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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PEACE Jan 13. 2023

동남아 Day8. 기억하는 것으로 추모하는 일

여자 혼자 동남아 여행 / 프놈펜 킬링필드, 다크투어, 뚜얼슬랭 박물관

12.10_2022

7시부터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다고 해서 7시에 알람을 맞춰두었는데 너무 피곤해서 그냥 더 자기로 했다. 오늘 프놈펜을 떠나는 날이라 아쉬울 거 같아서 고민을 하긴 했지만 내가 피곤하면 무슨 소용이야. 수영..? 아침도 못 챙겨 먹도록 더 자다 일어남.


씻고 메인 빌딩으로 가서 체크아웃을 하면서 짐을 맡겼다. 수화물 보관 무료, 체크인 카운터 뒤에 그냥 두면 된다. 보증금은 달러로 돌려줄까 리엘로 돌려줄까 물어봐서 리엘로 달라고 했다. 1달러에 4천 리엘로 쳐서 줌.


기다리고 있는데 같이 가는 일행들이 아직 안 온 거 같대서 더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알고 보니 옆자리에 있던 유러피안들이 동행이었음ㅋㅋㅋ 서로 기다리고 있었던.. 두 명은 독일에서 같이 여행온 친구들이었고 한 명은 아일랜드에서 혼자 여행온 남자였는데 이들은 어제부터 만나서 같이 여행하고 있다고 했다.


툭툭이 기사도 미리 와있었다. 툭툭이 출발하기 전에 기사가 툭툭이 안에서 소매치기당하는 일이 많다고 신신당부하며 핸드폰도 다 집어넣으라고 하고 가방도 어떻게 둘지 다 알려줬다.


백팩은 바닥에 내려놓고 양쪽 다리를 끼워 넣으라고 했고 크로스백이랑 힙생은 툭툭이 안쪽으로 돌리고 절대 빼지 말라고 했다. 대체 이 나라는 어떤 나라인 걸까.. 어제 본 그 삐까뻔쩍한 조형물과 소매치기 사이의 간극에 대한 생각을 했다.


뚜얼 슬랭 박물관 입장료 5달러 / 오디오 가이드 5달러


원더즈 호스텔에서 진행하는 킬링필드 투어 : 7.5달러에 툭툭이 타고 뚜얼 슬랭 박물관, 킬링 필드 갔다 오는 툭툭이 비용만 포함된다. 입장권은 따로 사야 한다.


숙소에서 킬링필드까지 패스앱으로 툭툭이를 찍었을 때 5달러 정도가 나왔어서 저렴한 편이라고 생각된다!  

가는 길에 공유하고 싶은 멋진 풍경을 많이 봤는데 알리바바 주의령 때문에 사진을 하나도 찍지 못해서 아쉽다. 날씨는 정말 무더웠음..  


나는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반가워서 (이제까지의 여행지에서 한 번도 본 적 없음) 오디오 가이드까지 같이 했다! 박물관 오디오 가이드는 전문 성우가 녹음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추천할 만하다. 프놈펜에서 다크 투어를 하려면 한국에서 <벌거벗은 세계사-킬링 필드 편>을 보고 오면 좋다!


아주 간단히 설명하자면 1975년 공산주의 무장단체 크메르루즈가 론 놀 정권을 치고 농민주의를 바탕으로 나라를 건설하려고 펼친 대국민 학살이 킬링필드이다.


왜 학살이 일어났느냐? 농업의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 지식인들 및 도시민들까지 강제로 농촌으로 이주시키고 농사짓게 함+사유재산&종교&화폐 폐지-이 과정에서 국민 개조를 핑계로 4년이 안 되는 기간 동안 200여 만 명(4명 중 1명 꼴)을 살해했다.


뚜얼 슬랭 박물관은 그 당시 정치범 수용소로 활용되었던 공간을 역사 기록 박물관으로 탄생시킨 곳이다. 킬링필드는 어떤 식으로든 캄보디아 국민에게 영향을 끼친 사건으로 희생자를 기리는 마음을 가지고 소음이나 불경스러운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한다. 웃음 금지 표지판도 있을 정도. 물론 관람하다 보면 웃음이 나오지 않는 참혹함을 느낄 수 있다.


