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혼자 중남미 여행/익스미킬판, 현지 미용실, 치킨 파는 곳, 치맥
2025_6/3
오늘은 똘랑똥고 가는 날(?) 사실 어제까지 마음을 못 정해서 (꽤 많은 비가 예상되는데 똘랑똥고에 가서 캠핑을 할지, 그냥 익스미킬판에서 2박을 할지.) 그냥 애매하게 일어나기로 하고 애매하게 6시 반에 알람을 맞췄다. 짐을 챙겨 6박 7일간 지냈던 침대에 인사했다. 나오기 전에 구글맵을 쳐보니 어제 비가 엄청 많이 온 탓에 매트로가 대폭 지연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오늘도 초록 버스를 타러 향했다.
오늘의 초록버스는 내가 탄 멕시코 버스들 중에 제일 상태가 안 좋았다. 버스비가 7페소인지 8페소인지 헷갈려서 8페소를 줬는데 아저씨가 2페소를 돌려주었다. 멕시코 시티 마을버스 7페소(추정)로 남겨두어야 할 듯.. 가다 보니 나말고는 아무도 안 남았다. '다들 출근을 시내로 하나 봐' 생각하는데 얼마 안 가서 나보고 내리라고 했다. "터미널 노르떼 안 가?" 하니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어제의 비 때문 아닐까?) "이쪽으로 못 가서 오늘은 여기가 종점"이라고 한다. 그래서 주섬 주섬 짐을 챙겨 내리려니까 또 갑자기 앉아있으라고 한다. '왜 앉아있으라는 거지?' 하면서도 얌전히 앉아있었다. 뭔가 어딘가로 데려다줄 테니 거기서 다른 버스를 타라는 느낌 같았다. (모든 대화들이 기사 아저씨는 스페인어-나는 영어로 해서 확실하지 않았다. 그냥 눈치로 이해한 수준.)
그리고 표지판을 거꾸로(반대로 돌아가는 거) 하더니 출발했다. 나는 그때도 얌전히.. 확실히 시내 쪽으로 가는 방향은 사람들이 좀 탔다. 몇 정거장 안 가서 아저씨가 여기서 내려서 다음 대로에 가면 버스가 있다고 했다. 사실 본인이 신경 쓸 일도 아닌데 나서서 도와주니 정말 감사했다. 일주일 간 있어보니 멕시코 사람들은 프렌들리하고 외향적인 느낌은 아닌데 묵묵히 도와주려고 하는 정이 있다고 느껴진다.
내려서 걷는 길은 다소 낙후되어 있었다. 거리에 부랑자랑 똥이 많았는데 사람 건지 개 건지,,, 너무 적나라하게 생겼었다.. 하여간 위치로 가니까 파란 버스가 지나가고 있었다. 어제도 반가웠던 파란 버스 또 신세 지게 생겼구먼. 내가 대로에 나오자마자 본 버스는 놓치고 그다음 걸 기다리는데 정말 어제의 폭우로 인한 대폭 지연인지 원래 배차시간이 8분인데 오늘은 정말 한참을 안 왔다.
원래 계획은 그래도 8시 출발 9시 터미널 도착 12시 익스미킬판 도착. 그래서 익스미킬판 가는 동안 생각해 보고 똘랑똥꼬를 갈지, 익스미킬판에서 2박을 할지 결정할 생각이었다. 근데 버스 기다리다 보니 벌써 9시가 다 되어갔다. 한참 늦게 온 버스를 타고 터미널 도착.
Ovni bus 창구에 갔는데 거기 있는 언니는 진짜 영어를 하나도 못하는 거 같았다. 그건 그럴 수 있지.. 내가 스페인어 공부 안 하고 왔으니 내 잘못은 맞지만 노골적으로 귀찮아하고 짜증 내고 옆 창구에 앞담 까고 비웃으면서 자꾸 물어봤다.
그 창구 직원이 블라블라~해서 내가 "쏘리?" 하면 옆에 보고 뭐라 얘기하면서 비웃다가 다시 나보고 한숨 팍팍 쉬면서 블라블라 하는 식이었다. 아이디 달라해서 여권 줬더니 뭐가 없다는 식으로 던지듯이 돌려줘서 스탬프가 없어서 그런가 싶어서 자동입출국 큐알 있는 영수증 주니까 그냥 힐끗 보고 말고 이런 식;;;
솔직히 기분은 나빴지만 언어적으로 준비를 안 해온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쏘리하고 번역기를 켜야 할 거 같아서 뒤에 아저씨보고 먼저하라고 했는데 그 아저씨가 갑자기 나서서 번역을 해줬다.
