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주 숲에서 보내는 편지

나는 가수다(내 사랑 큰오빠)

by 동백이 좋아

떠나야 할 당신, 마음 괴롭더라도

가야만 할 당신, 미련 남기지 말고

맺지 못할 사랑인 줄을, 알면서도 사랑한 것을

싸늘한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에 젖어 젖어

다시는 못 올 머나먼 길을, 떠나야 할 당신

-배호, '당신'

오빠는 이 노래를 정말 잘 불렀다. 목포에서 열리는 모든 노래자랑들에 나가 1등을 하고, 상품으로 살림살이들을 타왔다. 나는 오빠가 타온 작은 냉장고를, 광주에서 자취할 때 4년 내내 잘 사용했다.

오빠는 정말 노래를 잘했다. 목청이 좋았고, 감성이 풍부해 감정 표현이 기가 막혔다. 외모도 출중해서, 젊은 날 오빠는 '나는 가수다'였다.

오빠는 늘 노래를 불렀다. 사람들은 모두 오빠의 노래를 좋아했다. 제삿날에도 오빠는 노래를 불렀다. 기뻐도 슬퍼도 노래를 불렀다. 외로워도 슬퍼도 노래를 불렀다.

아까웠다. 친구들만 듣기에는, 우리 가족들만 듣기에는, 너무나 아까웠다. 오빠가 장남이 아니었다면, 운명이 바뀌었을까. '무거운 책임감을 벗고,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훨훨 자유롭게 살 수 있었다면, 가정 형편이 조금만 나았다면, ' 우리 형제들은 수없는'만약에'를 하며, 오빠가 재능을 펴지 못한 것을 늘 가슴 아파했다.

큰오빠는, 장남의 무게에 여린 속살들을 감추고, 묵묵히 살지만 누구보다 정이 넘치고 인정스럽다. 내가 큰 병으로 힘들어할 때 달여먹으라면서 무슨 이파리를 잔뜩 보내왔다. 꾹꾹 눌러쓴 오빠의 주소 글씨에서 동생에 대한 그 마음이 느껴져 나는 눈물이 났다.

서울 둘째 오빠는, 광주에 사는 큰오빠를 서울로 모셔와서, 서울 구경도 시켜드리며, 형님께 감사를 표한다. '형제는 용감했다'처럼, 둘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무서운 아버지 밑에서 함께 자라며, 형제 둘만의 재미있고 아픈 추억도 많은 것 같다. 큰오빠는 서울로 올 때는 낙지를 꼭 사 온다. 목포 세 발 낙지를 도마에 놓고 직접 탕탕 조사서, 참기름과 함께 준다. 거기에 소고기 육회 같은 얇게 한 입 크기로 썬, 생고기까지 곁들인다. 큰오빠는 미식가여서 맛난 것을 잘 안다. 세상에서 제일 맛난 낙지 탕탕이다. 조카들과 형제들은 행복한 마음으로 감사하게 잘 먹는다.

어느 날 큰오빠 집을 갔다가 못난이 사과들을 다용도 실에서 봤다. 아버지처럼, 둘째 오빠처럼, 큰오빠도 그렇게 아끼고 살다, 형제를 만나면 그저 즐거워서, 맛나고 좋은 것을 내놓았던 것 같다.

한라산 둘레길, 6코스 시험림길


"오빠 어디예요?"

"응, 오빠 모임에서 거제도 왔다."

오빠는 오늘도 술 한 잔을 하고 노래를 했을 것이다, 인기를 독차지했을 것이고, 재능이 아깝다고 모두 여전히 안타까워하며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만약에' 다음 생이라는 것이 있다면, '나는 가수다'에 나오는 유명 가수로 살기를 바라본다. 좋아하는 노래만 평생 하며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본다.

자기 뜻대로 산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다들 세상에 떠밀려 살지만, 나이가 들어보니, 이리저리 산들 한 세상이고 그것이 인생이라며, 아쉬움도 바람도 없이 그렇게 된다.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소설이 있단다. '조르바'는 세상의 관습이나 도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산 인물인 것 같다.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를 보며, '조르바'를 보며, 우리는 때로 나만의 자유로운 삶을 꿈꾸기도 한다.

우리는 늙어 이제 모두 자유다. 자기에게 주어진 인생의 숙제들을 마쳤고, 가정을 돌보고 자식을 키우며, 하루하루 살아냈으니 이제 자유다. 큰오빠는 가수의 길을 포기하고 평범하게 살았지만, 그 삶이 유명 가수가 된 것보다 못하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운명에 순응한 삶도 아름답다. 책임과 의무를 충실히 해낸 삶도 아름답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살았고, 그 삶을 묵묵히 살아냈기에, 이젠 모두 아름답고 자유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다. 그의 묘비명은 참으로 유명하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이다.

우리 모두 그렇다. 젊은 날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들을 충실히 해내며, 굽이굽이 꼬불꼬불한 길들을 견디고 참으며 살아왔는데, 이제 더 이상 두려울 것이 무엇이며, 더 원하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나이 듦이 좋은 이유이기도 하겠다.

자유니까. 제멋대로 사는 것이 아닌, 인생 숙제를 마친 나이 든 이 만이 느낄 수 있는 자유니까. 오빠도 오늘 거제도에서 자유로울 것이다. 장남답게 살았으니까.

이제 그저, 한 인간으로, '나는 자유다'로 사시기를. 그럴 자격이 충분하며, 우리 형제들은 늘, 항상, 진심으로 응원한다고.

감사와 존경을 보내며 이 글을 큰오빠께 바칩니다.

제주의 숲에 가보자. 오늘도, 새들과 노루처럼 숲을 누비며 자유롭게 걸어보자. 원하는 것도 두려울 것도 없는 우리는 자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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