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혼자 중남미 여행/바스콘셀로스 인터스텔라 도서관, 멕시티 한식당
2025_5/30(금)
어제도 기절하듯 잠들어서 오늘은 5시에 눈이 떠졌다. 확실히 시차 문제도 있지만 그냥 나의 몸 자체가 잠이 부족했던 탓에 잠을 필요로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일어나자마자 이런저런 멕시코의 정보들을 알아봤다. 공부가 부족한 탓에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도 있는 거 같아서 아쉬운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검색을 하다가 예전에 스치듯이 봤던 루차 리브레 공연을 볼 수 있는 게 멕시코 시티였다는 걸 다시 알게 됐다. 매주 금요일 경기가 하이라이트라고 하는데 오늘 보러 가기에는 저녁 8시 경기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너무 늦은 시간에 돌아다니고 싶지는 않았다. 일요일에는 5시 경기도 있어서 그걸 예매하려고 애쓰는데 왜인지 계속 결제 오류가 났다, 현장 예매도 가능하다고 하니 일요일에 가보는 걸로..
그렇게 인터넷 세상을 탐색하다가 10시가 넘어서야 숙소에서 나섰다. 10시에 나오니 해가 떠서 어제랑 또 다르게 도시 자체가 예뻐 보이고 금요일이라 그런지 더 활기찬 느낌이었다. 날씨가 좋으니 무언가 찜찜하게 무서웠던 멕시코 시티도 유럽의 어느 도시 같은 느낌이었다.
배가 고파서 어제 못 찾아서 실패했던 곱창 타코를 다시 도전해 보기로 했다. 곱창 타코집은 다시 가보니 구글맵의 위치와 다르게 건너편 왼쪽에 <El Torito Tacos>가 있었다. 이번에도 발견 못하고 지나칠뻔하다가 사람들이 바글바글 있는 식당이 있어서 봤더니 거기가 엘 토리토 타코스였다.
식당은 엄청 자그마했는데 작고 더운 주방 안에서 곱창을 계속 삶고 끓이고 있었다. 곱창 타코=트리파라고 하는데 트리파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고기를 건져서 다져서 올려주는 식. 나는 곱창 타코 2개를 주문했다.
옆에 현지인 아저씨들 2명의 곱창타코가 먼저 나왔는데 라임을 짜고 양파절임을 올리고 소스를 뿌려드셨다. 내 것도 곧 나와서 나도 라임을 짜고 소스를 뿌렸다.
곱창 타코는 생각보다도 맛있었다. 곱창이랑 타코랑 잘 어울릴까 생각을 안 해봤었는데 먹어보니 이렇게 잘 어울릴 수 없는 거였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빵 같은 종류 위에 곱창을 올려먹지 않을까? 외국인들도 곱창전골이나 야채곱창 볶음을 보면 어울릴까 의아해하겠지. 우주로 보면 째깐한 행성에서 참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이어가는 게 신기하다. 고수가 들어있기는 했지만 곱창의 고소함 때문에 느낄 겨를 없이 2개를 다 먹고 계산해 보니 60페소를 받았다. 한 개에 30페소, 이 정도면 적당한 듯. 만족스러웠다.
인터스텔라 도서관으로 알려진 바스콘셀로스 도서관으로 가려고 길을 건넜다가 과일가게를 발견했다. 과일을 갈아주는 것처럼 주스도 있길래 망고를 하나 달라고 했는데 역시나 언어의 문제로 소통이 잘 안 됐다. 갈려져 있던 주스랑 망고를 따로 해서 2개 다 포장하길래 망고를 갈아줄 수 없냐고 물어봤지만,, 소통이 안되어서 결국에는 그냥 갈려져 있던 오렌지 주스를 50페소 주고 샀다. 그래도 나름 맛있었다.
그렇게 4번 메트로 버스를 기다리는데 구글맵에서 5분마다 온다고 한 것 치고 3-4대씩 여러 대가 붙어서 왔다. 앞에 버스마다 번호가 있어서 뭘 타야 할지 몰라서 한 버스에 올라타서 부에노비스타?(Buenavista)하고 물어봤는데 스페인어로 샬라샬라하며 결론적으로 안 간다고 하는 거 같았다. 그래서 내렸는데 그렇다고 해서 별 수가 있나.. 그냥 오는 4번 메트로버스를 타고 가는 데까지 가서 내리자 생각했다.
