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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Day15. 마음이 남지 않는 도시도 있더라

여자 혼자 중남미 여행/와하카 한식당 두루루, 수수료 저렴한 ATM

by SUNPEACE

2025_6/11


오늘은 와하카를 떠나는 야간 버스를 타는 날이다. 아침에 눈을 뜨니 8시, 와하카 오는 야간 버스를 타고나서부터 생겼던 눈 다래끼가 심해져서 오른쪽 눈이 잘 안 떠졌다. 눈 운동을 하고 스트레칭도 하고 혹시 몰라 챙겨 온 안약도 넣으니 겨우 떠지는 눈. 누워서 좀 뒹굴 거리다가 조식을 먹으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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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커피, 토스트 한 빵과 버터. 그런데 특별히 삶은 계란이 추가되었다. 스태프들끼리 먹으려고 삶는 김에 많이 삶은 듯, 삶은 계란 좋아하냐고 해서 좋아한다고 한 개 얻었다. 덕분에 단백질이 추가된 식단을 먹을 수 있었다. 이 정도 조식이면 매우 만족이다!


맛있게 먹고 옥상에 올라가 보니 비가 추적추적 오고 있었다. 다행히 오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듯 널어놓은 양말이나 속옷은 많이 젖지 않은 상태였다. 습도가 높아서 그늘막 아래 (어제 자리가 없어서 의자에 널어 두었다) 널어둔 반바지가 덜 말라 있었다. 일단은 마른 옷들만 챙겨 내려와 짐을 싸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샴푸랑 샘플들을 빨리 써서 오늘 샤워하고 나면 샴푸를 꼭 사야 했다. 산크리스토발 도착하면 바로 월마트를 가볼 생각이었어서 잘됐다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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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챙기고, 샤워를 하고 나니 11시였다. 사실 오늘 툴레 나무를 잠깐 보고 오려고 했는데 비가 많이는 아니더라도 계속 오고 어제 와하카 관광지의 자본주의 맛을 느껴 그 의욕도 사라진 참이다. 버스는 밤 10시 반이라서 한참 남았고, 시간을 때우고 르포르마에 스타벅스라도 가야 하나 싶었다.


리셉션으로 내려가서 체크아웃하고 1층에 있어도 되냐 하니 괜찮다고 허락을 받았다. 큰 배낭은 맡기고 주방에 앉아서 노트북으로 이것저것 할 일들을 했다. 일기도 쓰고 산크리스토발 숙소랑 스페인어 학원 정보도 알아보고.. 사실 하루짜리 일기를 쓰는데 거의 삼사십 분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시간은 아주 잘 갔다.


한참 쓰는 중에 내 윗침대를 쓰는 멋쟁이 할머니가 어디 잠시 나갔다 온 듯 들어오면서 스태프에게 커피 있냐고 물어봤다. 아침 식사 때 먹고 남은 커피가 한 주전자 정도 남아있는데 다 식은 거라고 얘기했더니 특유의 쿨하고 멋진 제스처로 상관없다고 따라서 테라스로 가셨다. 덕분에 옆에 있던 나도 커피 먹고 싶으면 먹으라고 해서 냉큼 커피를 따라 마셨다. 구글 후기에서 커피 리필이나 빵 추가가 안된다는 건 아마도 아침 식사가 끝나기 전에 커피나 빵이 떨어질까 봐 그런 거 같았다.


와이파이도 빠르고 커피도 있고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온도로) 스타벅스처럼 북적이지 않으니 당연히 더 좋았다. 덕분에 4시까지 쭉 시간이 잘 갔다. 시간을 보내다 보니 오전 타임 스태프들은 퇴근하고 오후 타임 스태프가 출근한 뒤였다.


IMG_2135.JPG 오후가 되어서야 바깥바람을 쐬러 나온 날

나도 슬슬 밥을 먹으러 갈 준비를 했다. 오늘은 아침을 숙소에서 때웠으니 든든하게 한식을 챙겨 먹고 떠날 참이었다. 가는 길에 이제 200페소 밖에 안 남은 현금을 충전하러 atm도 들려야 했다. 근데 싸다고 검색해 둔 atm 기계가 있는 은행이 4시까지만 영업하는 걸로 나와있었다. (아님) 그래서 대충 한식당 가는 길에 있는 ATM 몇 군데 찍고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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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엔 습도가 80프로는 되는 듯 습하고 공기가 후덥 했다. 그래도 비 온 뒤 맑아진 날씨에 공원을 지나가게 됐는데 공원에 사람들도 많고 예뻤다. 생각해 보면 와하카도 예쁜 도시였다. 그저 내가 감흥을 좀 잃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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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ATM은 영어가 없어서 패스했다(그러지 말걸) 두 번째 ATM은 걸어서 10분. 걸어갔더니 전자제품 매장 안에 있는 기기였다. 거기서 꽃보다 남자를 틀어주고 있어서 재밌었다.


