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혼자 중남미 여행/Grutas Tolantongo, 똘랑똥꼬, 온천
2025_6/4
오늘은 고대하던 똘랑똥꼬(Tolantongo) 진짜로 가는 날! Grutas Tolantongo가 정식 명칭이고 현지인들은 '그루타스(Grutas)'라고 주로 말하는 듯하다. https://www.grutastolantongo.com.mx/ 공식 홈페이지에 가격과 시설, 들어왔다 나가는 버스 시간표 등이 안내되어 있고 모두 현금으로 지불해야 한다.
9시 반 차를 타야 하니 8:40 쯤 나가기로. 캠핑을 안 하게 되면서 가벼워진 짐을 꾸리고 출발했다. 아침부터 날씨가 아주 쨍쨍했다. 학생들이 등교 중이고 거리가 어제보다도 활기차 보였다. 맑지는 않지만 마을 한가운데 하천도 흐르고 오늘도 예쁜 익스미킬판.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길에 이런저런 잡화점, 슈퍼가 있어서 장 봐 가기도 좋을 거 같았다. 나는 멕시코시티에서부터 가져온 라면을 챙겼다.
버스 정류장에 9시 5분쯤 도착하니 멀리 한 아주머니가 천막 아래서 "똘랑똥꼬~"하면서 손짓하신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있었고 나보고 저기 뒤쪽에 앉으라는 거 보니 선착순으로 탑승하는 거 같았다.
그렇게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데 한국인처럼 보이는 소녀 4명이 천막으로 왔다. 예전에 잉잉이 사태(내가 잉잉이보고 당연히 한국인인 줄 알고 한국말로 말 건 사건)와 나보고 아시아계 미국인인 줄 알았다는 콴트란도 있었으니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눈치 보기로,, 조금 있으니 한 명이 더 오고 얘기를 나누는데 한국말을 했다!
미니벤은 생각 보다 더 더 투박했다. 최대한 많은 인원을 수용하려는 의지가 보이는 구조. 원래 혼자 다니면 혼자 남는데 끼거나 앞자리에 앉게 되는데 아주머니가 아까 온 5명의 소녀들과 나를 같은 일행으로 오해해 준 덕에 한국인 친구들과 같이 묶여서 앉았다.
그 친구들은 미국에서 교환학생을 한 소녀들인데 교환학생 마치고 미국과 멕시코를 여행하고 내일모레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나도 22살, 23살에 여행할 때 30대 언니오빠들이 되게 멋있어 보이고 어려웠는데 이제는 내가 30살이 되어서 어린 친구들을 만난다. 여전히 멋있지도 않고 가진 것도 없는데 난감할 따름이다.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꼬불꼬불한 길 구경도 하고 놀러 가는 멕시코 가족들도 보다 보니 똘랑똥꼬 입구에 도착했다. 차 안에서 입장료 값을 내면 티켓을 주는 식.
처음 멈춰서 표를 사는 곳이 포지타스를 갈 수 있는 곳이다. 나는 그루타스에서 짐을 맡길 생각이라 그루타스로 간다고 했고 나머지 한국인 친구들도 그루타스로 간다고 했다. 멕시칸 승객들은 다 포지타스에서 내렸다.
그루타스에 내리면 바로 건물이 보인다 오른쪽이 그루타스 호텔 리셉션이랑 라커 빌리는 매점, 왼쪽이 화장실과 탈의실이 있는 곳이다.
탈의실에서 옷 갈아입고 내려와서 라커 빌리고 유원지 내 셔틀 기사님한테 몇 명 모여야 포지타스 가냐고 물어보니 10명은 모여야 된단다. 아까 라커 가기 전에 친구들에게 포지타스 넘어갈 거면 같이 가자고 한터라 조금만 더 있으면 됐다. 다행히 친구들이 올쯤에 다른 팀들도 몇몇 타서 포지타스로 이동할 수 있었다.
가는 길은 한 10분-15분 걸린 거 같다. 포지타스는 멀리 떨어져 있고, 리오와 그루타스는 붙어있다. 즉 두 군데를 오고 갈 때 타고 다닌다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물론 리오에서 그루타스 갈 때도 탈 수 있겠지만 가까워서 굳이 탈 필요 없을 듯하고 부대 내 거북이 셔틀버스는 거리에 따라 요금이 다르다.
들어가는 길 몇몇 사람들이 캠핑을 하고 있다. 어제부터 한 거겠지? 살짝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입구 쪽에서 친구들은 위로가고 나는 안쪽으로 더 가보고 싶어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안쪽으로 가는 코너를 돌면 입구 쪽에 관리하는 스태프들이 들고 들어가면 안 되는 것들을 보관해 둔다. 물도 안되고 방수팩에 돈 조금, 고프로, 비치타월 이 정도는 뭐라 하지 않았다.
