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혼자 중남미 여행/멕시코시티, 소칼로 광장, 예술궁전, 시가지구경
2025_5/29(목)
어제 9시 반 기절하듯이 잠들고는 새벽 1시, 새벽 4시, 6시 몇 번을 깼다. 깨고 나서도 이대로 잠에서 깨어버리면 또 밤낮이 바뀔까 봐 계속 잠을 청하려고 애썼고 다행히 잠이 들었다. 밤낮이 뒤바뀐 곳에서의 첫날 그래도 성공적으로 아침 7시 30분 기상했다.
컨디션이 다 회복된 건 아니라서 어제 출발했을 때부터, 특히 LA 공항에서 너무나 먹고 싶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제 LA 공항에서 커피 6.9 달러의 충격도 회복이 안 됐기 때문에... 세수하고 씻고 나갈 준비를 하고 8시 조금 넘어서 나왔다.
아직 멕시코의 아침이 시작 안 해서인지 무장한 경찰들과 어제 술 먹은 거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어서 분위기가 사뭇 무서웠다. 숙소에서 오른쪽으로 빠져서 한 블록 걸어가니까 그래도 분위기가 좀 풀어졌다. 소깔로 광장이 치안이 안 좋다는 이야기는 아마 저런 분위기 탓인 거 같기도.. 아침이라 날씨가 쌀쌀해서 남방을 입었다.
스타벅스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랑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안쪽에 있는 작은 자리는 단체 멕시칸들이 차지해서 테라스에서 먹었다. 약간 건물 입구 쪽에 가드가 있고 건물에 회사들이 있고 그 건물 로비가 오픈된 공간이라 그 공간의 일부를 스타벅스에서 쓰는 식이었다. 샌드위치는 맛있었고 커피는 더 맛있었다. 나는 어디를 여행가든 그래도 스벅은 한 번씩은 꼭 가려고 한다. 빅맥지수가 있듯이 나는 나 혼자 스벅이 얼마 정도인지로 물가를 가늠하는데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란데가 3800원 정도면 우리나라에 비해 크게 저렴하지 않은 게 맞다.
커피를 다 마시고 본격적인 산책을 나섰다. 어제는 무섭기만 했던 소칼로 광장이 반대로 우리나라 광화문 앞에서 시위를 하고 경찰들이 배치되는 거로 생각하면 그냥 그럴 수도 있지 않나, 싶기도 했다. 관광객도 많아 보여서 관광객으로 보이는 언니들을 따라 진입했다. 사람이 정말 많고 상인들도 정말 많고 왜 여기서 소매치기를 많이 당하는지 알 것 같았다. 유럽의 관광지들처럼 사람이 북적거리다 보니 가방을 뒤로하거나 물건 간수를 못하면 타깃이 될 듯, 나도 크로스백을 힙색처럼 앞으로 메고 두 자크를 비너 두 개로 연결해서 열기 어렵도록 만들었다.
광장 앞에서는 퍼포먼스 용인지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자를 위한 행사 같은 것도 하고 있었고 기념품, 옷 등등 관광객들의 구미가 당길만한 것들도 많이 팔고 있었다. 물론 나는 살 수 없음.. 소칼로 광장에 펄럭이는 멕시코 국기는 멋있었지만 다소 혼란스러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광장에서 바로 이어지는 메트로폴리탄 대성당(Mexico City Metropolitan Cathedral)으로 들어가 봤다. 로마가톨릭 교회로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가장 오래되고 큰 성당으로 취급받는다고.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재단은 다 금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멋있고 홀리한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이 이상의 감탄은 나오지 않았다.
멕시코 시티 시내에서 기대했던 템플로 마요르 (이것도 소깔로 광장이랑 이어진다)로 갔는데, 제일 먼저 '테오티우아칸을 갈 건데 꼭 굳이 들어가 봐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감흥이 없지? 여행이 즐겁지 않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 이런 건축물, 풍경이 아름다움에서 오는 감흥은 유럽여행할 때와 같았다. 거리를 쭉 걸어가면서 보는 풍경들은 이질적이고 흥미로웠지만 감동은 없는 느낌.