입장하면 최후의 사망자가 묻힌 공간이 펼쳐져있다.  


A동은 고문이 일어났던 공간. 이유도 모른 채 끌려와서 고문당했고 론 놀 정권에 협력했다는 거짓 자백서를 썼다고 한다. 이 대학살은 비밀리에 펼쳐졌기 때문에 크메르루즈 정권을 물리치고 이 공간을 발견했을 때는 피와 시체 냄새 등 악취가 고스란히 풍기고 있던 공간이란다.


고문 기구
학교로 사용하던 당시의 철봉 등이 그대로 있다

이곳은 수용소로 사용되기 전엔 ‘야생 망고의 언덕’이란 뜻의 뚜얼 스베이 프레임 고등학교였다. 이후 근처 초등학교의 이름을 따와서 뚜얼 슬랭 대학살 박물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학살의 끔찍한 점은 명목상 정치범으로 사형을 집행해야 했기 때문에 고문으로 사망하는 것은 고문 집행자의 실수였던 것이다. 그래서 고문을 하다가 죽기 직전에 멈추고, 상처에 소금물을 뿌려서 정신을 차리게 하는 등 죽음마저도 마음대로 허락되지 않았다.


그 예로 수감소 복도에는 가시 덩굴이 쳐져 있는데 한 수감자가 3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사건 이후 함부로 자살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한 것이다.


고문을 집행하던 간부들도 글이나 숫자 같은 것도 모르는 시민을 데려와 세뇌 교육을 했는데 그마저도 대부분 반역죄로 수감자가 되어 죽어갔다고 한다.


농업 생산량을 1년 동안 3배로 뛰우라는 명령 하에 사람들은 이 무더운 나라에서 하루 최소 12시간, 심하면 19시간을 일해야 했고 식사마저 제대로 먹지 못했다. 사유재산을 폐지했기 때문에 망고 나무에 열린 망고 하나를 따먹어도 절도죄로 사형당했다고..


또 부모의 복수로 반역을 저지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지식인의 경우 온 가족을 몰살하는 ‘친족 체포 정책’을 펼쳤다. 이 학살로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생존자들은 가족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어서 사건 이후 피해자들의 사진을 보며 제발 내 가족이 없길 바랐고, 또 그 무수한 사진들에 슬픔을 느꼈다고 한다.


더 자세한 내용은 직접 박물관에 방문해서 확인해 보면 되겠다. 툭툭 기사님이 1시간 반을 주셨는데 약간 모자라게 느껴질 정도로 규모 있고 적나라하게 사건을 보여주고 있어서 많은 생각이 드는 박물관이었다.


우리가 탄 툭툭이

박물관에 나와서 한 30분가량 달려 킬링 필드에 도착. 이때가 1시 정도라 정말 정말 더웠다.


킬링 필드 입장료 : 6달러 / 오디오 가이드 포함(한국어 오디오 가이드 있음) 추모의 공간으로 무릎과 어깨를 가리는 복장을 입어야 한다.

 

아까 대학살 박물관 같은 수용소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들을 여기로 데려와 사형을 집행했다. 실제 이름은 <청아익 사형장>


전국에 몇 백개의 수용소와 사형장이 있었는데 뚜얼 슬랭 대학살 박물관과 킬링 필드로 불리는 청아익 사형장이 가장 큰 규모다.


이 학살이 또 잔인한 점은 ‘총’은 아깝기 때문에 농업에 사용되었던 장비로 사람을 죽였단 점이다. 사형 인원이 많아졌을 때는 때려죽이는 것 마저도 힘들어서 그냥 수심이 깊은 물구덩이에 밀어 넣거나 DDT를 살포하거나 먹였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킬링 필드를 돌아보다 보면 새가 지저귀고 푸르른 나무가 가득한 아름다운 곳에서 그런 학살이 일어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이곳 역시 수용소처럼 처음 발견됐을 때는 시체에서 나온 가스로 구덩이가 열려있거나 부풀어올라 있었고 악취로 손을 쓸 수 없을 정도였단다.


