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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 글쓰기, 매일

매일 하나의 주제로 글 쓰는 삶을 산다는 것

by 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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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를 종이에 써 내려갔던 것은 꽤 되었다. 얼떨결에 군대에 입대한 뒤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독서를 시작하고 인상 깊은 문장을 써 내려갔던 것이 시작이었다. 좋았던 문장, 기억하고 싶은 문장을 하나씩 적다 보니 그 문장이 왜 좋았는지, 기억하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지를 어느 순간부터 한 문장씩 추가로 적고 있었다. 그 시절에는 생전 멀리하던 책을 읽고, 펜을 들고 메모를 하는 내 모습이 정말 기특했다. 군복 가슴팍 주머니에 메모지를 넣어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꺼내서 읽고 또 읽었다. 손바닥만 한 메모장에 글자를 쓰면서 쓰는 즐거움을 처음으로 알아버렸다.


전역한 뒤에도 읽는 것과 쓰는 것은 습관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꾸준히 읽고 쓰다 보니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나의 글이 좋다고 말해주는 친구를 만난 것이다. 얼마 뒤 책을 여러 권 출판한 스승님도 만나게 되었다. 어떻게 쓴 문장이 좋은 문장인지, 문단은 어때야 하는지 글을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주도적으로 쓰고 싶은 파편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파편일 뿐이었다. 그것들을 모아 하나의 완성품을 만들어 내는 일은 내게 버거웠다. 일 년 넘는 시간을 끌었지만 결과물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완성품은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배운 것들이 있다.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내고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방법이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하나의 작품, 하나의 글은 초점을 맞춘 단 하나의 무언가가 있다. 그 단 하나의 무언가가 정해지면 그 단 하나의 것을 돋보이게 해 줄 주변의 것들이 연쇄적으로 정해진다. 그리고 단 하나의 그것과 주변의 것들이 맺고 있는 관계를 설명한다. 그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사건들을 풀어내는 것,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글쓰기다.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니 책을 읽으면서도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글감이 탁탁 걸린다. 카페 뒷자리에 앉은 커플이 나누는 이야기, 산책하다 마주하는 멋진 풍경, 직장에서 동료들과 부딪히며 겪는 갈등 등등. 하지만 모든 것을 이야기로 만들 실력이 안된다. 그것들을 풍성한 이야기로 구성할 시간도 상상력도 문학적 소양도 모두 부족하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손 놓고 있자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불안한 마음이 결국 나를 움직이게 도와주었다.


내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탁탁 걸렸던 글감에 집중해서 매일 글을 써보자. 마치 사진을 찍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나는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있는 카페는 3층 건물이다. 나는 3층 건물 중 2층에 있다. 2층은 100평 남짓된다. 테이블이 어림잡아 30개는 되어 보인다. 저녁 10시, 마감시간이 가까워진 지금 내 오른쪽 뒤 테이블에 손님 한 팀이 있고, 왼쪽 테이블에도 한 팀이 있다. 2층 정 가운데에는 기둥이 하나 있는데 기둥 바로 앞에는 2미터가 넘는 크리스마스트리가 있고, 트리 앞에는 눈사람 모형이 2개 있다. 이 카페에는 녹색 식물이 있는데, 1미터가 조금 안 되는 화분에 식물의 크기는 보통 1미터 50센티미터 내외이다.


나는 사진을 찍었다. 내 자리 바로 앞에 있는 유리창을 말이다. 유리창에는 흰색 화분에 담긴 커다란 식물이 그대로 비쳐 있다. 사진에는 내 노트북 귀퉁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손님들도 담겨 있다. 비어있는 흰 테이블과 드문드문 보이는 키 높은 식물들, 주황색을 띠는 조명이 있다. 수많은 피사체 중에 난 유리창에 비친 나무에 초점을 맞추기로 결정했고, 내 노트북과 테이블, 다른 손님은 주변에 배치했다. 그리고 이제 유리창에 비친 나무와 주변에 있는 것들의 관계를 설정하고 사건을 만들어 갈 예정이다.


이렇게 나의 매일을 적어볼까 한다. 하루에 하나씩 집중하며. 부담이 없다. 그래서 시작할 수 있다.


-2025년 1월 17일 365개의 글 중 1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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