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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여사 Jul 17. 2023

무선청소기 대신 빗자루

내 맘대로 슬로 라이프 시작

싸리 빗자루를 사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지방에 여행 가서 시장에 들르면 철물점이나 잡화점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어릴 적 시골집에도 늘 있던 싸리 빗자루. 온라인이나 집 근처 철물점에서 싼값에 흔하게 살 수 있는 싸리비는 이제 베트남산이나 중국산이 대부분이고 방바닥을 쓸기에는 많이 거칠고 조악했다. 그러다 어느 블로그에서 장인이 직접 손으로 만든 우리나라 전통 싸리비를 소개해주었는데 가격은 몇 만 원을 훌쩍 넘지만, 그 부드러움과 섬세함은 어느 청소도구도 따라오지 못한다며 엄지를 추켜세웠다. 당장 사고 싶었지만, 광고글이 아니어서 장인의 연락처도 알 수 없었고 당연히 인터넷 판매도 하지 않아 결국 살 수는 없었다. 그런데 아마도 그 당시의 나라면 싸리비를 사놓고도 귀찮고 힘들어서 제대로 쓰지 않고 방치해 뒀을게 뻔하니 오히려 다행이었던 것 같다.




요즘은 장마가 계속되니 방바닥도 끈적하게 느껴졌다. 청소기를 돌려도 습기에 들어붙은 먼지가 잘 떨어지지 않는 것 같아 물걸레 청소기까지 돌려 박박 닦아야 하는데, 습기 때문에 곧바로 선풍기를 돌려 말려야 하니 엄청 귀찮게 느껴졌지만 어쩔 수 없다.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 청소기도 돌렸다.


그러던 어느 날, 평일 외근을 나갔다 들어오는 길에 내가 너무나 애정하는 무인양품 매장에 들렸다. 딱히 살 게 없어도 지나가는 길에 매장이 보이면 꼭 들리게 되는 곳이다. 심플하고 품질 좋은 옷도 마음에 들지만, 이것저것 주방 아이템이나 청소용품 그리고 군것질거리도 좋아한다.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바로 몇 달 전부터 눈여겨보았던 청소도구 쪽으로 직진한다. 그리고 바로 빗자루 앞에 선다. PC 화면으로만 보다 실물을 보니, 역시나 크기가 조금 아쉽다. 게다가 브러시도 너무 뻣뻣한 것 같아 방바닥 먼지가 잘 쓸릴지 걱정스럽다. 브러시 털이 조금만 더 부드러웠으면 좋았을 텐데... 게다가 빗자루 길이가 짧아서 싸리비처럼 한꺼번에 넓은 곳을 쓸기엔 부족해 보였다. 어쩐다...

그러나, 이 빗자루의 최대 장점은 여러 가지 도구에 호환 가능한 막대가 있다는 것이다. 빗자루만 잡고 사용해도 되지만, 이 막대에 끼우면 서서 비질을 할 수가 있다. 게다가 브러시 손잡이 부분이 여러 각도로 휘어져서 소파 밑은 물론 천장 몰딩이나 벽까지 비질을 할 수가 있단다. 집에 있는 다른 청소도구(카펫 먼지 찍찍이)도 이 막대에 끼울 수 있어 욕실 바닥 머리카탁 주울 때 허리를 굽히지 않아도 된다.

청소 도구 섹션을 빙빙 돌며 고민하다 결국 막대, 빗자루, 쓰레받기를 사들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진출처 : 무인양품 홈페이지(광고 아닙니다)

















퇴근하자마자 식구들에게 마치 트로피르를 보여주듯 빗자루를 높이 들어 올려 보여주었다.

"이거 봐, 나 빗자루 샀어! 이제 힘 안 들이고 필요한 부분만 싹싹 비질할 거야!"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식구들 반응은 영... 저건 무엇... 응 엄마 좋겠네... 가 전부였다.

후딱 저녁밥을 먹고 빗자루를 들고 안방과 거실 복도를 쓸어봤다.

아니 이런!!

서서한 비질이 이렇게 상쾌할 수가!

