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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Day5. 오늘은 여행 쉽니다.

여자 혼자 중남미 여행/멕시코 시티 월마트, 월마트 한국 라면

by SUNPEACE

2025_6/1


오늘도 알람 없이 7시 기상, 눈을 뜨자마자 생각했다. 오늘은 멕시코 음식을 먹고 싶지 않다고. 어제 낮에 먹은 토르티아의 충격이 가시질 않아서 그냥 간단히 뭔가 해 먹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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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도 떨어진 김에 세븐일레븐으로 출동. 뭘 사야 잘 샀다 소문날까 엄청 고민하다가 그래도 혼자여행에서 가장 만만한 식빵(30페소)과 계란(12개 54페소)으로 정했다. 편의점 커피 사려는데 여러 종류 중 직원이 추천해 준 멕시코 오리지널 원두, 편의점 커피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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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와서 빵 세 개에다 계란 3개를 구워서 먹었다. 케첩이라도 있으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만족. 한식은 아니지만 빵과 계란은 익숙하니까, 익숙한 맛이 필요했다. 그렇게 익숙한 식사를 하고 커피까지 마시니 더운 거리를 걷는 것보다 그늘이 있는 호스텔 공용공간이 편하다고 느껴졌다. 여행은 어떨 때는 해야 하는 과제 같지만 어떨 땐 휴식이니,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오늘은 그냥 쉬자!


IMG_0580.JPG 오늘도 텐트 너머 보이는 소칼로 광장

침대에 누워 노닥거리다, 더위 탓에 공용 공간 소파에서 노닥거리다, 그러다 보니 세 시가 다 돼갔다. 빵이랑 계란도 맛있지만 그 심심함을 조금 채워줄 샌드위치용 햄이라도 좀 사고 산책이라도 하자 싶어서 30분 거리에 월마트로 길을 나섰다.


소칼로 광장으로부터 두 블록만 떨어져도 인구가 줄고 조용하고 좋았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 멕시코 시티의 매력이 확 와닿지 않았던 이유는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 한가운데, 그것도 명동 성당 바로 앞 숙소를 잡고 '여기는 왜 이렇게 사람이 많지ㅜ'이러고 있는 거였기 때문도 있을 것이다. 어제 테오티우아칸 정도의 인구밀집도만 되어도 살만 하다는 생각을 하다 깨달았다.


물론 관광지를 벗어나니 주의를 기울여야 했지만 생각만큼 무서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주택단지가 전부 키를 대고 들어가야 했지만 그건 이들의 생활의 일부겠지.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만 단정 짓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걸어가다가 횡단보도에 멈춰 눈치를 살피는 중, 엄청 익숙한 냄새가 나서 돌아봤더니 치킨이었다. 전기구이 통닭처럼 치킨이 돌아가고 있었다. 한 마리에 123페소로 꽤 저렴했고 반토막, 4분의 1토막도 살 수 있는 듯했다. 나는 일단 목적지가 있으니 킵고잉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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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찾아간 월마트는 대형 쇼핑센터 2층에 있는 거였다. 1층에 맥도날드의 디저트 음료류만 파는 상점, 스타벅스 등등이 있었다. 현지인들이 찾는 곳이라 그런지 아시아계 인간은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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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게 없는 월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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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월마트로 직행, 정말 없는 게 없었다. 멕시코 시티는 정말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카드만 들고 와도 여행을 꾸릴 수 있을 정도로 없는 게 없다. 어제 시장에서 양말 7백 원, 나시 1천400원 이 정도 하던데, 월마트도 그보단 비쌌지만 속옷부터 가전 가구까지 전부 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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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커피, 빵에 넣을 햄, 혹시 있다면 라면 사리를 사러 온 거였기 때문에 이리저리 구경을 하다 라면 코너에 갔다. 반가운 삼양라면, 여기도 불닭볶음면이 있었다. 세븐일레븐에 비해서 엄청 저렴했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온 지 고작 5일 차라 살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멕시칸 꼬마애가 딱 하나 남은 까르보 불닭을 집어 들었다. 나도 불닭은 까르보 불닭밖에 안 먹어서 차라리 아기가 가져간 게 잘됐다 싶었다. 막상 까르보 불닭을 집고는 오리지널과 고민하기에 내가 그거 맛있다고 알려주니까 나보고 어디 사람이냐 해서 코리아라고 했다. 그랬더니 수줍게 웃으며 그라시아스 하고 사라진 아기.