얘 익스미낄판 간대. 이런 식으로. 아저씨가 번역을 해주기 시작하니까 갑자기 창구 직원 태도가 누그러져서 모니터 돌려서 좌석을 보여줬다. 아까 계속 비웃으며, 또 한숨 쉬며 자꾸 물어본 게 앞자리 중간자리 뒷자리 중에 선택하라는 거였나 보다. 진작 나한테도 화면 돌려줬으면 됐을 텐데 왜 본인의 인생을 피곤하게 만드는지 불쌍할 따름이다.
나는 오히려 대놓고 비웃고 그런 거 보다 나한테 하는 거랑 아저씨한테 하는 거랑 태도가 다른 게 짜증 나서 (원래 싹수없는 사람이 아니라 나한테만 그렇게 한 거니까) 그냥 아저씨랑만 대화를 해서 표를 끊었다. 고마운 아저씨 덕분에 어쨌든 표 끊고 5분 뒤 버스인 9:40 버스를 바로 타러 갔다.
이 정도면 1:30 똘랑똥고행 버스를 탈 수 있을 거 같긴 한데.. 날씨 확인하니 어제 멕시코시티를 적신 정도의 비가 예보되어 있었다. 오늘 버스 이슈부터 뭔가 모든 것들이 나를 당일치기로 이끄는 기분이었다.(내가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그런 거 같기도) 1박을 하고 싶었던 건 사람 없는 똘랑똥꼬를 아침에 즐기기 위해서였는데 비가 내린 뒤에 혼자 물놀이는 위험하지 않나, 이런 합리화(?)를 통해 오늘은 익스미킬판에서 머물기로 결정.
(사실 사 오는 맥주가 금지였던 호스텔을 벗어나 오늘 혼자 치맥 해야지 하면서 설렜던 것도 있었다.)
사람들의 말처럼 버스는 중간중간 서기 때문에 알아서 내려야 한다. 나는 사람들이 내린다는 곳 말고 호텔 근처에서 내렸다. 호텔에서 5분 거리 (근데 반대로 가서 20분 걸은 건 안 비밀)
힘들게 호텔(Hotel Avenida Ixmiquilpan)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시도했다. 사장님은 영어를 못하셨지만 번역기를 활용해서 얘기해 주는 정성을 가지셨다. 감사한 일이었다.. 내일만 예약하고 온 거라 오늘도 머물고 싶다고 하니 다행히 된다고 하셨다. 운이 좋게도 리셉션 바로 앞 방을 받았다. 여기가 엄청 큰 호텔인데 이 쨍한 날씨에 어디 오고 가느니 리셉션 바로 앞 방 오히려 좋다! 왠지 안전할 거 같기도 하고!
방은 오래되어 낡았지만 들어가자마자 좋은 냄새가 났다. 청소를 엄청 열심히 하신 거 같았다. 화장실도 좁고 낡았지만 청소를 열심히 하신 티가 났다. 하수구 냄새는 오래된 건물이 어쩌겠나, 에어컨은 없지만 큰 펜이 달려있었다. 이 정도에 3만 원이면 다행이다. 똘랑똥꼬의 숙소는 컨디션은 비슷할 텐데 7만 원이니까.
여기서 2박을 한 덕에 내일은 더 가볍게 똘랑동고에 갈 수 있게 되어서 짐을 다시 갈무리했다. 그때가 두시쯤, 삶은 달걀 하나가 터졌길래 그냥 삶은 달걀 한 개로 점심 때우기. 그리고 동네 구경 겸 커피 마시러 출발했다
동네는 사람보다는 차가 많고 관광지가 아닌 그야말로 사람들이 사는 작은 마을 같았다. 다만 여기저기 공사를 많이 하고 큰 차로 흙을 많이 나르고 있어서 공기는 그렇게 좋은지 잘 모르겠는 느낌. 그래도 구름이 비현실적으로 둥둥 떠있는 게 정말 예뻤다.
역시나 학생들이 많이 오고 가는 걸 보니 학교 근처, 하교시간인 거 같았는데 학교 담벼락에서 냥냥 소리가 들려서 보니 엄청난 개냥이가 있었다. 내가 가면 쫓아오고 머리 만져달라고 가져다 대는 고양이를 만났다. 정말 귀여웠다. 고양이랑 좀 놀다가 오는 길에 뜬금없이 있던 힙한 카페에 가보기로 했다.
