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오빠의 첫 직장은 간장 공장이었다. 군대 가기 전 목포의 간장공장에서 일을 해서, 작은 언니가 결혼할 때 장롱을 사 드렸다고 한다.
군대에 다녀와서는 ㅇㅇ약품에 들어가서 일했다. 그때부터는 나의 학비를 대고, 부모님을 부양했다. 나는 광주에서 학교에 다니다 엄마를 보러 목포에 왔다. 갈 때가 되면, 엄마는 큰오빠한테 전화를 한다.
"아야, 영이 돈 줘서 보내야 할 건디."라고 하면, 전화 건너편에선 늘 알았다고 했을 것이다. 그렇게 당연한 듯 돈을 들고 광주로 올라갔다. 오랫동안 나는 엄마가 돈을 주었다고 착각한 듯 살았지만, 그때도 알았던 듯하다. 엄마가 돈을 달라는 것도, 동생의 학비를 내놓는 오빠도 모두 힘들다는 것을.
내가 졸업을 하고 여동생도 취직을 해서, 학비 댈 일은 없어졌지만, 부모님은 늘 편찮으셨다. 부모님을 부양하고, 집안을 대표해서 경조사를 다녔다. 6남매가 결혼을 했고, 부모님의 환갑이며, 아버지의 칠순까지, 나중에는 조카들의 결혼까지, 경조사는 끊임이 없었고, 우리 집에 와준 사람들 만큼, 다른 이의 경조사를 챙기는 일은 끝이 없었다.
무엇보다 부모님의 장례를 총괄하는 것도 큰오빠였다. 나는 오빠가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장례식장을 마련하고, 장지를 마련하고, 조문객을 맞아야 하는 등 해야 할 일은 끝이 없었다. 미리 상조회를 가입해 놓은 것도 큰오빠였고, 하다못해 홍어를 공수해오는 등의 장례식장 음식까지도 신경 써야 했다. 결정은 모두 큰오빠에게로 몰리고, 그렇게 하고도 좋은 소리 못 듣는 경우도 허다했다.
부모님 모두를 고향 진도에 모시고, 묘소를 돌보는 일도 오빠 몫이었다. 산소를 빙둘러 예쁜 나무를 심어 가꾸고, 멧돼지 출몰로 훼손된 무덤을 걱정하고 보수하는 일도 그의 일이었다. 우리 집안 대표로, '박 씨' 시향에 참석해서, 음식을 장만하고 조상님들께 제를 지내는 것도 오빠 몫이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제사를 쭉 지내다, 이제는 시향 때 합동 제사로 올렸다. 우리 형제들은 모두 대찬성을 했다. 부모님의 제사를 간소하게 모시는 것도 우리는 모두 대찬성을 했다. 오빠의 노고를 조금이라도 덜 수 있으면 얼마나 다행이냐며.
오빠 집에 가보면, 올케와 오빠는 제사의 달인이 되어 있다. 병풍을 치고, 제상을 펴고, 제기를 닦아 준비한 음식을 올리는 등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착착 진행이 되었다. 참석 못 한 형제들을 위해 사진을 찍어 보내는 일도 오빠 일이다.
'수고한다','감사하다',는 몇 마디 말을 어찌 감히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너무 미안하고 감사해서, 전화하기 마저 망설여지는 경우도 많았고, 제사 참석이, 오히려 오빠랑 올케 언니의 수고로움이 될까 저어한 적도 많았다.
오빠는 술을 마신다. 울지도 않고 수다를 떨지도 않는다. 오빠는 외롭다. 노래를 부른다.
장남은 만들어지는 것일까. 오빠는 어떤 말을 들으며 자랐을까. 누나와 남동생과 여동생을 둔 오빠는 어떤 성장과정이었을까.
'넌 장남이야, 네가 성공해야지, 네가 이제 우리 집 얼굴이니 똑바로 살아야지, 부모님께는 효도하고 형제간에는 우애하고 잘 돌보기도 해야지, 제사도 잘 모시고, 조상님께도 잘해야 집안이 편안하지.'
나는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이런 얘기를, 시골 동네에서 집 밖만 나가도 듣고 자랐을까. 장남은 만들어진 것일까.
심리학자들은 출생 순서에 따른 성격 형성을 연구하기도 한다고 한다. 첫째 아이의 성격 특성은, '막중한 책임감, 관습 순응, 보수적, 권위적, 압박감, 통제적'같은 면이 있으며, 외로움(고독감)을 많이 느낀다고 한다.
큰오빠는 늘 혼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물어볼 형도 없이, 모든 결정들을 내려야 하고, 거기에 따르는 책임감까지 짊어져야 했으니 말이다. 가난한 집의 장남은, 부모님을 부양까지 해야 하는 경제적 책임감까지 져야 하니, 지금까지 버티고 살고 있는 오빠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내 친구들 얘기 들어 보면, 말썽 피우는 동생들도 많다더라. 나는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냐. 동생들도, 누나들도 알아서 잘 살아 주는 것만도 고맙지."라고 하기도 하는데, 참말로 대단하고 생각한다.
장남은 무엇으로 태어나는가. 첫째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책임이 주어지며, 그것을 받아들이고 역할까지 충실하게 해 내야 함은, 그저 운명인 것인가.
존경을 보낼 뿐이다.
형제들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중간에 낀 아들이나 딸들은, 매사 세상살이에서 불공평하다고 느끼며, 반항적인 면이 많다고 한다. 또 중재자 역할은 잘하나, 조금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것을 힘들어한다고 한다. 나를 보면 그런 면이 있나? 믿거나 말거나이다.
막내는 창의적이며 여유가 있는 반면, 의존적이고 결정 장애가 있을 수도 있단다. 아마도 스스로 결정한 경험이 부족해서 일 듯하다.
첫째는 모든 것을 본인이 통제하고,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지시적이고 감정 표현에 서툴러 소통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결혼은, 장남과 막내의 만남은 괜찮으나, 장남과 장녀의 커플은 결혼 생활이 힘들 수도 있다고 한다. 통제와 통제의 만남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해결책은, 늘 그렇듯 인정하고 내버려 두기이며, 잘하는 것을 강화하고 북돋아 주는 방법이 좋다고 한다.
당연히 많은 개인차도 있을 것이므로, 나와 다른 이를 이해하는데 참고하는 정도로 받아들였으면 좋을 듯하다.
큰오빠의 삶을 보면, 우리 시대의 장남으로 태어나지 않은 걸 행운으로 여겨야 하나 싶다.
항상 감사하고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늘 잘 따르고, 오빠한테 잘 하겠습니다.
날이 더워지고 있다. 숲을 걸어도 이젠 덮다. 초록은 진해졌고, 하늘에 구름이 더욱 많아지고 있다. 모든 분들 더위에 평안하시기를. 그리고 우리 큰오빠, 이 땅의 장남들! 더욱 평안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