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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Day 14. 아름다움은 때로 값을 치른다

여자 혼자 중남미 여행/이에르바 엘 아구아, 와하카 근교 여행, 콜렉티보

by SUNPEACE

2025_6/10


와하까는 미식의 도시로 유명한데 (한국인들이 멕시코의 전주라고 부르는 정도) 나는 멕시코에 지내면서 입맛에 그다지 잘 맞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구글맵에 이곳저곳 찍어놓은 박물관이나 식당들이 있었지만 흥미가 안 생겨 잠깐 잠만 자고 체력 충전만 하고 가려고 했다.


한국에서 와하까에 대해 공부하며 단 한 군데 흥미가 들었던 곳이 이에르베 엘 아구아(Hierve el Agua)였는데 꽤 멀리 있어 현지에서 정보를 알아보고 가기 힘들면 가지 말자~싶었다. 어제 우표 박물관에서 우연히 본 포스팅에서 이에르바 엘 아구아를 가는 방법을 봤는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돌아오는 길에 툴레 나무에 들렸다는 글을 봐서 오늘은 이에르바 엘 아구아를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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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 버스에서 상당히 불편하게 와서 피곤했기 때문에 오늘은 오전에만 일어나야지 하고 알람 없이 자고 8시 10분 기상. 그래도 멕시코에 와서 가장 늦은 기상 시간이었다. 그래도 꽤 피로가 가시지 않던 나를 벌떡 일어나게 한건 호스텔 조식의 존재였다.


빵 두 조각, 버터, 커피. 단순하고 구글맵의 어떤 이는 ‘그 조차 리필이 불가했다’며 불평을 토로한 조식이었지만 나는 반갑고 감사했다. 식당에 내려가니 친절한 스태프가 "커피 괜찮니? 토스트로 해줄까?" 하며 커피와 토스트를 내어주었다. 빵도 호밀빵이라 식감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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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고 준비를 마치고 출발, 이에르베 엘 아구아에 가려면 광역 버스 정도되는 버스를 타고 ‘미틀라(Mitla)’에서 하차, 거기서 콜렉티보를 타고 가야 한다. 광역버스를 탈 수 있는 정류장까지는 걸어서 30분이 걸려서 이미 10시 반이었던 시간이라 발에 땀나도록 걸었다. 걸으면서 보니 와하까도 소소하고 예쁜 동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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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류소 근처에서 먹을 걸 좀 사가려던 차에 발견한 노점. 정류소 근처가 공사 중인데 공사하는 인부들, 지나가는 경찰이나 주민들이 사 먹는 노점 같았다. 경찰 언니가 먹고 있는 게 맛있어 보여서 뭐냐고 물어보니 토르타스라고. 족발 토르타스처럼 딱딱한 빵이 아니어 보였는데 멕시코에서는 빵에 속재료를 넣어주는 것들을 다 토르타스로 통칭하는 모양이다. 그거랑 노점상의 아들이 추천해 준 오트 주스까지 총 40페소에 주문, 오트 음료는 뚜껑이 불안전해서 쏟아질 거 같길래 몇 입 먼저 마셨다. 연유를 물에 탄 맛? 나쁘지 않았다.


스크린샷 2025-06-22 오전 11.24.18.png 이렇게 길거리에서 탄다

정류소(?)에 도착했는데 혼돈 그 자체였다. 몇몇 버스들이 지나가고 있었는데 여기 로컬 버스는 우리나라 8-90년대처럼 안내군이 있었다. 남자 안내군이 “툴레~~~!!!!!”이러면서 입구에 매달려 소리치고 탈 사람들이 손 흔들며 다가가면 차를 멈추지 않고 탈 수 있는 속도로 줄여 태워가는 식이었다. 10대로 보이는 소녀 둘에게 다가가 미틀라 가는 버스 어디서 타냐고 물어보니 자기들을 따라오면 알려준다고 하고 로컬 버스를 탔다.