다음 4번 메트로 버스를 타고 구경을 하면서 가는 길. 소깔로 광장이 있는 쪽을 벗어나고 나니 인구 밀도가 확 줄어드는 게 눈에 보였다. 근데 가다 말고 한 정류장에서 전부 다 내리라고 했다. 모든 메트로 버스가 거기가 종점인 마냥 서있었다. 내리는 승객한테 왜 내리는 거냐고 물어보니까 또 스페인어로 뭐라고 설명해 주셨는데 못 알아들었다.. 아마 처음 버스를 타려고 했을 때 기사님이 얘기한 무언가의 문제 때문인가 보다 예상만 했다.
구글맵 찍어보니 걸어서 30분 거리라 그냥 걸어가자 싶어서 걸어가다 보니 왜 버스가 멈췄는지 알 수 있었다. 앞에 엄청난 인구가 모여서 시위를 하고 있었다. (후에 알았지만 6/1이 멕시코의 대통령 선거날이었다) 멀리서만 봐도 엄청난 규모라서 가도 되는 건지 눈치를 보고 있는데 어떤 경찰이 도움이 필요하냐며 말을 걸었다.
그래서 나 저기 가도 되냐고 안전하냐니까 괜찮다고 해서 걸어갔다. 근데 걸어가면 갈수록 시위 규모는 생각보다 더 더 더 커졌다. 행렬이 끊이지 않았고 모두 빨간 티를 입고 있었는데 파란 모자를 가방에 건, 게다가 아시아인이 그 행렬 사이를 지나가니까 정말 모든 사람들이 쳐다봤다.
일단은 이쪽을 빨리 빠져나가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소지품 다 가방에 넣고 엄청 빨리 걸어서 빠져나갔다. 시위 행렬의 끝쯤 가니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행인들, 얘기하며 노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에 제일 시위와 관련 없는 듯한 착해 보이는 언니한테 혹시 무슨 시위냐고 물어봤는데 데모크라시와 관련된 시위라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세이프? 하니까 갑자기 구글맵까지 켜서 대부분 괜찮지만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라고 했다.
날씨 덕에 멕시코 시티가 덜 무서워졌었는데 다시금 무서워짐.. 걸어가는데 약간 헐벗고 호객하는 나이 든 여자들도 있고, 위협적인 무언가는 없었지만 뭔가 멕시코 시티의 민낯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걸어가는 거나 4번 버스를 다시 타는 거나 걸리는 시간은 비슷했는데 4번 메트로 버스 정류장에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길래 나도 같이 기다렸다. 기다리시던 분이 머라 머라 또 얘기해 주셨는데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까부터 기다리는 중인데 올지 안 올지 몰라~” 뭐 이런 의미 같았다. 5분 정도만 기다리다 가려고 했는데 다행히 버스가 와서 2 정거장이나마 버스를 타고 갈 수 있었다.
뭔가 돌고 돌고 돌아 도착한듯한 바스콘세로스 도서관. 그럼에도 들어가자마자 올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압도되는 느낌, 나는 이제야 이 풍경을 눈으로 봤는데 진작에 이걸 봤던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영감을 받았을지 그들이 부러워졌다. 인터스텔라도 그렇고, 빼곡히 들어찬 도서관을 보니 김초엽의 기억저장소를 소재로 했던 소설도 생각이 났다.
어떻게 왜 이런 도서관을 만들게 된 걸까? 2005년에 개장했다는 이 경이로운 도서관은 촘촘히 그리고 아름답게 설계되어 있었다. 게다가 다리 같은 구조로 만들어진 건지 기분 탓인지 3층 정도 올라가니 걸을 때 약간 흔들리는 느낌도 났다.
아니나 다를까 그런 느낌 탓과 갑자기 사람들이 다 사라져 그 긴긴 복도에 혼자 있게 된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갑자기 너무 무서워져서 난간을 잡고 걸어서 겨우 내려왔다. 내려와서 잠깐 쉬는데 카페인을 안 먹어서인지 머리도 아파오고 컨디션이 급작 안 좋아졌다. 그런데도 이 멋진 곳을 두고 가기가 아쉬워서 2층에 한번 더 올라가 눈에 담고 나서야 길을 나섰다.
차폴테펙 성으로 가보자 싶어서 1번 메트로 버스를 탔다. 아직 좀 남긴 했는데 충전을 한번 해보고 싶어서 버스카드 충전도 해봤다. 그리고 Insurgentes 역에서 환승하려고 내렸다가 머리가 더 아파와서 빨리 커피 수혈을 하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하고 그냥 걷기 시작했다. 카페인 중독을 치료하고 왔어야 하는데..
