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 5일 체험기
아직 온전히 내 생각만을 적어나가는 것이 버겁게 느껴진다. 책이나 영화, 여행 등 소재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내가 느끼고 생각한 바를 있는 그대로 적어 내려 가는 것이 참 힘들다. 왜 힘든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더니 결국은 내가 하려는 말이 가지고 있는 힘의 크기다. 내가 느낀 바, 생각한 바 그 자체로 힘을 가지고 생명력을 가져야 하는데, 나는 자신이 없다. 내가 느낀 것과 내가 생각한 것은 나만의 것인데, 그것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충분한 설득력을 가질까? 하는 질문에 나는 자신이 없다. 그래서 도움을 받는다. 내가 느낀 감정과 했던 생각을 이미 표현해 두었던 어떤 것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이다.
한 발 더 깊이 들어가 보면 내가 느끼고, 생각한 바에 대해 자신감이 없는 이유는 내 생각이 다를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보다는 "틀렸을 때"에 대한 불안감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나는 정답에 최대한 가까운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그런데 내 생각과 느낌이 정답에 가까운지 여부를 나 스스로 판단하는 것은 상당히 리스크가 큰 일이다. 때문에 리스크를 낮추는 데 책, 영화, 여행 등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번엔 여행이다.
내 생애 두 번째 해외여행이었고, 고작 4박 5일 다녀온 여행이었다. 100시간 동안 느낀 일본에 대해서 적어보려고 한다. 머릿속으로는 같은 장소도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고, 다른 감상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쓰려는 글은 정답에 가까워야 한다고, 틀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내가 참으로 아쉽지만 별 수 없다. 안고 간다.
따뜻한 곳에 가고 싶었다. 제주도보다 남쪽이면 더 따뜻하겠지 싶어 후쿠오카를 선택했다. 기온은 한반도 보다 높았지만, 바람이 많이 불었고, 체감온도는 낮아졌다. 한국에서의 옷차림과 비교해 한치도 얇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추위를 온몸으로 체감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한국에서는 자가용을 타면 뭐든지 해결이 가능했다. 인천공항까지 차를 몰고 갈 수 있었고, 여행기간 동안 3만 원이면 주차를 할 수 있었다. 차를 잠깐 세우면 커피도 사고, 편의점도 다녀올 수 있었다. 그런 여러 자가용의 편의성 덕분에 차에서 내려 차가운 공기를 맞는 순간은 최소한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일본에서는 달랐다. 대중교통이 잘되어 있지만 행선지에 따라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야 했고, 짧은 거리는 걸어서 이동을 해야 했다. 차를 렌트했지만 주정차가 금지되어 있었고, 일본사람들은 그 규칙을 철칙같이 지켰다. 잠깐의 정차도 어려운 주로 환경과 운전자들의 분위기 속에서 자동차는 스폿과 스폿을 조금 더 직선에 가깝게 연결해 주는 단순한 이동수단에 불과했다.
일본은 작은 소음이 가득 찬 곳이었다. 4박 5일 여행하는 동안 자동차, 버스 클락션 소리를 단 한번 들었다. 사람들이 큰소리치거나 공공장소에서 욕지거리를 하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고, 불미스러운 상황이나 얼굴을 붉힐만한 상황도 일절 없었다. 여행 가기 전에 블로그나 SNS를 통해서 검색해 보았던 유명한 관광지, 맛집 근처에서는 간혹 한국사람들의 목소리가 후쿠오카의 웅성거림에 더해질 뿐, 후쿠오카의 삶은 복작복작했지만 유별나지 않았다.
그 웅성거림을 깨고 나에게 다가왔던 존재는 한국사람들이었다. 캐리어를 싸게 맡길 수 있는 곳에서 200엔이 부족했다. 캐리어 3개 중 1개밖에 보관을 못 맡기고 뒤를 돌아서는 내게 한국 여행객 둘이 달려왔다.
"아까 200엔이 부족하다고 하셨죠?"
200엔. 2000원 크지 않은 액수지만 4박 5일 동안 나에게 먼저 건넨 유일한 손길이었다. 일본사람들은 식당에 들어가면 한국어를 먼저 한다거나 영어로 먼저 묻지 않는다. 일단 일본어를 내뱉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커뮤니케이션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되면 짧게나마 영어가 가능한 직원을 부르거나, 번역기를 꺼낸다. 그들의 행동이 무례하거나 불친절한 것은 아니었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나는 도움을 받고 있다거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는 여행이 이어질수록 접어두었다. 나와 가족이 스스로 헤쳐나가야 할 과제일 뿐이지,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그래서였을까. 먼저 다가와 되돌려줄 대안도 없는 내게 200엔을 빌려준 한국 여행객이 불편하면서도 고마웠다. 오랜만에 받는 조건 없는 호의에 나는 삐그덕 댔다.
"어.. 어떻게 돌려드리죠?"
200엔을 돌려받을 생각하지 않고 건네었을 여행객들에게 내뱉은 나의 말은 인사치레나 형식적인 것은 아니었다. 정말 어떻게든 돌려주어야 할 것 같은 거리감에 무의식적으로 나와버린 말이었다.
"즐거운 여행 하시면 돼요."
200엔을 건네며, 상대방의 여행이 조금 더 행복하기를 바라는 저 마음. 한국 여행객들에게 200엔을 건네어받은 나는 2개의 사물함을 더 사용할 수 있었다. 사물함은 최대 3시간까지 무료로 이용이 가능했고, 그 이후부터는 추가 요금을 지불해야 했다. 그러나 3시간 이상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3시간이 되기 전에 열쇠를 한번 열고 다시 잠그는 것이다. 나는 3시간이 지나기 전에 열쇠 3개를 들고 사물함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사물함이 있는 곳에는 캐리어를 차마 맡기지 못한 한국 관광객들이 서 있었다. 내가 나타나 가장 큰 사물함으로 향하자 그들은 자신들의 캐리어를 보관할 생각에 들뜬 것처럼 보였다. 나는 보기 좋게 그들의 대화를 못들 은척하고 옷을 추가로 넣기 위해 잠시 들른 것처럼 연기했다. 사물함 문을 열고, 겉옷을 넣은 다음 문을 잠갔다. 뒤통수가 따가웠다. 나는 문을 잠그자마자 곧바로 돌지 못하고, 잠시 뜸을 들였다. 잠시 후, 대화를 나누던 한국 여행객이 자리를 떴다.
나와 일본인, 사물함과 한국여행객. 그랬다.
2026. 02. 06 365개의 글 중 86번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