포지티스는 기대보다도 더 예뻤다. 경험상 이런 인스타사진용 스멜이 강하게 나는 포인트들은 실제로 가면 딱 생각했던 거만큼의 감동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포지티스는 그 이상이었다. 탕을 이어놓은 모양새 자체도 예쁘고 탕에서 바라보는 절경도 멋지고 물도 의외로 따뜻해서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포지타스 탕은 거의 다 땡볕인데 서양인들은 뜨끈한 물에서 물장구치고 수영하고 잘 놀더라. 나는 그늘 자리를 어떻게 찾아서 한참 거기에 몸을 담그고 앉아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이런 협곡 속에 이런 온천이 있다는 사실도 신기하고 이런 모양으로 탕을 만들 생각을 한 것도 귀엽고 실제로 만든 것도 신기했다. 석회질 물이라 살짝 바닥이 미끌거리는 느낌도 좋았다.
한국인 친구들이 그루타스로 이동할 때 맞춰서 같이 이동했다. 나는 동생들을 대할 때면 뚝딱이가 되어버려서 역시나 뚝딱거렸다. 특히나 여자 동생들은 약간 병아리 꽉 쥐면 터질까 봐 손도 못 대는 그런 심정으로 너무 잘해보고 싶어서(?) 뚝딱 거리다가 인연을 잃게 되는.. 경우들이 많았는데, 다행히 오늘만큼은 착한 소녀들이 날 손절하지 않고 같이 다녀줬다.
그렇게 그루티스로 넘어가서 리오를 먼저 가려고 했는데 리오가 닫혔단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물이 많이 불어서 못 들어간다고. 그러고 보니 강가에 원래 텐트가 많다고 했는데 텐트는커녕 포클레인이 물을 파고 있었다. 그루타스 숙소 청소 중인 직원이 "리오 클로즈"라고 다시 한번 단언해 줘서 결국 그루타스로 바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루타스 가는 길도 엄청 예뻤는데 나무 사이사이로 보이는 리오(강)가 살벌할 만큼 물살이 셌다. 어제 캠핑을 못한 아쉬움이 좀 가시는 거 같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우기를 선택해 여행 오는 바람에 리오도 못 즐기고 캠핑도 못한 게 아쉬웠다. 이런들 저런들 여행은 계속 되어야 하니 그루타스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그루타스에 도착하니 그루타스 메인 동굴 쪽도 들어가는 길이 막혀있었다. 강이랑 이어지는 곳이라서 위험해서 그런 듯했다. 위쪽의 터널만 들어갈 수 있았다.
터널은 폭포가 떨어지는 입구를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는데, 어떻게 이게 천연일 수가 있지? 진짜 세상에는 말도 안 되고 내가 모르는 자연의 멋진 일들이 너무 많다. 감탄을 뒤로하고 한국인 친구들을 따라 들어갔다. 들어가면서 점점 뜨거운 열기와 공기가 가득 찬다. 중간에 두 친구는 돌아나가고 나도 첫 번째 탕 건너는 구간에서 돌아 나왔다. 나는 어차피 막차를 탈 거라서 시간이 많은지라, 뭔가 더 천천히 적응하고 카메라도 준비된 상태로 들어가고 싶었다(근데 그럴 필요 없었음)
나와서 멋져 보이는 어딘가 들어가려다 유료공간인 상황들을 겪고 친구들은 3시 차를 타는데도 리오도 못 가고 그루타스 메인 구역도 못 들어가니 시간이 남아버리는 상황이 생겨버렸다. 나도 제일 기대했던 건 리오였는데 너무 아쉬웠다.
친구들은 터널이라도 다시 가본다고 해서 일단은 친구들이랑 헤어지고 혼자 그루타스 라커 쪽으로 다시 걸어왔다. 막차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서 슈퍼에서 뭐라도 사 먹고 커피도 마실 생각이었다. 라커 빌렸던 매점에 가서 뜨거운 물 파냐고 물어보니까 잠깐 생각하더니 컵을 주면서 커피 자판기에서 나오는 뜨거운 물을 그냥 받아가라고 했다. 한 컵 더 써도 되냐니까 오케이 해서 가져온 라면을 뽀글이 해 먹기로 했다.
라면 봉지가 너무 약해서 받은 종이컵에 라면 부수어서 넣고 뜨거운 물 받고 물만 쓰기 좀 그래서 마실 거 하나를 사려다가 어쩌다 보니 맥주를 사게 됐다(?) 맥주랑 삶은 계란이랑 라면까지 한상이 차려졌다. 라면은 맛이 분명 없을 거 같아서 왕뚜껑 스프를 더 뿌렸다.