피해자들이 편안히 잠들지 못했다는 걸 알려주는 것처럼 아직도 비나 바람으로 인해 희생자들의 뼛조각과 흔적(천 조각 같은)이 땅 위로 올라오고 있어 몇 달에 한 번씩 관리자들이 수거를 한단다. 심지어 호수 너머의 무덤은 아예 손대지 않았는데 이미 위령탑을 꽉 채울 만큼의 뼈를 수거한 뒤였고, 그들이 편안히 잠들 수 있도록 그냥 두었다고 한다.


멀지 않은 과거에 누군가가 떠밀려 죽었던 구덩이들, 지금은 평화롭게 새들이 살고 있다.

따라서 이 공간은 희생자의 유골이 언제든 발견될 수 있기에 정해진 길로만 다녀야 하고 혹 유골이나 흔적을 발견하더라도 전문가들이 수거할 수 있도록 손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킬링 트리와 여성과 아기 매장지. 킬링 필드에서 가장 참혹한 장소 아닐까.


여성들의 시신은 대부분 발가벗은 채로 발견되었는데 이는 특히나 여성의 정조관념이 중요시 여겨지는 캄보디아 문화에서 여성에게 수치심을 주도록 했던 잔인함을 보여준다고 한다.


킬링 트리는 정말.. 끔찍한데, 아기들의 경우 발목을 잡아 나무에 내리쳐서 죽이고 그대로 매장지로 던져버렸단다. 아이들을 나무에 던져 죽였단 사실이 드러난 것은 공간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 나무에 피와 뇌 등 나무에 던져 죽인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사형장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고백으로 엄마들이 보는 앞에서 아기를 먼저 죽이고 그 뒤에 엄마를 죽였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왜 그들은 그토록 잔인해야만 했을까?


폴 포트는 “실수로 무고한 자를 죽이는 것이 실수로 적을 살려두는 것보다 낫다”라고 말했단다. 그렇게 무고한 목숨이 희생되었다.


위령탑 안에는 유골이 가득한데 나이나 성별 등으로 나름대로 구분되어 있다. 보면서도 실제 유골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냥 이런 역사가 믿기지 않았다.


여기서도 한 시간 반을 줘서 시간 맞춰 2시 10분에 나왔다. 같이 온 동행들이 아직 나오지 않아서 한참 기다렸다. 캄보디아는 정말 덥다. 프놈펜에 더 머물렀다면 나도 아침에 일찍 투어를 했을 것 같다.


같이 여행온 독일 친구들은 자신들도 비슷한 역사(나치)가 있어서 인상 깊게 봤다고 했다. 나도 민주화 운동이 떠올라서 우리에게도 이 정도의 규모는 아니지만 충분히 아픈 역사가 있었고 복합적인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하지만 감상을 나누는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툭툭이를 타면 그냥 야외 트렁크에 탄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너무 시끄럽고 먼지가 많이 날린다. 그리고 해가 너무너무너무 뜨거웠다.. 냉장고 바지를 못 사서 면바지를 입은 나, 오바 조금 보태서 불붙을 거 같았다..^^


밥 먹으러 가는 길에 만난 시장 사진들!

옆자리 친구가 오렌지 주스를 줘서 먹고 어찌어찌 숙소에 도착. 역시나 알리바바 주의령에 사진을 못 찍었다.

숙소에 도착하니 3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아직 한 끼도 안 먹어서 밥을 먹으러 가며 친구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돼지고기 국수&크메르 정통 티 4.5달러 18,500리엘


현지 수타면 맛집이라는 글을 봐서 온 곳! 실제로 수타면을 만들고 있다. 나는 돼지고기 국수와 크메르 아이스티를 주문했다. 엄청 어린아이가 주문을 받고 있다. 가족 식당일까? 캄보디아에 하루밖에 안 있었지만 아기들이 일하는 걸 많이 봤다. 마음이 좀 안 좋다면 오만이겠지..