나는 그 버스가 미틀라까지 가는 걸로 생각하고 따라 탔다. 잔돈이 없어서 200페소를 건네니 동전 한 무더기를 거스름 돈으로 받았다. 세어보니 10페소짜리 17개, 5페소짜리 3개, 버스비는 15페소인가 보다. 그런데 실로 로컬 버스는 엄청났다. 덜컹거리는 수준이 역대 여행하면서 탔던 어떤 버스보다도 심했다. 버스는 덜컹거리고 오트주스는 넘치려고 하고 동전은 한 무더기 쥔 상태에서 보니 소녀들이 기사랑 어떤 얘기를 하고 있었다.


IMG_1911.JPG 이런 곳에 덩그러니 내려졌다

알고 보니 그 소녀들도 이에르베 엘 아구아나 미틀라까지 어떻게 가는지 몰랐던 모양. 그냥 방향이 같으니 일단 나를 데리고 탄 거 같았다. 소녀와 안내하는 아저씨가 얘기를 잠시 나누더니 신호가 걸린 채 선 버스에서 여기서 내리면 된다고 했다. 그러더니 옆에 택시 콜렉티보랑 얘기를 나누고 “얘가 너 데려다준대!” 하고 버스는 떠나버렸다.


택시 콜렉티보 안을 보니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괜히 바가지 쓸 거 같아 택시 아저씨한테 다른 걸 타겠다고 얘기하고 바로 앞 가게에 앉아있던 할머니들한테 물어보니 미틀라까지는 혼자 가면 비싸고 콜렉티보 사람들을 모아서 가면 4-50페소쯤 할 거라고 했다. 생생 달리는 차들만 있는 곳에서 어떻게 사람을 모으나.. 옆 가게에서 방황하는 나를 쳐다보고 있던 아저씨랑 아줌마에게 다가가 혹시 미틀라까지 가는 버스는 없냐고 물어보니 나를 10걸음쯤 데려다가 여기 서있으면 미틀라라고 적힌 버스가 올 거라고 했다.


IMG_1925.JPG 미틀라 가는 버스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버스가 여러 대 지나가도록 그런 버스는 오지 않고, 사실 이 모든 얘기들이 스페인어 80프로와 간단한 영어들로 이어진 것이기 때문에 신뢰도가 거의 없는 상태여서 어떻게 하지 고민하고 있던 차에 여러 대 지나갔던 버스와는 다르게 생긴 버스 한 대가 오고 있었고 거기엔 미틀라라고 적혀있었다! 광역버스는 로컬버스랑 다르게 생겼다는 걸 그 버스가 오고 나서야 알았다. 버스비는 25페소. 사람들이 가득 차있었다.


다행히 다시 맞게 탄 버스는 한적한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고 그 한적한 도로 곳곳에 있는 정류소에서 사람들이 타고 내렸다. 버스는 유리창이 깨진 것이 익숙한 조지아의 냄새가 나기도 하고.. 해가 쨍쨍 내리는 도로에 코코넛이나 음료를 파는 노점들도 있었다. 멕시코 버스는 기사의 자유도가 높은지 아저씨의 핸드폰으로 노래를 틀고 달렸고 아저씨가 중간중간 통화를 할 때 노래가 끊겨도 아무도 신경 안 썼다.