조악한 풍경이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맛있게 익은 라면을 먹고 있으니 한국인 친구들이 돌아왔다. 친구들은 이제 씻고 익스미킬판으로, 또 멕시코시티로 다시 돌아간다고. 옹기종기 모여서 사 온 빵을 나눠먹고 있는 걸 보니 되게 귀여웠다. 나도 대학생 때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더 많은 곳을 여행 다니고 더 많은 추억을 쌓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의미 없는 후회도 잠깐 들었다.
친구들에게 고마웠다고 인사를 전하고 다시 그루타스 쪽으로 가기 시작했다. 아까는 친구들이 있어서 걸음을 맞췄었는데 혼자니 별것도 아닌 것을 오래 바라보며 구경하면서 걸었다. 함께하는 여행은 즐겁고 혼자 하는 여행은 좀 별스럽다. 둘 다 의미가 있다.
분명 아까도 본 풍경인데 다시 봐도 정말 아름다웠다. 물살이 세서 못 들어가는 건 슬프지만 온천이 저렇게 거세게 흘러내린다는 것도 신기했고 절벽에서 폭포로 떨어지는 온천은 누가 일부러 빚어놓은 풍경 마냥 경이로웠다. 한참 풍경을 바라보다 이번에는 끝까지는 아니더라도 안에 들어가서 온천을 즐겨보기로. 고프로는 비치타월에 감싸서 걸어두었다.
후레시를 켜고 들어가다 보니 아까보다는 숨이 막히는 게 덜하다. 아마도 포지타스까지 갔다 왔다 하면서 갈증이 났던 게 컸던 듯. 근데 아까 왔던 곳까지 오고 보니 바로 하나만 넘어가면 동굴 끝이었다. 동굴 끝에서는 사람들이 사진 찍고 있었다. 나는 그냥 그 끝 넘어가는 언덕(?)에 앉아서 물 좀 맞다가 입구 쪽에서 쉬다가 다시 들어가서 따뜻한 물 맞기를 반복했다.
날씨 탓에 즐길 거리 자체는 적었는데도 기분 안 좋을 때 기분 전환하러 목욕탕 가던 거처럼 단순히 물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특히나 그게 따뜻한 물이라면 더더욱. 게다가 몇 걸음만 나가면 시원한 물과 시원한 공기를 마실 수 있고 또 몇 걸음 돌아 들어와 따뜻한 물을 맞고 특히나 이렇게 자연적으로 생긴 동굴 속에서라면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다.
나 말고도 많은 현지인들이 아기들은 입구의 시원한 물이 있는 곳에서 놀고 어르신들은 따뜻한 물이 쏟아지는 곳이나 웅덩이 진 곳에서 온천을 즐기고 계셨다. 뭐가 그리 재밌다고 혼자서 거기서 한참 시간을 보내고 4시 20분 다시 집 짐 보관하는 곳으로 돌아왔다. 돌아갈 채비를 다한 사람들도 많았고 직원들도 퇴근한 듯 보이는 사람이 많았다.
나도 얼른 씻고 키 반납하고 버스 대기하는 곳으로. 5시 반 막차 시간이 되니 아저씨가 확성기로 막차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5시 반 막차는 직원들도 중간중간 다 태워서 가는 터라 큰 버스였다. 리오도 못 놀고 그루타스도 제대로 못 즐겨서 너무너무 아쉬웠지만 즐거웠다. 한 번이면 족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언젠가 정말 멕시코에 다시 온다면, 고기랑 라면 싸들고 와서 끝내주는 캠핑을 즐기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다시 올 수 있을까?
익스밀낄판에서 내려서 원래는 해물탕을 먹으려고 했는데 배가 고프지가 않아서 걷다 보니 피자집을 발견했다. 조각으로 살 수 있게 되어 있어서 얼마냐고 물어보니까 한 조각에 20페소란다. 정말 감동.. 피자 각각 다른 맛으로 2조각 포장, 주인아줌마와 아들(로 보이는 분)도 언어소통이 안됨에도 불구하고 웃으면서 주문하고 데워주고 포장해 주시고 인사도 해주셔서 감동이었다.
피자가 있으니 결국 맥주 세 캔을 샀다. 돌아와서 대충 빨래하고 널어놓고 이른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피자는 생각보다 더 굳, 한 조각 먹고 맥주를 많이 먹으니까 배가 불러서 한 조각은 남겼다. 잠들기 아쉬워 괜히 마당을 산책했다. 일교차가 신한 멕시코라 밤은 선선하니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