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에 시계를 지속적으로 걸치기 시작한 것은 군대에서였다. 큰 의미는 없었다. 군대에서는 시간을 확인해야만 했다. 정해진 시간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면 혼이 났다. 입대하기 전, 길거리에서 싸게 구입한 손목시계는 훈련을 받는 도중에 흠집이 나고 망가졌다. 훈련을 모두 마치고 첫 휴가 나왔을 때, G-shock 디지털시계를 구입했다. 십만 원이 넘는 디지털시계가 꼭 필요해서 구입한 것은 아니었다. 몇만 원짜리 디지털시계로도 충분했지만, 이왕이면 디지털시계 중에서도 좋은 시계를 차고 싶은 마음이었다.
군대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매일 같은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무채색 옷을 즐겨 입는다. 튀는 옷을 찾지 않는 나지만 그렇다고 매일 같은 군복을 입고 생활하는 것은 참기 힘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군복을 리폼하거나 사회에서 사 온 옷을 다양한 방식으로 레이어드 해서 입었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굳이, 군대 생활을 하면서 생필품에 사비를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군대에서 보급해 주는 것만으로도 생활하는 데에는 전혀 무리가 없었다. 그런 고민의 중간지점에서 타협으로 삼은 것이 시계였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시계를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기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군복무 기간이 끝날 때쯤, 우연히 들렀던 춘천의 상상마당에 투박한 손목시계가 있었다. 기성제품들과는 다른 멋이 있어 보였다. 군인 한 달 월급을 모두 들여 시계를 구입하고, 군 전역 후 직장생활을 하는 기간 동안 즐겨 착용했다. 두 번째 시계였다. 결혼을 하면서 세 번째 시계를 구입했고, 친구의 선물, 아내의 선물까지 시계가 점점 늘었다. 유튜브나 연예인이 착용하는 엄청난 고가의 시계는 아니었지만 모두 그것들만의 멋이 있었고, 그날 착장에 맞춰 어떤 시계를 걸칠까 고민하는 즐거움은 아침 출근 시간을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하면서 아내와 나에게 애플워치를 선물했다. 애플워치는 전천후였다. 밴드를 쉽게 교체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복장에 모두 맞춰 찰 수 있었다. 애플워치를 산 이후엔 애플워치를 착용하는 날이 점점 늘어갔다. 상대적으로 다른 시계들은 거치대 위에 걸쳐있는 날이 점점 늘어만 갔다. 애플워치를 3년쯤 찼을까. 워터파크에 갔던 날, 나는 애플워치를 차고 물속에 들어갔다. 첫 두 세기간은 문제가 없었지만 네 시간 다섯 시간이 지나자 애플워치는 먹통이 되었다. 그렇게 애플워치와 이별을 했다. 애플워치가 없어진 자리를 거치되어 있던 여러 시계들이 채워갔다.
그러다 작년 내 생일에 새로운 시계를 구입했다. 작동원리가 다른 시계들과는 달랐던 점이 내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기존에 알고 있던 시계의 작동원리는 크게 두 가지였다. 건전지로 구동되는 쿼츠 방식, 시계를 착용하고 움직일 때 발생하는 운동에너지를 이용해 구동되는 오토매틱 방식.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시계는 둘과는 달리 태엽을 돌려 소위 "밥"을 줘야 하는 방식이었다. 메카니컬이라고 하는 구동방식이다. 한번 "밥"을 모두 주면 80시간 동안 침이 움직이고, 중간중간에 계속해서 밥을 줄 수 있었다.
2년을 기다려 돈을 모아 내 생일맞이해 내게 선물을 했다. 시계에 수시로 "밥"을 주는 일이 매우 번거롭다는 선배들의 후기와 다르게 나에게는 "밥"을 주는 일이 즐겁게 느껴졌다. 특히 용두를 잡고 천천히 돌릴 때, 손끝을 통해서 전달되는 메인스프링이 감기는 감각은 나와 시계가 밀당을 하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처음 태엽을 감을 때는 느슨해서 쉽게 착착 감기던 메인스프링이 감으면 감을수록 뻑뻑해지면서 시계와 나 사이의 긴장감이 높아진다. 너무 많이 감아 메인스프링이 탄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노심초사하며 조심스럽게 손끝의 감각을 유지하며 용두를 돌리는 일이 내게 새로운 즐거움이다.
내가 구입한 메카니컬 시계는 베트남 전쟁 때 헤밀턴에서 미군들에게 보급했던 시계에서 모티브를 삼아 제작한 시계라고 한다. 전장에서 시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모르지만, 군인들에게 손목시계가 꼭 필요한 물품임은 안다. 오늘은 무엇에 대해서 써볼까 고민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을 읽었다. 취업 준비를 하던 취준생이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편지를 보냈단다. 면접장에서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글을 원고지 4매에 걸쳐서 작성해 보라고. 취준생은 하루키에게 당신이라면 자기소개하는 글을 쓸 수 있느냐, 쓴다면 어떻게 쓰겠느냐고 질문했고, 이에 하루키는 이렇게 답한다.
"다만 자기 자신에 관해 쓰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예를 들어 굴튀김에 관해 원고지 4매 이내로 쓰는 일은 가능하겠죠."
나도 궁금해졌다. 난 무엇에 대해서 원고지 4매 이내로 쓸 수 있을까. 그렇게 도전해 보았다. 내가 사랑하는 시계에 대한 글쓰기.
2026. 01. 23 365개의 글 중 85번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