중간에 아예 터미널 같은 곳에 들어가서 우르르 내리는데 아저씨가 미틀라는 아직이야~했다. 그렇게 1시간을 달려서 도착한 미틀라. 내리자마자 “이에르바 엘 아구아?”하면서 콜렉티보 기사가 온다. 맞다고 하니 지금 2명 기다리고 있다고 저기 들어가서 기다려~하고 또 사람 구하러 가심. 곧 모녀 3명이 와서 우리는 6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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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 반쯤 도착해서 한 삼십 분 정도 기다렸는데 아저씨가 와서 모녀 세명과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눈치로는 "너네 사람이 모자라니까 돈 더내고 6명이서 가자" 이런 얘기인 듯. 모녀를 설득하는 데는 몇 분이나 쏟더니 내 의견은 묻지 않고 데려가려고 했다. 그래서 나한테도 설명해 달라니 "6명이니 110페소 내고 가자, 너 말고 모두 동의했다" 이런 식으로 얘기했다.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5명을 보내고 나면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니 알겠다고 하고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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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프차 같은 차에 뒤 트렁크 쪽을 사람 태울 수 있게 만든 게 이에르베 엘 아구아 행 콜렉티보다. 모녀 셋이 뒷자리에 타서 기사 옆자리에 타거나 트렁크 자리에 타야 했는데 트렁크에 자리 잡은 커플이 고프로를 든 나를 보고 "트렁크에 타는 게 더 멋진 영상이 담길 거 같은데! 같이 타자!" 해서 나도 뒤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사실 미틀라에서 목적지까지 얼마나 가는지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탄 거였는데 생각보다 엄청 오래 이동을 했다. 한 5분 정도 잘 닦인 도로를 타고 가서 어떤 입구에서 ‘통행료’ 명목으로 인당 15페소를 지불한다. 그 뒤로는 꼬불꼬불 산길을 달려. 20분 정도 이동, 마을을 지나 이에르베 엘 아구아 입구에서 입장료 50페소와 콜렉티보 기사에게 콜렉티보값 110페소를 낸다. 꼬불꼬불 산길은 생각보다 길고 덜컹거려서 등받침이 없는 트렁크 칸은 등이 아팠다.


튕겨나갈 거 같은 느낌은 없었는데 커플 중 남자는 멀미를 호소했다. 중간에 그 커플 들고 스몰토크를 나눴는데 아마 6명이서 출발하자고 제안한 게 이 커플인 거 같았다. 자신들은 5시에 메즈칼 투어가 있어서 시간의 압박이 컸다고. 그래도 올라가는 동안 보는 풍경이 멋지고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해보겠어~'하면서 즐길만했고 110페소도 험한 산길에 비하면 아깝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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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렉티보 내리는 곳에서 노점과 식당들을 지나 내리막을 내려가면 드디어 이에르베 엘 아구아를 만날 수 있다. 멋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보다도 더 멋진 풍경. 절벽에 물이 고여있고 그 너머의 절벽과 산새 그 공간감이 말도 안 되게 멋졌다.


이에르베 엘 아구아(Hierve el Agua)는 탄산칼슘으로 형성된 석화 폭포라고 한다. 수천 년 전 미네랄 함량이 높은 물이 흘러내리면서 형성된 자연폭포인데 이 폭포를 만든 샘물은 지금은 천연 웅덩이를 만들어서 온천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온천이라고는 하지만 물은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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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쪽으로 올라가 보니 2개의 탕이 더 있었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중간 탕은 수영이 금지된 거 같았다. 자연을 보호해 달라는 표지석도 있었다.


더우면 나도 입수를 할 작정으로 바지와 속옷을 챙겨 왔는데 콜렉티보 야외체험을 하느라 땀이 다 식어서 덥지가 않았다. 트래킹 코스가 있다 해서 그쪽으로 먼저 발길을 돌려보았다. 가는 길에 아까 같이 트렁크에 탔던 커플이 “멕시코식 과일 먹어봤어?”하며 아구아를 나눠줬는데 멕시코인들은 과일에 매운 소스랑 소금을 뿌려먹는다는 게 진짜였다. 도대체 무슨 맛인지 모르겠지만 준 성의를 봐서 다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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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킹 코스로 5분 정도만 올라가면 이에르베 엘 아구아를 건너편에서 볼 수 있는데 멀리서 보니 더 멋졌다. 독수리 같은 새들도 많이 날아다니고 정말 협곡 속에 숨겨진 파라다이스를 엿보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이 가는 트래킹 코스는 20분 정도 걸리는데 안 가봐서 모르겠지만 석화된 폭포를 볼 수 있는 포인트까지 가는 거 같았다.