그래도 길을 걷고 걸어 괜찮은 카페를 발견했다. 소년 같은 청년이 주문을 받아주고 카드로 계산했는데 서툰 영어로 "뭐라고 얘기해야 될지 모르겠는데 너의 카드 프리티!" 이렇게 얘기해 줬다. 커피는 산미 넘치는 커피였지만, 그래도 커피를 좀 마시고 나니까 살 거 같았다. 그러고 나니까 벌써 4시, 차폴테펙 공원을 가는 게 나을까, 배도 벌써 고픈 거 같고, 일단은 근처에 있다는 한인 마트에 가보기로 했다.
우리 식품에 가서 햇반 2개랑 컵밥 한 개, 3분 하이라이스, 3분 미트볼 한 개를 샀다. 총 310 페소면 저렴한 편은 아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국에서 사 올 걸 그랬다. 사실 한식이 엄청 먹고 싶다기보다(왜냐면 3일밖에 안됨) 멕시코 시티에서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가면 이런 걸 못 사게 될까 봐 걱정되어 서브를 준비해두고 싶었다.
사실 하나의 또 목적은 대체 멕시코 시티에는 미용실이 어디 있는지를 물어볼 요량이었는데 여자 사장님은 내가 물건을 구매하기 전에 사라져 버려서 아쉬워하면서 나온 참. 나와서 옆가게로 시선을 돌려보니 옆에도 한식당이 있었다. 사실 컵밥으로 끼니를 때울 생각이었는데 본 이상 또 지나치기가 쉽지 않았다.
맛은 한국에 김치찌개 잘하는 집에서 먹는 그 맛! 맛있었다. 230 페소면 내 기준으로 비싼 편인데 제대로 된 고기 한점 없고 다진 고기가 조금 들어 있는 건 좀 아쉬웠지만 충분히 한식에 대한 열망이 해소될 맛이었다. 반찬도 8개나 주시니까. 나는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않아 반찬을 거의 다 남겨서 좀 아까웠다. 누군가는 이걸 먹고 싶어서 기대하고 고대하며 올 텐데.. 그래도 밥 한 공기랑 국물은 바닥 보이게 다 긁어먹었다.
다 먹고 내려와서 여자 사장님께 머리 어디서 자르시냐고 물어봤는데 바로 근처에서 자른다고 하셨다. 커트는 400페소 대 일거 같다고 하시길래 생각보다 비싸서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면서 사장님이 혼자 여행하냐고 걱정해 주셔서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했다. 식사를 하러 온 단골 같아 보이는 멕시칸 아주머니도 내가 혼자 여행한다니까 걱정하면서 자기가 같이 다녀준다고 했다(?). 실제로 자기가 한국인 한 명을 만나 코요아칸에 데려다주고 같이 밥도 먹고 온 사진을 보여주셨다.
택시를 붙여줄까, 누가 오면 연락처를 전해줄까 정말 한국에 친한 이모처럼 걱정해 주셔서 감사했다. 여러 걱정을 받았지만 어쨌든 혼자서 하는 여행 잘해보기로 약속하고 빠삐코까지 챙겨주셔서 달달하게 먹으면서 다시 길을 나섰다.
사장님이랑 얘기하면서 느낀 건 멕시코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거였다. 한식당이 있던 지역이나 내가 머무는 소칼로 광장 쪽은 그렇게 위험하지도 않고 소매치기만 조심하라고 하셨다. 언제 과한을 만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기가 죽었던 게 여행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였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갑자기 세상이 달라 보였다.
첫날부터 삼일째까지 무서운 구석만 보였던 멕시코 시티도 사람 사는 곳이었다. 그래서 기분 좋게 차폴테팩 공원까지 걸어갔지만 역시나 마감 시간이라 들어갈 수는 없었다. 바깥에서나마 본 공원은 멋있어 보였다. 멕시코 시티의 시간이 좀 남았으니 다시 올 생각이 들면 와야지.
돌아가는 길엔 매트로를 탔다. 퇴근 시간이라 역시 사람이 많았다. 생각해 보면 여기는 수도, 서울과 다름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일찍 돌아와서 씻고 빨래도 하고 4층에 올라가서 이런저런 것들을 좀 하려는데 옆에서 엄청 시끄러웠다.. 미니바랑 같이하는 곳이라지만 이 정도 소음은 심하다 싶었다. 결국 하려던 것들을 접고 그냥 침대로 돌아와 잠을 청해야 했다. 그래도 내일 아침 멕시코는 조금 달라 보일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