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혼자 중남미 여행/코요아칸, 프리다칼로 박물관, 멕시코 근교 여행
2025_6/2
오늘도 아침에 6시가 되어 눈이 떠졌다. 아무래도 숙소 방이 덥다 보니 그쯤 되면 눈이 떠지는 게 아닐까 싶다. 일어나서 살짝 바깥 분위기를 살펴보니 경찰들이 더더 많았다. 그래서 리셉션에 있던 친구한테 왜 저렇게 경찰들이 많냐고 물어보니까 "어제 선거 이후 안전을 위해서 있는 거다"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해줬다. 이 친구도 영어 잘 못하고 나는 스페인어를 못해서 소통이 잘 안 됐지만 무슨 일이 있어서 거라기 보단 만약을 대비한 느낌이었다.
오늘은 뭘 하지 하다가 프리다 칼로 박물관에 못 가더라도 코요아칸에 가보기로 했다. 어차피 차폴테펙 공원도 월요일이라 문을 닫았고 어제 일상을 보내면서 나는 좀 인구 밀집도가 적은 쪽으로 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관광지의 대부분이 쉬어서 프리다 칼로 박물관도 쉬는 날이다. 어차피 입장하지 못할 거라면 휴관일에 가는 게 낫겠지.
어제 그냥 일상적인 하루를 보내느라 '루차 리브레(프로레슬링 경기)'도 보지 못했고 (오늘은 2시간 거리의 아레나에서 공연을 진행한다. 그 거리를 가서 볼만큼의 열정은 없으니.) 차폴테펙 공원 피크닉도 못했지만 훗날 되돌아보면 어제 같은 날들이 더 기억에 잘 남는다. 그래서 후회는 없다네.
오늘은 나름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구글 맵에서는 시위하는 텐트 숲 사이에 역 입구가 있다고 하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어쩌다 보니 바쁜 걸음으로 결국 소칼로 광장만 열심히 구경한 셈. 소칼로 광장을 한 바퀴를 돌고 나니 소깔로 광장=우리 집 앞. 너무 더워서 숙소에 잠시 들어와 한 삼십 분 정도 쉬고 다시 코요아칸을 찾아 길을 나섰다. 입구를 찾을 수 없다면 다음 역에서 타면 되지!
10분 정도 걸어가서 다음 역 입구로 들어가 1호선을 탈 수 있었다. 플랫폼에 가자마자 열차가 바로 들어오는 바람에 공용칸에 탔는데 이제까지 탔던 여성 전용칸과는 달리 확실히 사람이 많았고 잡상인도 있었다.
바람을 맞으면서(멕시코 시티 메트로는 창문을 열고 달린다) 달리다 보니 벌써 내릴 때가 되었고(?) 사실 내릴 곳을 놓쳤고.. 내리고 보니 여기가 초록버스들의 종점인 거 같았다. 오히려 좋아! 초록 버스가 두 종류였는데 왠지 낡은 마을버스가 정답일 거 같아서 7페소를 내고 그걸 탔다. 버스 앞에 코요아칸이라고 적혀있었고,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올라탔다.
그 버스를 타고 코요아칸까지는 얼마 안 걸리는데 차가 엄청 막혔다. 그래서 그냥 중간에 내려서 걷기 시작. 막힌 이유를 보니까 학교가 끝날 시간인지 아이들을 태우러 온 차가 한가득이었다. (근데 2시 조금 넘었는데?)
걷다 보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파는 카페가 있어서 들어갔다. 아이스아메리카노 69페소. 너무 비쌌지만 하루 종일 머리가 아파오고 있었고 꽤 더웠고 가장 중요한 건 커피 마시는 거랑 산책하는 거 말고는 여기서 딱히 할 게 없었기 때문에 감사히 마실 수 있었다.
카페에서 혼자 노닥거리고 사람 구경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동네 구경을 하러 나섰다. 코요아칸 광장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꽤 있었다. 단체로 여행온 애들이 사진 찍어달라 해서 찍어주고, 동네 한 바퀴 구경하면서 프리다칼로 박물관으로 갔다.
코요아칸은 뭔가 조용하고 (아마 내가 월요일에 왔기 때문에) 차분한 느낌이었다. 프리다 칼로 박물관에 도착했지만 역시나 문이 닫혀있고, 그냥 거기 앞을 빙빙 돌며 구경을 했다.