우선 나는 토르타스를 먹었음(?) 출출하기도 했지만 일단 손에 든 짐을 좀 줄이고 싶었다. 길거리에서 25 페소 하는 토르타스였지만 맛은 훌륭했다. 와하까가 치즈가 유명하다는데 그래서인지 치즈를 같이 넣어주어 맛이 풍부했고 고기도 간이 잘 되어있는 데다 과카몰리가 부드럽게 그것들을 조화시켜 주었다. 크기가 커서 반만 먹고 남기려고 했는데 맛있어서 결국 다 먹게 되었다.


Cascada_petrificada_de_Hierve_el_Agua_en_Oaxaca.jpg 끝까지 가면 이런 석화된 폭포를 볼 수 있단다

먹고 나서 트래킹 코스를 따라 내려가보는데 그늘 한점 없이 땡볕. 내려가는 거야 그렇다 치고 올라올 때 너무 힘들 거 같은데, 게다가 석화된 폭포는 멀리 서지만 실컷 바라본 뒤였기 때문에 나는 다시 온천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에르베 엘 아구아(Hierve el Agua)=끓는 물이라는 이름답게 천연탄산수가 퐁퐁 솟아오르고 있었다. 인공적으로 만든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런 자연이 있을 수가 있지. 정말 나는 세상의 눈곱만큼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 같다.


이 작은 물들이 모여 웅덩이에 고인다. 사람들은 몸을 담그고 수영을 즐긴다. 내가 전혀 모르고 살아온 세상의 일들. 나도 수영을 할까 싶었지만 그냥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좋아 자리를 잡고 뜨거운 햇볕에도 불구하고 한참 물멍을 했다. 독수리가 와서 물도 마시고 가는 천연샘.


사람들이 사진을 많이 찍는 스폿에서 부탁해서 사진도 찍고 발이나마 담그고 동동거리며 놀았다. 엉덩이가 다 젖어버렸지만 해가 쨍쨍해 금방 말라서 옷을 갈아입을 필요까지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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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에 도착해서 시간을 보니 벌써 4시가 다 되어갔다. 풍경이 아름다워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봤던 것. 화장실에 들렀다가 나가려는데 이 풍경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아쉬워서 다시 발길을 돌려 또 한 십 분가량 풍경을 바라보고서야 발길을 돌릴 수 있었다.


콜렉티보 정류장엔 아무도 없어서 두리번거리다 보니 아까 같이 타고 온 모녀가 그늘에서 과일을 먹고 있었다. 가서 콜렉티보 타고 가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넷 밖에 없어서 내가 입구 쪽에 가서 물어볼게 하고 입구 쪽에 가서 물어보니까 콜렉티보 타는 사람들은 다 정류소로 올 거라고 여기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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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류장 천막 그늘에서 자는 강아지, 석회질 떄문인지 발바닥이 회색이다

다시 콜렉티보 정류소에 오니까 모녀랑 콜렉티보 기사랑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우리 넷 밖에 없어서 인당 150씩 내고 가던가 기다리던가, 5명 이하가 되면 둘이든 셋이든 500페소를 나눠내든가 뭐 이런 얘기였다. 그러면서 “근데 기다려봐야 너네밖에 없을걸 이거 마지막 콜렉티보야”이런 식으로 얘기했다. 아까 온천에 사람들이 아직 많아서 주위를 둘러봤지만 자기 차를 가지고 온 가족 단위가 많아서 뿔뿔이 흩어져 차를 타러 가고 있거나 투어 차량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까 올 때도 느꼈지만 여기 콜렉티보 애들은 독점이라 그런지 약간 배짱 장사 같았다. 그래도 나야 돌아갈 선택지가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생각했지만 그쪽 어머니는 그게 너무 과하다고 생각됐는지 어딘가로 전화를 돌렸다. 내가 딸에게 왜 그러냐니 다른 방법을 찾고 있는 거 같다고 했다. 한 10분가량 멀리 떨어져서 전화를 돌리다가 셋이 발길을 돌리며 몰래 나에게 손짓했다. 나도 따라나섰는데 어딘가로 연락을 해서 저렴한 방법을 찾은 거 같았다.