근데 여기 맛있다! 고기도 완전 많이 들어있고 면도 정말 맛있음! 고수 빼달라 했는데 까먹은 건지 향이 났는데도 맛있어서 다 먹었다. 음료는 제일 저렴한 홈메이드 크메르 아이스티를 시켰는데 떫은 차, 시원해서 좋았음. 프놈펜에 하루 더 있었다면 한번 더 왔을 맛.. 만족!

 

그리고 어제 갔던 Amazon cafe에 가려고 걸어가는 길에 엄청 예쁜 카페를 봤다..? 근데 입구에 나와있던 주인이랑 눈이 마주쳐서 엉겁결에 들어가게 되었음..


Lagrace 아이스 아메리카노 2.2달러

물가 너무 비싸.. 에어컨도 좀 약했다. 아마 여기 사람들 기준 더운 날씨가 아니라서 그런 거 같다. 직원들은 다 긴팔 두꺼운 셔츠를 입고 있었음.


그래도 커피 맛은 좋았고 분위기도 좋았고 충전할 수 있는 자리가 한 군데인데 금방 자리가 나서 거기로 옮겨서 충전도 했다!


4시 반쯤 들어가서 7시 마감까지 있다가 나왔다. 좀 힘들어서 카페 2차를 갈까 하다가 그래도 프놈펜 마지막 시간인데 왕궁을 한 번 더 보러 갔다.  


오늘은 금요일 밤이라 그런지 어제보다 사람이 훨씬 많았다. 왕궁 야경이랑 내 사진 남기고 싶어서 삼각대 설치하고 혹시 누가 훔쳐갈까 봐 주변에 사람 아예 안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다 보니 눈치게임 30분가량 했음..^^


그리고 리버 사이드 쪽으로 걸어갔다. 밥을 먹기엔 배가 안 고파서 버블티처럼 좀 배차는 음료를 사 먹을까 생각하면서 걷다가 더위에 지쳐서 좀 앉았다. 참고로 걸어 다닐 땐 누가 봐도 경계하는 외국인 1처럼 힘색 앞으로 메고 팔짱 끼고 다님ㅎ..


너무 더워러 마실 걸 사 오고 싶었는데 그마저도 귀찮아서 벤치에 앉아 넋 놓고 야경을 봤다.


근데 강변 쪽에 앉아서 자꾸 쳐다보던 친구가 벤치에 앉아서 말을 걸어왔다. 인도에서 일하러 캄보디아에 와 있다는 친구는 명함을 주더니 내 번호도 가져갔다. 국제적으로 팔리고 있는 나의 번호..^^


인상적이었던 기억은 인도 여행 가고 싶은데 어떻냐 이런 얘기하고 있는데 그 친구가 ”핸드폰 조심해 주머니에 넣어” 이랬다. 내 옆으로 많아봐야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로 보이는 애들이 지나가고 있었는데 어린애들도 롤러스케이트 같은 걸 타고 알리바바를 한다고 조심해야 된다고 이야기해 줬다. 얘기하다가 소재가 떨어져서 버스 시간 됐다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9시에 숙소에 와서 짐을 찾았다. 샤워를 하고 싶었지만 체크아웃까지 했는데 좀 그런 거 같아서 화장실에서 옷 갈아입고 세수랑 양치만 했다. 땀에 절은 몸 매우 찝찝해..


그리고 로비에서 맥주 한 캔 4000리엘(1달러) 주고 사 먹으면서 시간을 때웠다. 원더즈 호스텔은 물을 리필할 수 있는데 500ml는 500리엘로 마트보다 싼 편이다!


물도 리필하고 짐도 챙겨서 버스터미널로 가는 길, 나이트 마켓도 입구에서나마 구경했다.


오늘은 슬리핑 버스를 타고 씨엠립으로 향하는 여정이 남았다. 잘 잘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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