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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잼, Apple jam

질량 보존의 법칙

by 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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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 때 선물하려고 사뒀던 비싼 사과다. 5개월을 냉장고에 잘 보관해 뒀지만 쭈글쭈글, 푸석푸석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나는 사과잼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멍이 들거나 상태가 안 좋은 사과를 준비한다. 껍질을 벗긴다. 과육 부분을 잘게 자른다. 큼지막한 냄비에 자른 사과 조각들을 넣는다. 사과 양의 반절정도 되는 양의 설탕을 들이붓는다. 휘휘 잘 저어주며 졸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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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인터넷에서는 1시간이면 완성할 거라고 했는데, 두 시간 정도 걸렸다. 흰 설탕은 금세 녹았지만 사과가 졸여지지 않았다. 뚜껑을 덮어두고 졸이기를 한참, 1시간이 넘어가니 과육 부분이 물렁물렁해지고 설탕이 끈적 거리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달달해지면서 맛있어지는, 마트에서 만날 수 있는 그런 사과잼을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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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한 사과잼을 유리병에 담아두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나는 하원하는 아이들에게 자랑을 했다.

"아빠가 사과잼을 만들었어."

둘째가 특히 좋아했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두 아이가 빵에 사과잼을 발라달라고 했다. 저녁을 양껏 먹었음에도 아이들은 식빵 두 개를 먹어치웠다. 뿌듯했다. 오늘 하루가 헛되진 않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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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이 최초로 만들어진 나라는 인도다. 목적은 과일을 당에 절여 오래 저장하기 위함이었다. 개인적으로 신기한 점은 당도가 높으면 미생물이 살 수 없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수분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반대로 미생물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단다. 옛날에는 설탕이 귀했다고 하니, 지금처럼 빵에 발라먹는 일은 사치였다고 한다. 돈 많고 힘 있는 사람들이나 과일을 설탕에 절여 먹었겠지.


나는 인생이 고통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한 때, 윤회를 끊어내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 삶의 목적이었을 때도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며칠 전 읽은 채사장의 신간 <지대넓얕:무한> 편에서 윤회를 끊어내는 방법을 읽었던 것도 같다. 인생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법도 있었다.


누군가에게 늙는다는 것은 고통일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다행인 점은 내가 피부가 많이 안 좋다. 특히, 얼굴 피부가 안 좋은데, 학창 시절에 여드름을 비위생적인 손으로 만지는 바람에 흉이 많이 졌다. 모공도 상당히 넓다. 당시에는 여드름도, 여드름 흔적도, 넓은 모공도 모두 콤플렉스였는데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피부에 난 점이나, 주근깨, 주름들을 여드름 흉터가 상당히 잘 가려준다. 내 피부는 나이를 먹는 게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그러다 얼마 전 평소보다 거울을 가까이에서 볼 일이 있었다. 유심히 보니 확실히 탄력이 없었다. 예전보다 점도 많아졌고, 기미나 잡티도 많았다. 물론 여드름 흉터에 가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았다.


'나이를 먹는 건 좋은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새로운 경험이 늘어간다는 건 좋은 일이다.'

사과조각들이 점점 자기 색을 잃어가고 있었다. 설탕에 조려지며 그나마 남아있던 탄력을 잃고 물컹물컹해지는 사과들. 잼으로 만들지 않았다면 그냥 버려졌을 사과들이다. 그나마 설탕을 만나 잼이라도 될 수 있었다. 추석에 산 사과가 쭈글쭈글 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인간이 늙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늙어가는 모든 사람이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경험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늙어가면 늙어갈수록 익숙한 것, 해 왔던 것, 살아왔던 곳에 머무른다.


대한민국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지금, 내가 나이를 먹었다고 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생물학적으로 보면 이십 대 초, 중반을 기점으로 난 분명 나이를 먹고 있다. 다행인 건 내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이 너무도 많고, 죽을 때까지 절대로 모두 다 경험해보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어제 쓴 글에서 나에게 좋은 것을 먹여야겠다는 부분이 게을러지려는 나를 붙들었다. 사과 7개 껍질을 벗기게 만들었고, 조각으로 썰게 만들었다. 오늘 쓰는 이 글도, 내일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대된다.


2025.01.23 365개의 글 중에서 7번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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