거리 끝에 목적지였던 예술 궁전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럽을 여행할 때도 사진으로 보던 풍경이 내 눈앞에 있다니, 멋지다! 이게 끝이었던 기분인데 이런 곳도 마찬가지였다. 자연이 주는 압도적인 감동 같은 게 나에게는 더 감흥이 있나 보다.
예술 궁전 옆으로 공원이 있길래 들어가 봤는데, 오히려 여기에서 시간을 오래 보냈다. 알라메다 공원으로 그냥 멕시코시티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고 여행객들도 그늘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보였다. 노숙자들도 종종 잠자고 있었고. 나도 그늘에 자리 잡고 그냥 오며 가는 사람들을 봤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데 아시아인은 딱 한 명 밖에 못 봤다. 생각보다 더 미지의 세계로 떨어진 거 같은 기분. 어제 식당에서도 느꼈는데 나의 예상보다도 정말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었다. 공원에 옆에 앉았던 아저씨도 말을 거셨는데 영어를 거의 못해서 사실상 소통이 안 됐다. 좋은 점은 길거리의 호객조차 알아들을 수 없어서 내가 타깃이 안된다는 걸까.. 노 에스빠뇰 하면 말 걸다가도 다들 다른 관광객 찾아 떠났다. 어쩌면 마들로바 한 마디 밖에 몰랐던 러시아 여행처럼 외로운 여행이 될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공원에서 한 3-40분가량 바람도 맞으며 사람 구경 하다가 그래도 예술 궁전을 정면으로 볼 수 있다는 카페에 가보기로 했다. (광장에서 봐도 잘 보여서 굳이 갈까 싶었는데 너무 하는 게 없는 거 같아서 감..) 8층에 있는 Finca don PORFIRIO 이미 예술 궁전 뷰로 인기가 많아서 웨이팅이 있었다. 웨이팅이 길면 그냥 안 가려고 했는데 한 5분 기다리고 들어가는 바람에 그냥 들어갔다.
처음에는 테이블자리에 앉아있다가 바 쪽 뷰를 볼 수 있는 자리가 나면 테이블 자리에 들어온 순서대로 직원이 옮겨준다. 사전에 검색해 봤을 땐 이런 식이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바 쪽 자리를 차지하고 시간 죽이는 사람들 때문에 이런 식으로 운영 방침을 바꾼 거 같다. 매장에서는 3-40분만 이용해 달라고 되어있었다.
나도 좀 앉아있다 보니 혼자라서 운 좋게 정면 중에서도 정면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근데 서로 사진 찍어주고 그런 인생샷 포인트는 될 거 같은데 나처럼 혼자 올라가서 풍경을 보기엔.. 왜 이렇게 감흥이 없는 걸까. 아니면 아직 여행을 떠나왔다는 걸 실감 못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얼떨떨한 느낌. 내가 여행을 어떻게 했더라? 어떤 기분으로 돌아다니고 어떤 식으로 감동을 느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광장에 있는 사람들 구경도 하고 왜인지 멕시코 시티는 경찰 출동도 되게 자주 했다. 문득 저 광장에 각기 다른 나라에 나이도 뭣도 다른 사람들이 다 모여있는 건데, 하필 이 시간 이날에 이렇게 같은 장소에 있다는 거 자체가 되게 신기한 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커피도 다 마셨는데도 1시 20분.. 멕시코 시티를 구석구석 딥하게 구경할게 아니라면 하루-이틀이면 다 보겠다는 오만적인 생각도 들었다. 박물관도 그다지 당기지 않아서 우선은 집으로 돌아와서 어제 미처 못쓴 일기도 쓰고 내일 갈 프리다칼로 입장권도 예약하기로 했다
프리다칼로 박물관 입장권을 사려는데 매진이었다. 미리 예약 안 한 나의 탓이지만 솔직히 크게 아쉽지도 않았다. 그래도 내일은 멕시코 시티를 좀 벗어나는 게 좋을 거 같단 생각은 들었다. 뭔가.. 도파민이 필요했다.
