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Wheel

정든 일상의 골짜기를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by 돌이

"정든 일상의 골짜기를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의 마지막 문장이다. <수레바퀴 아레서>는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한스라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수제라는 소리를 듣던 아이는 각 지역의 엘리트들이 모이는 학교로 진학한다. 그곳에서 일련의 사건을 겪은 아이는 치료를 위해 작은 마을로 다시 돌아온다. 방황의 시기를 겪고 있는 아이에게 아버지는 기계공이 될 것을 제안한다. 첫 출근을 앞둔 아이, 주인공 한스는 이런 생각을 한다.


"그토록 고생하며 애썼던 공부와 그동안 흘린 땀, 수많은 기쁨, 대단했던 자만심과 공명심 그리고 희망에 부푼 몽상! 그 모든 것이 구름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결국 그 모든 것이 다른 친구들보다 뒤늦게, 사람들의 조소를 받으며 가장 서투른 견습공이 되어 일터로 가기 위함이었던가."


한스는 출근을 한다. 글만 읽던 그에게 견습공이 되어서 기계를 만지는 일은 두려운 일일 것이다. 손에 물집이 잡히고, 손이 덜덜 떨린다. 온몸에 기름이 덕지덕지 묻어나고 공장의 주인은 사납다. 그 주 일요일, 한스는 직장 동료들과 함께 다른 마을의 술집을 찾는다. 술에 취한 한스는 주검이 되어 돌아온다. 그의 장례를 치른 뒤 한스의 아빠, 요제프는 "정든 일상의 골짜기를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수레바퀴는 원이다. 원은 시작과 끝이 없고, 계속해서 순환한다. 우리의 일상도 이와 같다. 하루의 시작과 끝이 있을까? 아침에 눈을 뜨면 시작이고, 밤에 눈을 감으면 끝일까? 그렇지 않다. 밤에 눈을 감아야 눈을 뜬 뒤에 생활이 가능하다. 눈을 뜬 다음부터 진행되는 생활에서 에너지를 충분히 사용해야 밤에 눈이 잘 감아진다. 수면을 충전으로 본다면 끝이 아니고, 끝이 없다면 시작도 없다. 우리의 하루는 계속해서 돌고 돈다. 일주일도, 한 달도, 일 년도, 일생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일상은 모습만 조금 달리할 뿐 계속해서 돌고 돈다. 수레바퀴처럼.


수레바퀴는 수레에 달린 바퀴이다. 우리는 수레에 짐을 싣는다. 수레에 무엇을 얼마만큼 싣는지가 수레바퀴가 얼마나 잘 굴러갈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한스는 엘리트들이 모이는 학교로 진학한 뒤에 버거움을 느낀다. 지독한 두통을 겪고 있던 그에게 하일러라는 친구가 등장한다. 한스는 공부에 흥미를 점점 잃어가다, 교장실에 불려 간다.


"어쨌든 흥미를 가지고 공부하다가 무엇 때문에 갑자기 열기가 식어버렸는지 궁금하군. 혹시 몸이 불편한 데가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닙니다."

"매일 숙제가 너무 낳아서 그런가?"

"아닙니다. 결고 크래서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정말 모르겠군. 하여튼 문제가 있기는 할 텐데. 앞으로 노력하겠다고 약속해 주겠나?"

한스는 교장이 내미는 손에 자기의 손을 얹었다. 교장은 엄숙하면서도 온화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럼 됐어. 피곤하지 않도록 해야지. 그러지 않으면 수레바퀴에 깔리게 될 테니까."


결국 한스는 수레바퀴에 깔려, 그의 일상을 놓쳐버린다.


둘째가 태어나고 아내와 함께 육아휴직을 했었다. 첫째와 16개월이라는 간격을 두고 태어난 둘째를 잘 돌보겠다는 마음과 자신감으로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저 육아휴직 신청하려고요."

"얼마나?"

"1년이요."

"1년? 그러지 말고 6개월 먼저 해보고 6개월 뒤에 연장해 보지?"


속으로 콧웃음을 쳤다. 나는 내가 너무나도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좋은 남편이고, 좋은 아빠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둘째가 태어나도 달라질 건 없어 보였다. 오히려 내가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들을 전담으로 돌본다면 더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둘째가 태어난 지 석 달쯤 지났을 때부터, 지독한 두통이 시작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기 전까지는 말짱했던 머리가, 눈을 뜨자마자부터 지끈거렸다. 처음에는 진통제를 먹지 않고 버텨보았지만, 눈을 감기 전까지 두통이 계속되었다. 진통제 한 알, 진통제 두 알. 진통제를 세 알로 늘리기 전에 육아휴직을 신청했던 6개월이 되었다. 나는 서둘러 복직을 했다.


시간이 꽤 지난 지금까지도 당시를 떠올린다.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일상이었다. 시작과 끝이 없는 하루였다. 2~3시간마다 반복되는 식사시간, 같은 간격으로 반복되는 수면시간, 같은 간격으로 반복되는 기저귀갈이. 그보다 나를 더 고통스럽게 했던 것은 자존심이나마 지켜보자는 고집에 힘들다는 말조차 입 밖으로 내지 못했던 나였다. 온몸과 표정으로 힘듦을, 지쳤음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말만으로는 도저히 내뱉을 수 없었다. 나는 잘해왔고, 잘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시절 내가 스스로 수레에 짊어진 짐들이 그것들이었다.


오늘 아침 둘째가 눈을 뜨자마자 나에게 달려왔다. 어젯밤, 자기를 일찍 하원시켜 달라는 아들. 아빠는 집에서 쉬니까 그렇게 할 수 있지 않냐는 아들에게, 나는 어렵다고 했다. 눈을 뜨자마자 어리광을 부린다.

"누나랑 버스 타고, 일찍 데리러 갈게."

아들을 아내와 함께 보내두고, 딸과 함께 학교로 갔다. 지난주에도 걸었던 길을, 오늘 또다시 걷고 있는 내 모습을 보았다. 내일도, 다음 주도, 그다음 주도 계속 아들과 아내를 보내고, 딸을 데려다주겠지만 다행히도 머리는 아프지 않다.


2026.01.20 365개의 글 중 84번째 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한 해,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