대신 조금 걸어 나가서 택시를 타야 해서 같이 걸어가서 타자고, 나에게 미틀라까지 가서 내려주겠다고. 그래서 얼마냐고 하니 그냥 50 정도만 내라는 식으로 얘기를 했다. 그들은 미틀라보다 조금 더 가야 있는 마을에 사는 듯했다. 걸어가고 있는데 입구 쪽에서 입장료를 받던 직원이 뭐라 얘기를 하면서 우리를 붙잡았다.


직원이랑 어머니랑 얘기를 나눴는데 스페인어를 몰라 잘 못 알아들었지만 대충 들어보니 너네 택시 불렀냐, 부르면 안 된다 이런 식의 추궁을 하는 거 같았다. 어떻게 답변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찌 얘기를 끝내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대충 들어보니 여기 마을 사람들은 여기 마을 사람들이 아닌 사람이 돈을 버는 걸 싫어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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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을 넘어가며 짧은 얘기도 나눴다. 어머니랑 딸 중 한 명은 영어를 못해서 한 명이랑만 소통이 됐다. 어머니가 엄청 어려 보여서 처음에는 큰언니인가 생각했는데 뭔가 궁금한 거 이것저것 딸을 통해 물어보는 모습으로 어머니인 걸 알게 됐다.


언덕을 다 올랐는데 갑자기 아까 우리랑 얘기를 하던 콜렉티보 기사가 따라와서 차를 멈추고 창문을 내리고 엄마랑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설전이 엄청 길어져서 10분 넘게 얘기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잘 못 알아들으니 가만히 있었는데 뭔가 반복되는 얘기를 하는 중에 “투어리스트” “멕시칸” 이런 얘기가 나오는 거 같았고 투어리스트가 나를 지칭하는 거라는 직감이 왔다. 콜렉티보에 다가가서 무슨 일이냐고 했는데 기사는 나 몰라라 하는 식으로 “노 잉글리시” 하면서 너네끼리 얘기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이 설전의 전말은 ‘이 마을을 나가려면 이 마을에서 운행하는 택시나 콜렉티보를 타야 하는데 너네가 그걸 어겼다’라는 거였다. 그에 엄마는 ‘택시가 아니라 우리 마을의 친구가 나를 데리러 오는 거다’라고 주장했던 거였고, 그에 그 콜렉티보 기사는 “그럼 쟤(나)는 왜 데려가냐” 하며 나를 인질 삼아 설전이 이어졌던 거였다.


엄마는 나랑 얘기를 하다 같은 방향이라는 걸 알게 됐는데 같이 데려갈 수 있지 않냐, 이렇게 얘기했지만 콜렉티보 기사는 관광객을 그렇게 너네 마음대로 데려갈 수 없다. 관광객은 무조건 우리가 운영하는 택시나 콜렉티보를 타고 나가야 한다. 너네는 이해해 주겠지만 그럼 쟤를 놓고 가라. 이런 식으로 얘기했다고. 그러면서 결론적으로는 나에게 혼자 500페소를 내고 콜렉티보를 타면 너네는 보내줄게,라는 상황이 된 거였다.


이 말에 꼭 따라야 하는 의무가 있냐, 내가 어떤 차를 탈지 선택하지 못하는 것은 폭력적이라고 주장했는데, 이 사람의 말은 처음 들어올 때 통행료를 내고 들어온 입구에서부터 이에르베 엘 아구아 마을까지는 자기들의 구역이고 그 안에서의 룰을 따라야 하며 그 룰에는 “마을에서 허락한 택시나 콜렉티보가 아닌 것은 금지되어 있다”는 말을 반복했다.