카페에서 크로와상이 있으면 먹으려고 했는데 플레인 크로와상은 없어서 커피만 시켰다. 아메리카노 맛 자체는 쏘쏘였는데 몬스테라 같은 식물들도 많고 앞에 빵 굽는 기계, 뜨거운 해가 내려쬐는 바깥이 보이는 풍경이 보여서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멕시코 시티는 여행 온 외국인들도 많고 오히려 멕시코 하면 떠올리는 살짝 무서운 분위기가 종종 느껴지는 느낌이었는데 익스미킬판에 오니 진짜 멕시코인들은 그렇게 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딜 가든 조심해야 하는 곳이 있는 것처럼 멕시코의 진짜 현지인들이 있는 동네로 들어오니 위험한 느낌도 들지 않고 평화로웠다.
노닥거리고 사람구경(이라기엔 차구경에 가까웠지만)하며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동네 산책, 아기자기한 마을에 옷가게 신발가게 다 있다. 그러다가 미용실을 발견했다. 멕시코 시티에서 계속 물어봤지만 400-450페소여서 못 잘랐기 때문에 여기서도 한번 물어봤다.
그런데 70페소라고...!!!???? 그럼 5천 원인데.. 다시 한번 물어보니 70페소 맞다고 해서 일단 착석, 사장님 말고 따님으로 보이는 사람이 잘라주었다. 근데 생각보다 너무 꼼꼼하게 잘라주고 있었다. 한 시간은 잘라준 듯.. 그 와중에 옆에 사장님한테 받던 사람은 2번이나 바뀌었다. 곁눈질로 보니 200페소~ 정도를 내는 거 같았다. 역시 70페소는 아니겠지, 내가 잘못 알아들어서 700페소엿던것만은 아니길 바라면서 너무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려가며 머리를 다 자르고 나서 70페소? 물어보니 70 페소면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예상해 보니 따님은 아직 배우는 중이라서 가격이 저렴한 거 같았다. 아까 사장님에게 처음 가격을 물어볼 때 스페니쉬로 머라 머라 한 게 "딸한테 자를래?" 이런 소리였나 보다. 사람들이 대기 중이었는데 다 사장님한테 자르려고 그런 건지 따님은 그냥 앉아있었거든.
자세히 보면 살짝 길이가 안 맞지만 그럼에도 70페소에 자르고 싶던 머리를 다른 건 너무 만족이다! 적어도 내가 자른 거보다는 낫겠지!
머리 자른 것에 대 만족하고 조금 대로변에 나오니 정말 예쁜 공원이 있었다. 조용하고 정말 평화로운 풍경, 역시 여행은 수도가 아닌 작은 마을을 둘러볼 때 좋아지는 거 같다. 배가 많이 고팠지만 공원이 좋아서 사진을 찍고 좀 앉아있었다. 그냥 일상적인 저녁 풍경이 좋아서 그 속에 잠깐 있고 싶었다.
그렇게 잠시나마 그 시간을 공유하고, 저녁을 사러 갔다. 고대하고 고대하던 치맥 하는 날! 구글맵에 나와있는 곳 말고 근처 골목으로 가야 한다. 골목 쪽으로 가면 벌써 치킨 냄새가 나고 있다.
냄새 때문에 살짝 흥분하면서 치킨 세트 90페소 주문, 감자튀김은 성의 없이 담아주지 않고 꼭 한번 더 튀겨주고 렌치 치즈 케첩 소스까지 챙겨주신다. 설레는 마음으로 집에 얼른 가는 길 혹시 집 근처에 편의점 없을까 봐 옥소까지 들려서 맥주도 샀다.
치킨은 염지가 안된 닭으로 한 것을 느낄 정도로 우리가 생각하는 치킨에 비하면 밍밍할 테지만, 나에겐 너무 황홀했다. 점심도 삶은 달걀 한 개, 어제, 그제 빵+계란+햄으로 지냈으니 어떤 고기였어도 맛있게 먹었을 텐데 잘 튀긴 튀김옷이 입혀져 있으니 맛있을 수밖에!
감자튀김도 밍밍하지만 케첩 있잖아,, 무엇보다 맥주 너무 맛있잖아,,, 분명히 여행 중인데, 나는 무슨 어디 기숙사에 있다 온 사람처럼 행복하게 맥주랑 치킨을 먹으며 일탈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