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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여사 Aug 01. 2023

매일 인덕션을 닦는다

닦기 변태의 일상

갈색 원목 상판에 반짝거리는 검은색 인덕션.

현관을 열고 들어와 고개를 돌리면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곳.

세라믹 재질이라 제대로 닦으면 바로 위 후드와 주변 창가의 화분까지 반사되어 보일 정도로 거울같이 반짝이는 나의 최애 스팟.


우리 집은 주방과 거실이 직사각형 공간에 함께 있고 거의 절반에 가까운 공간을 주방에 차지하고 있는 특이한 구조다. 식탁이 없이 커다란 ㄷ자의 한쪽을 bar처럼 식탁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뭐라도 물건이 올려져 있으면 후다닥 아래 서랍에 넣고 쓰레기는 홱 버려야 한다. 처음에는 귀찮고 불편했는데, 어느새 남편도 익숙해져서 잘 따라준다. 그렇게 정돈된 부엌을 보고 있으면 한 결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낀다. 이 정도면 닦기 변태에서 청소 변태로 진화 중인가.





평소보다 차가 덜 막혀 일찍 집에 도착한 어느 저녁.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더운데 뜨끈한 해장국으로 저녁을 먹으니 선풍기 앞에 앉아 있어도 슬슬 땀이 차오른다. 이대로 샤워하기보다 기왕 땀 흘린 김에 청소나 해보자 싶어 청소기를 들었다. 어차피 물걸레질도 할 거니 시간이 걸리는 빗자루보다 무선 청소기로 대강 먼지를 주워내고 물걸레를 들었다. 완충된 무선 걸레 청소기에는 작은 조명이 붙어 있는데, 걸레질을 하며 자세히 보니 아니나 다를까 바닥에 먼지 뭉치가 습기와 함께 붙어 있다. 이런 곳은 좀 더 힘주어 밀어야 한다. 옆에서 보던 남편은 주말에 청소 다 해놓고 왜 이렇게 청소를 열심히 하냐는 표정으로 앉아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열심히 바닥을 닦는다. 


내가 바닥 청소를 하는 동안 남편이 저녁 먹은 식탁을 싹 치워 놓았다. 개수대에 그릇을 모아서 애벌 설거지를 해두고 식탁 매트를 닦아 널어두고 음식물 쓰레기를 비워둔 주방. 그러나 그는 절대 인덕션을 닦지 않는다. 

어차피 해도 좋은 소리를 못 들으니 아예 제쳐두는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땀내가 쉰내로 진화한 몸뚱이를 이끌고 인덕션 앞에 선다. 최근에 조리를 거의 안했더니 냄비에서 흘러내린 국물과 주전자로 물 끓일 때 튄 물자국 정도가 전부다. 

후딱 해버리자.


-. 우선 행주를  빨아 물기를 짜고 인덕션 위 오염물을 닦아 낸다. 

아주 찌든 오염이 없기 때문에 거의 깨끗하게 닦인다. 

-. 이제 인덕션 전용 세제를 주욱 짜 넣고 행주 끝으로 넓게 인덕션 위에 펴 바른다. 세제가 인덕션에 들러붙어 살짝 마르는 동안 행주를 빨아둔다. 

-. 인덕션 전용 스크래퍼로 죽죽 세제를 긁어낸다. 전용 스크래퍼라 스크래치 없이 세제가 죽 밀려나간다. 건조되면서 오염물을 흡착한 세제를 한쪽으로 밀어 옮긴 후 휴지를 한 장 뜯어 한데 모아 버린다. 

-. 마지막으로 행주로 두어 번 인덕션 위 남은 세제를 닦아 낸다. 

-. 그리고 반짝이는 인덕션을 위한 제일 중요한 작업. 

   행주의 물기가 남아 있는 인덕션을 재빨리 마른 주방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 준다. 마치 거울에 윈덱스를 뿌리고 닦는 것처럼 조금만 문지르면 광이 살아난다. 

(인덕션에 비친 창문과 화분들. 이것은 인덕션인가 검은 거울인가)


굳이 장황하고 길게 써서 그렇지, 사실은 5분도 안 걸리는 작업이고, 가전제품 케어 서비스를 다니는 기사님에게 유료 케어 서비스 그만 받아도 되겠다고 칭찬받은 방법이다. 

이렇게 반짝이는 인덕션을 보며 뿌듯한 웃음을 짓고 이제 재빨리 샤워하러 달려간다. 

자기 전에 더러워진 행주를 과탄산소다 푼 물에 밤새 담갔다가 다음 날 깨끗이 헹궈 빨면 이것도 역시 내가 샤워한 듯 상쾌해지는, 나의 인덕션 닦기 루틴의 정말 마지막 최종 단계다. 





퇴근하고 하는 집안일은 어떤 일을 하느냐의 차이일 뿐 모든 워킹맘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일상이다. 

누군가는 음식을 할 테고 누군가는 청소나 빨래를 한다. 나의 선택은 밥보다는 청소인 것이지 내가 대단히 살림을 부지런히 하거나 좋아하는 건 아니다. 

날도 더운데 무리하면 안 되고, 무엇보다 나는 그 모든 것을 하기에는 게으르니까.


그래도 언젠가 살림의 여왕을 바라는 나는 (거의) 매일 5분 정도의 노력을 들여 인덕션을 닦는다. 

마치 그걸로 주방 살림을 완벽하게 하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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