물론 관광업을 주로 하는 마을이니 자체적인 룰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은 이해하려면 할 수 있었지만, 이걸 사전에 고지해 준 적도 없고 법적으로 효력이 있는 룰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데다 “이게 아니면 넌 이 마을을 나갈 수 없다”는 식의 폭력적인 운영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 내가 여기서 노는 동안 현지인이랑 친해져서 걔네 차를 타고 나가는 건 될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절대 500페소 내고 못 가겠다 그럼 나는 걸어서 가겠다고 하니 그것도 안된다고 한다. 위험하고, 자기들은 나를 안전하게 왔던 곳으로 되돌려 놓는 직업이라고. 그럼 너 말고 다른 콜렉티보 기사를 불러달라 500페소는 너무 과하고 너의 태도가 폭력적이라서 너의 차에 타고 싶지 않다.라고 하니 어차피 자기들은 팀이고 불러줄 수 없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난 스페인어가 안되고 기사는 영어가 안되니 내가 영어로 딸에게 말하고 딸이 스페인어로 그 기사에게 전달하는 상황이었는데 나도 그쯤 되니 그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방법이 없다고 느껴졌다. 진짜 500페소 내고 그냥 혼자 가야겠다 싶던 차에 어머니가 어딘가로 전화하고 나서는 차문을 열고 콜렉티보에 올라탔다. 500페소의 짐을 나에게 다 지게 하는 게 정말 아니라고 느꼈는지 "데리러 오지 말라고 했으니 그냥 우리 150씩 각자 내고 가는 거, 원래 얘기한 대로 그냥 가자"라고 했다.


내가 아니었더라면 그들은 합리적으로 갈 수 있었을 텐데 미안한 마음도 너무 컸고 이에르베 엘 아구아의 좋았던 풍경이나 이 풍경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며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통행료, 입장료도 다른 시선으로 보였다. 관리하지 않으면 무엇이든 망가질 테니 관리하는 마을사람들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마음은 정말이지 깡그리 전부 사라졌다.


그 기사는 이 선택이 당연하다는 태도로 차를 타고나서도 몇 번이고 반복해서 “택시는 우리 마을에서 금지”라고 얘기하는 듯했다. 그 뒤로는 침묵을 유지한 채 20분의 거리를 다시 달려왔다. 아까는 덜컹거리지만 즐거웠던 길도 그냥 빨리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 들고 저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도착해서 아까 동전으로 거슬러 받은 게 많아서 동전으로 줄 수 있는지 동전을 세어보고 있으니 내가 가격을 잘못 알았다 생각했는지 150페소라고 또 몇 번을 말했다. 결국 나도 짜증이 나서 기다리라고 화를 내고 150페소를 내고 내렸다. 가족들에게 거듭 사과를 하니 어머니가 웃으면서 괜찮다고 하며 와하까 버스 위치, 혹시 버스가 너무 안 오면 타고 가라고 콜렉티보 기사랑도 얘기해 주고 갔다.


콜렉티보 기사가 4명 모여야 50페소라고 해서 알겠다고 하던 중에 와하까 말고 근처 마을로 2명이 더 왔다. 기사가 나보고 거기까지 같이 가서 거기서 버스 탈래? 물어봤는데 굳이 그럴 필요 없을 거 같아서 난 그냥 기다린다고 하고 보냈다. 똑같이 초록 광역버스 타고 돌아오는 길. 내리는 위치는 그냥 구글맵 보면서 근처에 다 왔을 때 내렸다.


스크린샷 2025-06-22 오전 11.52.31.png 너무나 아름다웠는데, 다시는 가지 못하게 되었다

너무 좋았던 풍경을 보고 꼭 다시 오겠다는 마음을 먹고, 떠나기가 아쉬워 발길을 다시 돌려 보기까지 했는데 마지막 마무리가 좋지 않아서 그 기억이 퇴색되어 가는 느낌이었다. 아니면 오히려 되돌아가서 풍경을 다시 보길 잘한 거 같기도. 다시 가고 싶지 않아 졌으니까 말이다.


분명히 즐거웠지만 뜻대로 항상 될 수 없다는 걸 또 한 번 느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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