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의 와인 속에 우주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오후,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부쩍 친구들과의 통화가 잦은 요즘, 통화를 하다 보면 앓는 소리를 하고 있는 나를 인지하고는 깜짝깜짝 놀란다. 이미 “힘들다”는 말은 뱉은 뒤였고, 그 관성에 따라 불평불만, 우울하다는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고 만다. 누구나 종종 우울하거나 지치는 시기를 맞는다. 나는 최근에 그 부침이 잦아졌다. 깊은 산속에 있는 옹달샘의 표면처럼 잔잔하기를 바라는 나인데, 요즘따라 그 샘에 예상치 못한 조약돌이 자주 던져진다.
가끔 유튜브 알고리즘이 정말 기막힐 때가 있다. 마치 내 정신상태까지 읽고 있는 듯한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그제부터 내 시선을 잡아채는 썸네일이 있다.
“대충 해도 괜찮다. 그냥 해라.”
“성공하는 필승 전략, 생각하지 말고 행동으로 옮겨라.”
기운이 없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유튜브가 건네는 말처럼 느껴졌다. 동시에 나에게 질문도 했다. ‘대충이라도 일단 하면 될까? 행동으로 옮기면 될까?’ 일단 노트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들기고, 운동복을 입고 현관문을 열면 될까? 그런데, 노트북 앞에 앉아지질 않고, 운동복을 입지 못하는 나를 굳이 끌어다 세우는 게 맞는 걸까.
리처드 파인만의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에서 매력적인 단어를 만났다.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는 리처드 파인만이라는 미국의 저명한 물리학자가 신입 대학생들에게 했던 강의 중 알짜배기 강의 6개를 선별해 편집한 책이다. 그는 2강에서 ‘기초 물리학’의 모든 원리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연구하고 있는 가설의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전술을 세 가지 제시한다. 파인만이 제시하는 첫 번째 전술과 두 번째 전술은 나에게 과학자적인 답변으로 들렸다. 그러나 세 번째 전술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아 보였다.
“세 번째 방법은... 가장 막강한 위력을 갖고 있다. 바로 ‘근사적인 방법’이다. ... 자연을 탐구할 때에도 우리는 그 복잡한 과정들을 일일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바로 이런 ‘대략적인 이해’로부터 실마리를 풀어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
‘대략적인 이해’라니. 기초 물리학을 탐구하는 데 있어서 근사적인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 가장 막강하다는 말을 어떻게 당대 최고의 물리학 교수가 할 수 있지?
내가 정확히 파악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파인만 교수는 분명한 의도를 갖고 있다. 파인만 교수가 강의를 했던 1960년대에 물리학의 인기가 전에 비해 사그라들고 있었다. 파인만은 학생들이 교수에 의해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수업이 아닌, 학생이 흥미를 느끼면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틀을 만들어주고 싶어 했다. 흥미에 의한 자발적인 학습을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책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를 나는 친절하게 느꼈다. 1강 움직이는 원자, 2강 기초 물리학, 3강 물리학과 다른 과학과의 관계는 현대 과학에 대해 ‘대략적인 이해’를 돕기 위한 강의였다. 물리학을 이렇게 ‘근사적인 방법’으로도 읽을 수도 있구나.
최근 한 달 내 삶은 철저하게 근사적이지 않았다. 아침에 일찍 기상하는 날이면 나가서 달렸다. 일주일에 50km를 달리려면 주 4회, 하루에 10km 이상을 달려야 한다. 달리기를 마치고 들어오면 아이들과 아내를 깨우고 출근 준비를 한다. 다른 자녀를 둔 가정과 마찬가지로 아침 시간은 정신이 없다. 내 몸 하나도 챙기기 어려운 사람이 두 아이와 아내까지 챙기려니 마음은 조급하고, 언성은 높아진다. 출근길도 항상 빡빡하다. 클락션 소리가 귓가를 맴돌고, 시간은 항상 부족하다. 출근하면, 쌓여있는 업무, 퇴근하면 빨래와 식사, 설거지, 그 외에도 잡다하게 쌓여있는 일거리들. 모두 마치고 아이들을 재우려고 침대에 누우면 떠오르는 숙제, 글쓰기.
매일 달린 것도 아니고, 매일 글을 쓴 것도 아닌데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무언가를 할 때는 몸이 힘들어서 지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는 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지쳤다. 의도적으로 조금씩 멀리했다. 몸과 마음이 모두 하고 싶을 때까지 기다렸다. 회복은 더뎠다. 직장과 가정은 내가 취사선택 할 수 있는 공간이 좁았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시간은 내 하루에 몇 시간 되지 않았다. 그 몇 시간이라도 달리기나 글쓰기와 거리를 두니 심신이 조금씩 회복되었다.
잘하고 싶은 마음, 꾸준히 하고 싶은 마음,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마음들이 가득했다. 옴짝달싹 못하게 딱 들어맞는 테셀레이션처럼, 내 심신엔 여유 공간이 하나도 없었다. 우울함의 악순환에 빠져있을 때, 나는 그 여유를 예상치도 못한 물리학 이야기에서 찾았다.
“물리학 공부할 때도 ‘근사적인 방법’으로 접근하라는 데, 뭐 어때”
2025.05.29 365개의 글 중 62번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