬픈 사연이 있는데, 그의 쌍둥이 아들을 건널목이 없는 곳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잃었던 것이다. 아내도 잃고 아이들마저 잃은 기구한 운명에도 선함을 잃지 않은 건널목 씨는 분명 강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살다 보니 스스로 마음에 악마가 사는 건 아닌가 싶은 날들이 종종 있다. 그런 날에는 강한 사람이 되자는 다짐을 한다. 선한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다. 온갖 악한 것과 뜻처럼 되지 않는 세상살이에도 자신의 선함을 잃지 않고 행하는 건널목 씨 역시 강한 사람이다.



 작중 화자인 오명랑 작가는 '건널목 씨 이야기'를 그전부터 하고 싶었지만 쌀 과자를 씹어먹던 일곱 살 아이, 과거의 상처받은 어린 자신 마주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엄마가 자신을 버렸고 언제든 다시 자신을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일곱 살. 그리고 돌아온 엄마와 지금까지도 아물지 않은 그때의 상처. 오 작가는 그의 가족들 마음속에 뭉쳐 숨겨둔 이야기와 그랬기에 어쩔 수없이 함께 감춰 버린 건널목 씨 이야기를 꺼내놓으며 언젠가 정리했어야 할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 작가는 상처받고 초라하고 남루해서 감춘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용기를 냈고 그녀의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들을 용기를 가지게 된다. 비로소 이야기가 끝났을 때에야 '정리가 됐다'라고 느낀다.








 이야기 중 오 작가는 걱정 어린 어머니의 참견에 "가슴에 콱 박힌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다른 걸 쓰려니까 잘 안되더라고요."라고 말한다. 어떤 해묵은 감정들은 정말로 가슴에 콱 박혀서 몇십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2년간의 기억이 징글징글하게도 오명랑과 그의 가족에게 오래도록 남았던 것처럼 말이다. 제때 흘리지 못한 눈물은 마음속에 그대로 남는다. 그대로 남기만 하면 다행이지 운이 나쁘면 예상치 못한 평범한 날에 파도가 되어 나를 잠식시키기도 한다. 어쨌거나 용기에는 늦음이 없어 따뜻한 사랑을 나누어준 건널목 씨 이야기가 세상에 퍼졌다.




 동화 작가와 이야기 듣기 교실에서 들려주는 이야기와 세 명의 제자들, 어머니와 새언니 그리고 작가의 어린 시절이 교차로에서 조우하는 길처럼 자연스럽게 만난다. 건널목 씨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교통 봉사를 자처하고 도희와 태석, 태희 남매를 돌봐주고 조건 없이 남을 배려하며 좋은 에너지를 풍기는 좋은 사람이다. 쥐포나 쪽쪽 빨며 도희를 쫓아다니던 태희는 대부분은 모르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받고 싶어 하는 상까지 받은 작가가 되었고, 경비실 화장실에 숨어 일기를 쓰던 도희는 그때와 다름없이 씩씩한 예비 엄마가 되었고, 너무 일찍 철들었던 태석은 이제 또 다른 건널목 아저씨가 되었다.





 

저는 벌써 어른이 되어 건널목 앞에 서 있습니다.
조심하면 괜찮다고, 잘 살피고 건너면 된다고, 이제 제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저는 그런 어른이고 싶습니다.

...

우리 그래도 덜 힘들게 덜 아프게 덜 무섭게 그 시기를 건널 수 있도록 서로에게 작은 건널목이 되어 줄 수는 있습니다.

먼저 손을 내밀어도 괜찮고, 누군가 먼저 내민 손을 잡아도 괜찮습니다.

우리 그렇게 살았으면 합니다.

작가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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