나는 그냥 내 라면수프랑 먹을 저렴한 라면 두 개를 집어 들고 햄을 사러 가려는데 그 아이가 다시 와서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이래서 '엉?' 하니까 "제일 좋아하는 한국음식이 뭐예요?" 물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때 김밥이 생각나서 김밥이라고 대답했다. "김밥 알아?" 하니까 모른다고 근데 자기는 김치는 안다고 "김치 안 좋아하냐"라고 물어봤다.


근데.. 나는 김치 안 좋아하는 사람.. 그래도 한국인으로서 실망감을 안겨 주기 싫어 "나는 김치로 요리하는 거 좋아해"하고 말해주니까 김치로 요리도 하냐고 물어봐서 "김치로 수프도 끓여 먹는단다"하고 알려주니 새로운 걸 알았다며 고맙다고 하고 갔다. 한국에 관심이 많은 아이였나 보다.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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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술은 대통령 선거 때문에 판매 금지된 날이었다

사고 싶은 것들이 정말 많았는데 현실적으로 남은 빵, 계란, 오늘 햄까지 사면 다 못 먹고 남길게 뻔했다. 다음부터 4일 이상 머무는 곳이 있다면 바로 마트부터 가는 걸로 다짐하고 커피, 라면, 햄 딱 필요한 것만 110페소로 구매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엔 다시 한번 치킨의 유혹이 있었지만 참았다. 익스미낄판에도 치킨집이 있어서 거기서 먹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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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하러 4층으로 올라갔다. 멕시코 시티에 온 첫날부터 제일 좋은(콘센트 있는) 1인석에 계시던 아저씨가 밥 해 먹을 거냐며 말을 걸어왔다. 그러면서 선인장 먹어봤냐고 물어봐서 안 먹어봤다니까 직접 해주겠다고 나서셨다. 그냥 선인장을 기름 두른 팬에 올리고 잘 구워주면 끝.


사실 원래는 이렇게 잘 안 먹고 굽고 썰어서 타코 같은데 같이 곁들여 먹는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 계란이랑 햄 넣고 먹으라고 하셨는데 나는 '선인장 맛'이 궁금해서 일단 그냥 먹어보기로 했다. 파블로 아저씨는 멕시코 사람인데 멕시코 시티 사람은 아니라고, 맨날 노트북으로 일하시는 거 같았다. 선인장이 굽히는 동안 자기 친구를 소개해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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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의 친구는 미국에서 온 20살짜리 흑인 남자애였다. 내 나이를 듣더니 혹시 아기가 있냐고 물어보는 순수한 친구.. 그래도 오래간만에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서 엄청 반가웠다. 영어도 잘 못하지만 스페인어는 아예 못하니 말이다. 파블로가 갑자기 급하게 메일을 보내야 한다며 주방을 떠나고 그 친구가 선인장을 마저 구워줘서 먹었는데 그냥 소금하고 오일맛 밖에 안 났다. 약간 단맛이 안나는 무 같은 느낌?


그 친구의 이름은 콴트란이라고 했다. 콴트란과 2시간 넘도록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신기했던 건 내가 미국인인 줄 알았다고. 왜 그렇게 생각했냐 하니 자신의 엄마가 아시아인과 미국인 혼혈이라 아시아계 사람들이 미국인일 거란 사실에 편견이 없어서 그런 거 같다고 했다. 어머니 사진을 보여주셨는데 할리우드의 아시아 배우처럼 동양인이지만 화려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왓썹마니가? 이런 흑인 제스처를 알려줬는데 계속 나한테 '마니가'를 말해보라고 했다. '니가'가 흑인 비하 용어에서 나온 거라 느껴져서 굳이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니까 흑인들은 "백인 놈들 빼고는 다 우리를 니가라고 해도 된다"라고 생각한다고 너는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끝내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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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얘기를 하다 보니 원래 일기도 쓰고 글도 쓰고 영상 편집도 하려 했는데 저녁도 못 먹은 채 9시가 다 돼 갔다. 나는 이제 밥 먹어야겠다고 얘기하고 콴트란은 자러 갔다. 아침에서 업그레이드된 버전으로 햄을 넣고 샌드위치를 먹었다. 이 샌드위치를 앞으로도 몇 끼를 먹게 될 거란 사실을 애써 외면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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