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Farewell

떠나보내는 일.

by 돌이


설명절을 맞아서 어머니가 계신 납골당에 다녀왔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10번째 맞는 설이지만 별다를 건 없었다. 납골당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뭐가 그렇게 급해서 일찍 가셨나. 10년만 지나도 이렇게 달라질 세상, 조금 더 보고 즐기다가지."


나는 안정적인 직장과 아내 덕분에 전에 누린 적 없는 과분한 삶을 살고 있고, 그 과분한 삶을 어머니께서도 함께 누리셨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담긴 말이었다.


"어머니께서 왜 진작 병원에 가시지 않았을까?"


아내가 내게 물었다. 엄마는 불같은 사람이었다. 의리가 중요한 사람이었고, 부당한 대우를 보면 참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엄마는 언행일치가 전혀 되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의리보다 자기 자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고,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안 되지만 자신은 다른 사람에게 부당한 대우를 마구 저지르는 사람처럼 보였다. 오랜 시간 나에게 엄마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군대에서 여느 때처럼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목소리가 평소와 다르게 파르르 떨렸다.


"내일 ㅇㅇ이모랑 대학병원 가보려고."

"왜? 어디 아파? 한 달 전에 휴가 나갔을 때까지도 아무 말 없었잖아."

"사실 그때도 몸이 안 좋았는데, 말 안 했어. 하혈이 심해."

"하혈? 생리 그런 거 아니고?"

"그런 거 아니야."


큰 병이라는 직감이 왔다. 불과 한 달 전에 휴가를 다녀왔지만, 중대장에게 보고하고 다시 한번 휴가를 허락받았다. 엄마는 ㅇㅇ이모가 아닌 나와 함께 병원에 갔다. 엄마를 초진한 의사는 얼굴과 마스크에 크고 작은 핏자국이 묻은 채로 내게 말했다.


"자궁경부암 3기로 보입니다."


그리고 100일 뒤에 돌아가셨다. 추석은 쇠고 갔으면 좋겠다는 어른들의 말을 들었는지, 추석이 지나자마자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아침 일찍 부대로 연락이 왔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고. 장례 첫날은 정신없이 흘렀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둘째 날, 염을 하러 내려가서 삐쩍 마른 어머니를 본 순간부터 내리 두 시간을 울었다. 그리고 울지 않았다.


나는 왜 울지 않을까. 어머니를 떠올릴 때, 왜 눈물이 나지 않을까. 슬프지 않은 걸까. 어머니가 그립지 않을 걸까. 10년 동안 때때로 생각했다. 다른 헌신적인 어머니들보다 어머니는 자신의 삶을 많이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어머니께서 즐겼는지, 어땠는지는 이제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여전히 내게 어머니는 자식들보다 자신의 삶이 더 먼저였던 사람으로 박제되어 있다. 어머니께서 살아계실 때는 어머니의 그런 모습이 참 미웠는데, 지금은 감사하다. 자식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더 좋은 음식, 더 좋은 것, 손자들, 자식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한 것이 아쉽고 안타깝다. 하지만 어머니 입장에서 (내가 생각하는) 생각해 보면 살아 있는 동안에 많은 것은 누렸기에 꽤 괜찮은 삶이었다고 여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 나는 마음이 놓인다. 어머니께서 후회로만 점철된 삶을 살다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게 아닌 것만 같아서.


그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감정과 나를 분리시키기 시작한 것이. 2026년의 1월과 2월엔 많은 이별이 있었다. 2024년부터 2025년까지 2년 동안 맡았던 아이들을 졸업시키기도 했고, 첫째와 둘째가 다닌 유치원과는 둘째가 졸업하면서 완전히 이별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2년 동안 데리고 있었던 적은 없었다. 학생수도 적어 관계도 자연스레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 졸업 영상을 만들면서 함께한 2년을 계속 생각했다. 울컥한 순간도 있었지만 졸업식 날, 나는 시종 웃었다. 밝은 얼굴로 아이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큰 소리로 부모님들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연신 거듭했다. 두 아이가 다닌 어린이집은 엄마 아빠가 처음이었던 우리 부부에게 오랜 시간 아이들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든든한 곳이었다. 코로나가 한창이었던 2020년 8월, 3~4군데 어린이집을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찾았던 그곳에서 원장 선생님의 한마디가 나를 확 잡아끌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 참 어렵죠?"


2024년부터 2025년까지 여러 사진을 보면 나는 그대로, 아이들은 확 커져 있었다. 둘째 아이 졸업식 날 마주한 원장선생님과 나는 그대로였고, 2020년 8월 기저귀를 차고 있던 첫째와 둘째는 이제 초등학생이다. 한결같은 모습으로 각자의 자리를 지킨 원장 선생님과 내 모습에 순간 눈물이 울컥 차올랐다. 그러나 곧바로 감정을 멀리하고 눈물을 꾹 삼켰다.


어른이 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2026.02.19 365개의 글 중 87번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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