프리다칼로는 영화 ‘코코’에서도 나올 정도로 멕시코 대표 화가이다. 예전에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프리다칼로&디에고 리베라 특별전을 해서 본 적 있었는데 너무 좋았던 기억이, 특히 프리다 칼로는 교통사고로 육체적 불편을 겪으면서도 누워서 그림을 그렸다. 당시 자신의 고통을 그렸던 자화상들에 깊이 감응해서 엄청 오랫동안 전시를 관람했던 기억이 있다. 디에고 리베라의 아내로도 말하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디에고 리베라의 아내 프리다 칼로가 아닌 프리다 칼로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라고 느낄 정도로 프리다칼로의 작품들이 더 기억에 남았다.
근데 왜 미리 예약을 안 했을까ㅎㅎ..
프리다칼로의 집도 멋있었지만 거리 곳곳에 프리다칼로 초상화가 있는 것들이 멕시코사람들이 그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느끼게 해 줘서 좋았다.
프리다칼로 박물관을 빙빙 두 바퀴를 돌고, 이제 더 할 것도 없어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평소라면 절대 커피 한 잔 먹자고 1시간 거리를 오지 않겠지만, 커피 한잔 마시러 한 시간 거리를 마다하지 않는 게 낭만이고 여행 아니겠어. 다시 돌아가야지. 그렇게 생각하면 예약을 못한 날 탓하지도 않게 된다.
멕시코 버스랑 메트로는 환승이 안된다.(메트로끼리 연결되어 있는 경우에만 가능, 한번 내리면 끝) 그래서 한 번만 버스를 타고 싶어서 어제부터 많이 안 걸었으니 산책도 할 겸 30분 거리를 걸어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보니 코요아칸 조경수들은 무슨 심즈에서 본 애들처럼 다듬어져 있었다. 그렇게 너무도 조용한 거리를 20분쯤 걸었을까. 파란색 메트로 버스가 보였다. 원래는 다른 걸 타려고 했는데 저거 내가 북부터미널에서 타고 온 거잖아! 하면서 구글맵에 찍어보니 역시 같은 노선이 맞았다.
버스를 타니까 할아버지 한분이 기타 치면서 하모니카 불면서 노래까지 하고 계셨다. 한 학생이 내리면서 50페소를 통 크게 줌. 사람들은 저런 게 익숙한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내 앞에 앉은 어린이는 연주하고 노래 부르는 할아버지보다 나를 더 신기하게 쳐다봤다.
내려서는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는 걸 보고 빠르게 귀가. 숙소에서 좀 있다가 멕시코 시티의 마지막 날이니 저녁에 광장이라도 다녀와볼까 생각하고 가벼운 산책 짐을 꾸리고 7시쯤 내려와 보니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우기이기 때문에 간혹 비가 내렸지만 이 정도 비가 내리는 건 처음이었다.
또 뜻하지 않게 휴식을 정당화할 이유가 생겼군. 근데 문득 이 정도 비라면 내일은 괜찮을까 걱정이 되어 날씨를 확인했다.
원래는 똘랑똥꼬에서 텐트를 빌려 캠핑을 하려고 했는데 내일도 이 정도의 비가 올 거 같은 예보가 있었다. 그냥 익스미낄판에서 2박을 할까 어쩔까 고민이 깊어져서 여러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다 결국 9시가 넘어서야 밥을 먹었다.
4끼를 연달아 먹으니 진짜 좀 질리는 빵-계란-햄 조합, 그래도 150페소가량 장 본 걸로 뽕 뽑았다! 남은 계란은 3개는 삶아서 챙겨두었다.
밥을 다 먹고 역시나 오늘도 무언가 작업하느라 바쁜 파블로에게 나는 낼 떠난다고 잘 지내라고 인사했다. 파블로가 어디 가냐며 갔다가 여기로 돌아오라고 했다. 아마 살아가며 두 번 다시 볼 수 없겠지만 낯설고 무섭기만 하고 말도 하나 안 통하는 곳에서 외롭게 있다 갈 줄 알았는데 파블로가 말을 걸어준 덕에 친구를 사귈 수 있어서 너무 고마웠다. 선인장도 맛볼 수 있었고 말이다!
언어가 안 돼서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끝끝내 묵언 수행을 하다 갈 줄 알았는데, 그래도 기억할 수 있는 누군가가 멕시코 시티에도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