그런데 여기도 역시 영어가 없었다. 번역기를 써서 여러 번 시도하던 중.. 어떤 현지인이 도와주기도 했는데 잘못 누르심; 그래서 또다시 하고 또 잘못 누르시려기에 내가 알아서 한다고 보내고 겨우 성공해서 뽑으려고 보니까 수수료가 115페소였다. 말도 안 됨.. 그렇게는 절대 못 내겠다 싶어서 아까 시도하지 않고 그냥 온 ATM으로 다시 10분을 걸어갔다. 근데 거기는 아예 계속 오류가 났다..


오늘도 역시 뜻대로 되지 않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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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덥고 골목골목 공사 중이고 짜증이 솟구쳐서 그냥 밥부터 먹기로 했다. 한식당 두루루까지 다시 돌아가는 길만 20분,, 뭔가 아무도 재촉하지 않는데 혼자 마음이 급해졌다. 와하카도 멕시코시티와 마찬가지로 센트로만 벗어나면 딱 인구수가 줄어드는 느낌이다. 한식당 근처에 갈수록 사람이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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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당을 찾고 들어가자 역시나 멕시칸들이 자리 안내를 해줬다. 근데 자리에 앉고 보니 옆에 정리 중이던 분이 한국인 사장님이셨다. 사장님이 "한국인이세요?" 이렇게 먼저 물어봐주셨다.


나는 제육을 시켰다. 처음에는 맵게 해달라고 했는데 사장님이 맵게 하면 추가금 붙는데 맞냐고 물어보셨다. 추가금의 문제라기보다 한국인 기준으로는 맵찔이인 나, 외국인 기준으론 더 맵게 해도 될 거 같은데 매운맛이 어느 정도 맵기냐고 물어보니 청양고추가 더 들어간다고 했다. 그냥 보통으로 해달라고 했다.


IMG_2157.JPG 제육볶음 165페소

제육볶음이 나왔고 역시나 멕시티 한식당처럼 고기의 씨알이 너무 작아서 슬펐지만 그래도 맛있었다. 가격을 싸게 하려다 보니 제대로 된 고기 조각 없이 조각조각난 고기로 단가를 맞출 수밖에 없어 보였다. 또 한국인 입맛에 맞춰 조금 가격을 올리면 현지인 장사가 안될 테니까. 그래도 사장님 솜씨가 기본적으로 있는지 양념 맛이랑 다 괜찮았다. 그래서 정말 밥 한 톨 안 남기고 다 먹었다.


계산을 하려는데 300페소부터만 카드 결제가 된단다. 수중에 200페소 지폐랑 동전 몇 개 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일단 200페소로 계산을 했다. 그리고 사장님한테 지금 뽑을 수 있는 ATM 중에 수수료 괜찮은 거 아시냐고 물어봤는데 사장님은 여기서 돈을 안 뽑아 써서 모르신단다. 그런데 ATM기계는 은행 닫아도 열려있을 거라고 해서 수수료가 저렴하다는 <Caja Popular Mexicana>로 얼른 가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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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ja Popular Mexicana>는 와하까에만 있는 협동조합인데 여기는 수수료가 저렴하다고 알려진 inbursa 보다 수수료가 저렴하다. 다행히 은행은 안 하지만 ATM 기계가 열려있었고 2500페소를 수수료 20페소 주고 뽑았다. 이걸로 멕시코를 다 버틸 수 있을까?


그래도 한식을 먹고 나니 배도 부르고 기분도 괜찮고 현금지급기도 찾아서 일도 잘 풀리는 느낌. 역시 한국인은 밥을 먹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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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오니 7시다.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나 8시 넘어서 나갈게 하고는 식당에 또 앉아 충전도 하고 버스에서 볼 웹툰도 다운로드하고 그랬다. 호스텔엔 오늘 새로 들어온 아저씨들, 청년들도 있어서 새로운 얼굴들이 많았다. 내가 거기에 자리 잡고 있으니 한 마디씩 나누게 되었다.


