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또 다른 이름 열정
마음이 항상 불안하다. 뒤에서 쫓아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나 혼자 환각을 일으켜 쫓아오는 누군가를 항상 세워둔다. 그렇다고 전력질주 해 환각의 존재로부터 멀리 벗어나는 것도 아니다. 항상 딱 한 뼘 거리만큼 앞서서 달릴 뿐이다. 환각의 존재가 손을 뻗으면 닿을 듯 말듯한 거리만큼을 유지한 채로.
2025년 1월, 매일 하나의 단어로 글을 써서 2026년 1월까지 365개의 글을 쓰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은 나다. 나는 3월이 되고 나서 그 약속을 지키기가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직장 생활과 가정생활을 병행하며 내가 원하는 수준의 글을 매일 올린다는 것은 나를 잘 모르고 설정한 목표였다. 나는 내 실력과 타협했다. 이틀에 한 번 꼴로, 최소한 3일에 한 개씩은 써보자라며. 그러나 그마저도 버거웠다. 수면부족에 시달리며, 여러 정신적인 불안정 상태를 통과하며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다.
딱히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5월 30일에 마지막 글을 올리고, 한 달을 쉬었다. 한 달 동안 글을 올리지 않는 동안 여러 생각이 순간순간 나를 엄습했다. 영원히 도태되어 버릴 것만 같은 불안부터, 글 쓰기 실력(이랄 것도 없지만)이 후퇴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 365개의 글을 영영 써내지 못한 사람으로 남아버릴 것만 같은 망상이 내 머리를 수시로 두드렸다.
그러나 그런 불안과 걱정, 망상이 나를 노트북 앞에 앉히지는 못했다. 그런 불안이 나를 덮치면 덮칠수록 오기가 생겼다.
“이런 불안감 때문에 다시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아. 내가 쓰고 싶을 때, 써야겠다는 마음이 일어났을 때, 그때 노트북 앞에 앉을 거야.”
곧장 다음 질문이 따라온다. ‘만약,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 써야겠다는 마음이 영영 들지 않으면?’ 그러면 어쩌지?. 다시 불안이 의지를 짓누른다. 다행히도 그 불안을 껴안고 노트북 앞에 다시 앉게 되었다.
불안이 의지를 짓누를 때마다, 불안에 이끌려 노트북 앞에 앉고 싶은 충동이 들 때마다 나를 붙잡아 준 것은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사실 반복되는 일상은 글을 쓸 때에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글로 쓰고 싶은 주제나, 소재를 떠올리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상에서 물리적으로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나에겐 일상과 일상 사이에 불현듯 방문하는 틈 사이에 집중력을 발휘할 만큼의 주의력이 없다.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켠 뒤에도 글을 쓰거나 책을 읽기 위해 집중하려면 상당한 예열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글을 쓸 시간을 만드는 것은 잠을 줄이는 것과 같다.
‘직장생활이나 가정일 둘 중에 하나만 안 하더라도 글을 더 잘 쓸 수 있을 텐데.’
그런데, 지겹도록 반복되는 그 일상이 다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만들었다. 일상에서 글쓰기만 빼냈더니 휴식시간이 생겼다. 직장일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었고, 가정일에도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잠을 편하게 잤고, 달리기에도 욕심을 낼 수 있었다.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계속해나가다 보니 어느 순간, 자신이 생겼다.
‘그래, 나 잘할 수 있는 사람이야. 조금 쉬니까, 조금 덜어내니까, 일도, 가정일도, 달리기에도 더 집중할 수 있잖아. 더 집중하니까 잘하잖아.’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다시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처음 매일, 집중, 글쓰기를 시작할 때처럼 의지가 충만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생각했다.
‘나 다시 글을 쓸 수 있겠다.’
곧장 글을 쓰지는 못했다. 여전히 뭔가를 쓴다는 게, 부담되고, 자신 없고, 무의미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조금 더 쉬었다. 멍하니 있다 보면 여러 단어가 뇌리를 스치며 글감을 던져줬고, 구상하고 있는 단편소설의 한 장면을 그려내기도 했다. 그렇게 흘러가는 생각들을 움켜잡아 종이 위에 옮겼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냥 머릿속으로 구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불안을 이겨낼 수 있을까. 극복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처럼 나에겐 불안이라는 감정도 그러하다. 나에게 불안은 없어져야 할, 이겨내야 하는, 극복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동행해야 하는 존재다. 나는 불안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불안감으로 나는 성장하지 못한다. 불안감은 내가 글을 쓰게 만든다거나, 달리기를 하게 만들지 못한다. 불안감을 넘어서는 즐거움만이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다.
불안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Anxiety는 영어사전에 3개의 뜻이 나오는데, 첫 번째 뜻은 ‘불안’이고, 세 번째 뜻은 ‘열정’이다. 불안과 열정이 한 단어에 붙어있는 뜻이라니. 불안하다는 것은 열정적으로 이루고 싶은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까. 가능하다면, 불안을 열정으로 치환하고, 그 열정을 즐거움이라는 동력으로 추동하고 싶다.
2025.06.28 365개의 글 중 63번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