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라이프 나만큼만 해도 성공이다
친환경 라이프를 실천하려고 삼베 수세미를 만든 건 아니었다.
난 주변에 뜨개질 잘하는 사람으로 나름 유명했고,
동네 플리마켓에 물품 기부가 필요하다는데,
기왕이면 친환경이고 손으로 직접 만든 거면 잘 팔릴리지 않을까?라는 누군가의 제안에
삼베실로 수세미를 만들기로 하면서 나에게 쉽고 쓰임새 좋은 모양으로 만들어달라는 청탁이 들어온 것이다.
핀터레스트에는 나뭇잎 무늬부터 아주 간단한 원형까지 도안이 넘쳐났는데, 적당히 도톰하고 적당히 무늬가 있어 설거지하기 좋을 것 같은 와플무늬로 정하고 후다닥 몇 개 만들었다. 그중 제일 큰 사이즈 한 개는 내가 쓰려고 남겨둔 게 내가 삼베 수세미를 쓰게 된 계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삼베 수세미야말로 친환경 라이프에 최적화된 물건이다.
일단, 세제가 필요 없다.
오히려 세제를 묻히면 삼베 실이 상한다고 한다.
사용한 그릇을 물에 살짝 담가두거나 먹은 즉시 삼베실로 쓱 닦으면 금방 반짝반짝한다.
기름이 묻은 그릇은 전기주전자에 물을 끓여 적당히 찬물과 섞어 닦으면 오케이.
고기 기름이 많은 그릇이나 냄비도 이렇게 닦으면 쉽고 빠르게 닦을 수 있다.
삼베 수세미와 최고의 조합은 스탠 프라이팬이었다.
코팅 프라이팬은 남편과 아이들이 주로 사용하고 난 스탠 프라이팬을 주로 사용하는데, 고기를 굽던 볶음을 하던 프라이팬 바닥에 눌어붙은 음식은 프라이팬에 물을 받아 살짝 불려 닦으면 쓱 닦이고, 기름이 과하게 남으면 베이킹 소다를 조금 뿌렸다가 닦으면 그야말로 최고다.
닦기 변태가 이렇게 쉽고 빠르게 설거지를 하고 반짝이는 프라이팬을 보는 건 정말 짜릿한 순간이었다.
집에 식기 세척기가 있지만, 식사를 하고 바로 이렇게 닦으면서 식세기 사용 횟수도 조금 줄어든 게 사실이다.
이때부터 삼베 수세미 전도사가 되어 주변에 삼베 수세미를 사용하라고 간증하게 되었는데, 주변에선 다들 '그럼 네가 하나 만들어줘~~'라는 반응이라 별로 성공하진 못했다.
스탠 프라이팬도 알고 보면 사용하기 매우 편리한데, 여기까지 오기가 힘들어 스탠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예열하는 과정도 불편하고, 이 과정에 익숙해져도 식재료 별로 프라이팬 온도나 식재료의 온도 등을 감안하지 않으면 금세 눌어붙기 쉽다.
(스탠 팬을 사용하려면 미리 식재료를 꺼내어 실온에 맞춰두는 게 좋다. 특히, 계란!
여기서 스탠의 성질이 어떻고 하는 얘긴 관두자. 어차피 나도 잘 몰라서 설명하기 힘드니.)
한 동안 삼베 수세미만 열심히 썼더니, 결국 조금씩 해지기 시작했다. 걸이용 고리가 끊어지고 모서리가 너덜 해지더니, 구멍이 생기고 찢어질 지경이 되었다. 남편이 삼베 수세미 더 안 만드냐고 물어볼 정도가 되었는데...
자칭 선택적 살림의 여왕인 나는 결국 삼베 수세미를 만들지 않았다.
일단 실이 없었고, 새로 실을 구입하려니 삼베 실이 비싸다는 핑계로 뭉개고 있다. (실제로 다른 실에 비해 삼베실은 매우 비싼 편이다.) 그리고 삼베 수세미 역할의 절반 정도는 하는 아이템을 찾아버렸다. 베이킹이나 볶음 요리할 때 스는 '실리콘 주걱(실리콘 스파출러)'.
음식물이 남아있는 그릇에 물을 흘려보내며 이 주걱으로 쓱 밀어주면 음식물이 깨끗하게 씻어내려 간다.
이렇게 애벌 설거지를 하고 나서 그릇이 좀 쌓이면 그때 식기세척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주방세제를 사용하지 않는 차선책이지만 나름 성능이 괜찮았다. 삼베 수세미를 아쉬워하던 남편도 이거 물건이라며 좋아했다.
친환경 라이프를 지향하나 현실에서는 때에 따라 대충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있다.
환경을 지키는 살림의 여왕이 되고 싶은 헛된 생각만큼 매우 게으른 나로서는 무리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지키며 사는 게 최선이다. 수납 바구니를 사는 대신 종이봉투를 접어서 쓰거나 상자를 잘라서 이용하기도 하고, 포장음식을 찾으러 갈 때 집에 있는 반찬통을 가져가며, 샴푸바 밑에 생수 뚜껑을 박아 물러지지 않고 오래도록 사용하기도 한다. 어디 더 없나...
이런 작은 행동들은 어디 내세우기도 민망한 수준이지만 가끔은 이런 내가 뿌듯하기도 한 걸 보면 친환경 라이프에 대한 내 목표 수준이 엄청 낮은 걸지도 모른다.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릴 수 있을 정도의 모양새는 아니지만,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아마 운동은 하고 싶지만 땀 내면서 하고 싶지는 않은 맘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좋아하는 만큼만 아니,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