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건 사이의 틈
아이유의 두 번째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 둘>을 참 좋아한다. 당시의 이슈로 앨범에는 실리지 못했던 미발매곡인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도 참 좋다. 특히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는>는 유튜브에 검색하면 뮤직비디오를 볼 수 있는데, 아이유의 유명한 노래 <밤편지>의 뮤직비디오와 연결된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엔 여자 주인공의 오른쪽 머리에 남자 주인공이 꽃 핀을 달아주는 장면이 나온다. 여자 주인공은 남자 주인공의 갑작스러운 선물에, 설레는 다가섬에, 당혹스러운 맞닿음에 눈동자가 흔들린다.
7년의 시간 간격을 두고 발매되는 세 번째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 셋>이 곧 발매된다. <꽃갈피 셋>에 수록된 노래 <Never ending story>의 뮤직비디오 티저영상엔 남자 주인공의 오른쪽 귀에 여자 주인공이 노란색 생화를 꽂아주는 장면이 나온다. 한 여름의 생생한 푸르름을 뒤로한 두 연인은 그 푸르름을 더해주는 여름의 비를 맞는다. 여자 주인공은 생화에 묻은 물기를 조심스럽게 털어내고 남자에게 다가간다. 남자의 오른쪽 머릿결을 살짝 쓸어 넘기고 넘겨진 머리카락이 있던 자리에 노란 생화를 남긴다. 그리고 두 사람은 시원하게 웃는다.
<꽃갈피 둘>과 <꽃갈피 셋> 두 앨범 사이에 아이유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난 수요일, 일찍 퇴근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시간은 오후 네시 반이었고, 심장이 마구 쿵쾅거렸다. 이유도 없이 계속해서 치솟는 심박수가 나는 불쾌했다. 맞닥뜨린 일은 일상적으로 해오던 일이었다. 안간힘을 내서 하려면 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 일을 하지 않았다. 네시 반을 넘기고,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자 심박수는 다시 조금씩 안정되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내가 많이 지쳐있다는 것을.
심박수가 원인불상으로 자주 치솟았던 때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이다. 그 시기엔 어떤 시험이 던지간에 시험을 보기 전이면 어김없이 심장이 요란스럽고도 불규칙적으로 뛰어댔다. 눈앞에 놓인 책과 책 속을 빼곡히 채운 문단과 문장은 단 하나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만이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대학에 간 뒤에는 책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열심히 했기 때문이라고 그동안 생각해 왔는데, 아니었다. 그때 책을 보면서 느꼈던 그 불안감이 다시 떠오를까 봐 두려워 피했던 것이다.
뭐든지 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목요일에 떠날 여행을 착오 없이 진행하고 싶었고, 집에서도 역할을 잘 수행하고 싶었다. 달리기도 꾸준히 하고, 글도 계속 쓰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 하나 삐걱거리지 않는 것이 없었고, 육체적인 체력도 정신적인 체력도 점점 바닥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자해를 하고 있었다. 열심히 해야 한다, 더 잘해야 한다, 최선을 다하고 있느냐는 말들로 나를 채찍질하고 있었다.
나는 왜 나를 괴롭힐까. 토요일, 일요일 푹 자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기도 했다. 쉬어주니 몸도, 정신도 조금씩 회복했다.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생기자 다시 질문을 떠올렸다. 나는 왜 나를 괴롭힐까.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다 생각이 났다. 그 시작점에 "엄마"가 있다. 내가 나를 여전히 괴롭히는 이유는 아직 그녀와 완전히 화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녀와 완전히 화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글을 쓰는 것이다.
<꽃갈피 둘>과 <꽃갈피 셋> 사이에 아이유는 많이 달라졌다. 그녀는 과거의 그녀를 묶고 있었던 어떤 것과 완전히 화해를 한 것 같다. 그리고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된 것 같다.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된 것 같다.
2025.05.25 365개의 글 중 60번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