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
불안이다. 나를 움직이는 힘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성장에 대한 욕구, 소유에 대한 갈망,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더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망 등.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합친 것보다 내가 망가져버릴까 봐 나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만드는 불안이 더 크다.
나는 그 점이 조금 아쉽다. 만약 나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동기가 타인에게 피해를 줄까 봐, 타인에게 나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힐까 봐 전전긍긍하는 불안이 아닌, 나를 성장시키고 싶은 마음이었다면 어땠을까. 나의 강력한 동기가 나의 외부가 아니라 내 내부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불안해서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아닌, 순수한 개인적 성취를 위해 성장을 하고 싶은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종종 한다.
그런 상상을 할 때는 보통 내 내적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었을 때다. 아무래도 불안에 의해 움직이는 일은 지속가능한 모델이 아니다. 에너지를 다른 방식으로 얻고, 그렇게 얻은 에너지를 불안이 소진시키며 나를 움직이는 구조다. 때문에 불안이 소진시킬 에너지가 지속적으로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기계는 멈춘다. 이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전에는 한 달에 한 번 약속을 무단으로 취소하며, 잠수를 탔다. 지금은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한 공급책을 다양화하고, 불안이 너무 많은 에너지를 한꺼번에 소진하지 않도록 그 수준을 관리하며, 잠수를 타지 않기 위해 나를 관리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속적이고 강도가 높은 스트레스에 노출이 되면 나는 소진되고, 내가 소진되면 그동안 멀쩡한 상태에서 원만하게 유지해 오던 많은 것들로부터 삐걱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관계에서 불편한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집단에서 용도 폐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단절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있다. 내 내적 에너지의 총량이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가장 헐거운 부분부터 끊어낸다. 인력이 약하게 작용하는 먼 관계부터 끊어나가기 시작하고, 에너지가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가까운 관계까지 위협한다. 그다음은 가족, 가족에게 행패를 부리고 나면 그 끝은 결국 나 자신으로 귀결된다.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운동을 하는 가장 큰 동력 또한 불안이다. 세상이 너무나 빨리 변한다. 새로운 것을 잘 모른다는 사실은 나에겐, 나라는 존재의 존재 이유가 하나씩 소거되는 것과 같다. 다른 사람들이 이미 다 알고 있는 상식을 모른다는 것은, 내가 소속되어 있는 집단과 내가 이질적이라는 의미와 같다. 무엇보다 이 세상에 끊임없이 공부하는 사람을 배척하고, 싫어하는 사람과 집단은 극히 드물다. 나에게 책을 읽는 것은 여러 가지 불안을 해소하는 아주 좋은 수단이다.
글을 쓰는 일은 나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보험이다. 내가 50대에도 지금 직장에 남아 있을 수 있을까? 혹시나 남아 있을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면, 나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당장은 부족한 글 솜씨일지라도 계속해서 쓰고, 내 보이면 조금씩 달라지지 않을까?, 천천히 달라져서 내가 직장을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그때 미련 없이 직장을 그만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글쓰기는 나에게 또 다른 직업이자, 대안이다.
운동을 하는 일 또한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한 일이다. 내 몸이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다. 세상엔 훌륭한 의사가 많고, 대부분 문제없이 치료 행위를 한다. 그러나 병이 크면, 의사들도 공부를 하거나 다른 과 의사들과 함께 회의를 한다. 그 과정에서 환자는 무력하다. 자신의 신체지만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인 것이다. 나는 나 스스로를 그런 불안한 상태에 자발적으로 집어넣고 싶지 않다.
불안. 나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 나는 여전히 불안에 종속되어 살아가고 있다.
2026.02.19 365개의 글 중 88번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