그러다가 내가 영어에 악센트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사투리 억양 때문일까?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잉글랜드 친구가 "아 그래? 너 악센트 때문에 미국 지방에서 온 줄 알았어" 이랬다. 과테말라 여행기를 들려준 아저씨랑도 한참 얘기를 나누고 이제는 떠날 시간.


택시 타는 건 그래도 돈 낭비인 거 같아서 숙소 스탭에게 버스를 타고 가는 건 안전하냐고 물어보니 걸어가는 건 위험하고 버스는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가방 챙겨서 버스 타러.. 역시나 버스 타는 곳이 센트로 옆옆 골목이었는데 바로 조용하고 가로등도 없어져서 무서웠다.


괜히 문 연 구멍가게 앞에서 얼쩡거리며 기다리던 중, 흑인 친구들도 많이 보이고 한 친구가 내 옆에서 서성 거리길래 무서워서 그럴 바엔 말을 걸자! 하고 버스 기다리냐고 물어보니까 맞단다. ADO(아데오) 버스 정류장 가냐니까 아마 갈 거라며 "내가 버스 오면 물어볼게!"라고 말했다.


근데 버스가 아무리 기다려도 안 왔다. 9시에 나왔는데 30분 동안 한대 지나갔다. 그마저도 안 멈춰줘서 못 탐.. 35분쯤에 한대가 또 왔는데 탄다고 손을 흔들어도 안 멈춰줬다. 그 버스가 쌩하고 지나가니까 옆에 있던 친구가 내가 물어볼게 하고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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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방 때문에 달리기는 힘들었고, 버스 기다리다가 늦을 거 같단 생각에 디디를 열었다. 7분 타는데 85페소 정도,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버스비 820페소를 날릴 수는 없으니까, 디디를 부르고 기다리는데 그 친구가 돌아왔다. 그 친구도 버스는 못 따라잡았는데 그 친구의 의견은 내 손짓이 너무 작아서 안보였을 거란다. 내가 이렇게 어두운 곳에서 타본 적이 없으니 시내에서 타듯 작게 흔들거렸는데 여기는 어두워서 거의 도로에 나가서 흔들여줘야 멈춰준단다. (그 친구는 통화를 하느라 뒤쪽에 빠져있었다.)


일단 고맙다고 하고 택시를 탄다고 했다. 마침 택시비가 그래도 아깝지 않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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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 타고 ado 터미널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과자 하나를 샀는데 계산을 한참 안 해주고 계속 포스기 정산을 하길래 기다리다 기다리다 "너에게 시간이 많이 필요하니?" 하니까 카드는 좀 걸리고 현금으로 하면 바로 된단다. 그걸 왜 말을 안 해주고 한참을 서있도록 하는 걸까..


나에게 와하카는 뭔가 멕시코 중에서도 답답한 느낌이다. 어제 콜렉티보 기사도 그렇고 이런 상황도 그렇고 뭐랄까.. 융통성이 없고 소통이 일방향인 답답한 느낌. 뭐 사람마다 안 맞는 도시가 있으니 나에게 와하카가 그런 도시이려니 했다. 그래서인지 떠나는 게 하나도 안 아쉬웠다. 아무것도 없는 익스미킬판 같은 곳도 짧게 지내는 동안 좋았고 추억 삼을 기억 하나쯤 가지고 가는데 와하카는 무엇으로 기억될지 의뭉스러웠다.


아무리 안 좋은 기억이 있는 도시도 하나의 미련이나 마음을 남기고 가기 마련인데.. 버스를 얼른 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가방이나 내려놓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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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퍼 갈아 신고 비치타월 (담요 대용) 꺼내고 하니 어느새 탑승 시간. 내가 예약할 때까지만 해도 자리가 여유있었는데 거의 만석이었다. 내 옆자리는 덩치 좋으신 멕시칸 아저씨, 근데도 AU버스를 탔을 때 옆자리 언니처럼 자리를 넘어오지는 않았다.


Occ는 버스 괜찮았다 자리도 넓고 화장실도 있고 (한 번은 갈 테니) 출발하자마자 모든 불 끄고 다 자도록 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면서 수면 가스까지 살포한 건지 뭔지 나도 기절하듯이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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