머리를 자를 시간조차 없어서 결국 한국에서 머리를 못 자르고 떠나온 터라 멕시코에서 어떻게든 머리를 자를 참이었다. 어제 지나가면서 본 미용실에 갔는데 안 된다고 했다. 스페인어로 뭐라고 하셨는데 할튼 안된다고 하셨다. 스페인어를 가장 빠르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은 뭘까..
머리를 자르는 걸 실패해서 정처 없이 헤매기 시작. 엄청 작은 식당의 착해 보이는 아저씨랑 눈이 마주쳤다. 햄버거도 있길래 들어갔는데 역시나 스페인어만 하실 줄 알았다. 진짜 어디 가서 한 3일 갇혀서 스페인어만 좀 공부하고 오면 괜찮을까. 소통이 줄어드니까 여행의 재미가 너무 줄어들어서 슬프다.
그래도 손짓으로, 그리고 세미 오픈 주방이라서 재료들 보여주시면서 잘 주문했다.
만들어지는 걸 바로 볼 수 있어서 좋았는데 기대보다도 더 더 먹음직스러운 햄버거가 나왔다. 언어는 안 통했지만 친절했고 아저씨들 셋 다 내 반응을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먹다가 쌍따봉 날려주니까 사장님이 빵끗하면서 굿? 굿? 이러셨다. 비단 아저씨가 보고 있어서가 아니라 정말 맥도날드보다 맛있었다.
햄버거 아래쪽을 그릴에 구워서 빵도 겉바속촉이었고 안에 치즈는 뭐지? 멕시코가 치즈가 맛있나? 치즈도 엄청 맛있었다. 고기 패티도 잘 어울리고 양상추도 들어있어서 좋았다. 잘 먹고 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 하늘이 꾸물꾸물하더라니.
다 먹고 나가기 전에 또 따봉 날려주니까 아저씨가 너무 좋아하셨다. 나오니까 다행히 비는 그쳤다. 편의점 찾아 삼만리.. 근데 경찰이 저녁이 될수록 심각하게 많아진다. 여기는 밤마다 무슨 일이 일어나길래 이런 걸까.
편의점 가다가 갑자기 소주 네온사인 발견, 갑자기 한인 마트를 찾았다. 호기심에 들어가 봤는데 에? 소주 6천 원? 못 먹어.. 라면 2100원..? 못 먹어.. 그냥 나왔다. 그래도 반가웠다. 거기 사장님도 멕시칸이라 말은 안 통했지만 반겨주셔서 고마웠다.
분명 여행이란 건 말만으로도 즐거운데.. 즐거운데.. 뭐랄까. 아무래도 사람이 빠져서 그런 거 같다. 조지아 여행이 즐거웠던 것도 이상한 애들도 많았지만 말 걸어주고 친절했던 조지안들이 많아서였고, 동남아 여행도 단골 식당 아저씨랑 노가리 까는 게 제일 즐거웠던,, 그런 날들인데 고작 하루 경험해 본 멕시코시티지만 여기는 정말 나에게 관심이란 1도 없고 관심을 가지고 말해도 스페인어를 못하니까 소통이 안 돼서 여행의 재미가 떨어진 느낌이 든다.
또, 퇴사 이후 제대로 쉬는 날 없이 미루어둔 일들을 해결하고 떠나온 거라 제대로 된 휴식조차 없었기에 체력의 문제인 것 같단 생각도 들었다. 몸이 힘들면 아무리 아름답고 이국적인 건축물이나 흥미로운 역사의 장소에 대한 감흥도 크게 없어지기 마련이니까.
이러한 이유들로 다소 외로운 여행이 될 수도 있겠지만 또 영영 혼자는 아닐 테고 체력은 휴식을 곁들이다 보면 채워질 테니,
이제 이런 일이나 감정이 어렵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