맘에 들지 않았던 뻣뻣한 브러시는 부드러운 브러시보다 잘 떨어지지 않는 먼지까지 다 잡아내었고, 걸레받이 위에 뽀얗게 앉은 먼지는 물론 방바닥과 벽이 만나는 모서리 먼지도 다 쓸어주었다. 브러시 각도를 휘어 소파밑도 쓸 수 있었고,  브러시에 힘이 있으니 거실 러그에 사이사이 끼어 잘 떨어지지 않는 먼지들까지 박박 긁어주어 청소기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먼지를 긁어모았다.


"얘들이 이것 좀 봐, 청소기 소음도 없고 먼지도 안 날리는데 정말 멋지지 않아?"

"@@아빠~ 여기 천장 몰딩 먼지를 다 닦았네? 대박이지?"


나 혼자 청소하며 유난을 떨며 큰 소리로 말하고 다니는 동안 들은 말이라곤, "어~ 그래~ 좋네~ 잘됐다~"가 전부였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유쾌하게 청소를 마쳤다.






빗자루로 청소하면 느리다.

청소기로 휙휙 지나가면 될 것을 한 번 두 번 비질을 하며 구석구석을 살피게 된다. 살피다 먼지가 보이면 또 움직이게 되고 두 팔을 이용해 젓는 만큼 속도도 느리다. 그렇지만 확실히 깨끗하다.


빗자루로 청소하면 팔이 아프다.

기다란 빗자루는 무선청소기와 달리 한 팔로 움직일 수 없다. 두 팔을 이용해 잡고 그만큼 내 힘이 들어간다.

청소를 하고 나면 어깨 스트레칭을 해줘야 한다.


빗자루로 청소하면 전기 소비를 줄일 수 있다.

세탁기나 식기세척기 등은 앱으로 전기 소모량을 알 수 있지만, 무선 청소기가 얼마큼의 전력을 사용하는지는 모른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면 그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빗자루 브러시가 조금만 더 길었으면 좋겠다.

빗자루를 만들 때 회사에서 최적의 사이즈를 찾기 위해 많이 고민했겠지만, 그래도 조금 아쉽다.


쓰레받기도 서서 담을 수 있게 고안되면 좋겠다.

청소 마지막에 결국 쪼그려 앉아야 되는 게 아쉽다. 서서 끝내면 좋을 것 같다.





살림에 관한 글을 더 써보기로 하면서, 내가 지향하는 살림은 무언지 잠깐 고민해 봤다.

(사실은 매거진을 등록할 때 키워드를 넣어야 해서...)

요즘 제일 많이들 하는 미니멀라이프라고 적었다가 우리 집을 떠올리면 아직은 미니멀 근처에도 가지 못한 것 같은데, 빗자루 이야기를 생각하다 슬로 라이프가 더 적당할 것 같았다. 결과물을 내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느리더라도 지속 가능하고 가능한 에너지를 덜 사용할 것.

주방에서 한 몸처럼 쓰던 물티슈를 치워버리고 행주를 사용하는 것도 슬로 라이프라고 우겨본다.

물티슈 한 장 뽑아 식탁이나 인덕션을 닦고 휴지통에 버리면 그만이지만, 행주를 물에 적셔 닦아 내고 다시 빨아 빳빳이 말린다. 더러움이 심하면 과탄산이다 베이킹소다에 주방세제 조금 풀어 밤새 담갔다가 아침에 빨아서 널면 깨끗하다. 다 시간이 걸리고 불편하지만 습관이 되면 지속 가능한 방법들이다.

('주방마감'이라는 이름으로 매일 하는 루틴은 절대 아니다. 늘 그렇듯이 평소와 다르게 무리해서는 오래 지속할 수 없다.)


 그렇게나 소원하던 빗자루를 구입했지만, 그렇다고 청소기를 안 쓰는 건 아니다. 남편은 여전히 청소기를 사용하고 나 역시 급할 땐 청소기로 휘리릭 끝내버릴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아예 안 쓰는 날도 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내 맘대로 슬로 라이프는 이렇게 소박하게 시작해 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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