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어릴 때부터 둘째 오빠를 '착실 과장'이라 불렀다. 공부도 착실하게 하고, 돈이 들어와도 착실하게 모았다.
'착실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차분하고 성실하다'이다. 비슷한 말로는, '건실하다, 속 차다, 돈실하다(인정이 많고 착실하다), 온후 독실하다(성질이 온화하고 착실하다), 실농가(착실한 농가), 진지하다, 견실하다, 신실하다, 실쌈스럽다, 황소걸음(느리지만 착실하게 무슨 일을 하는 비유적 표현)', 등이 있겠다.
반대말로는, '허랑 하다, 허랑 방탕하다(허황하고 착실하지 못하다), 건들거리다, 허틀허틀 하다' 등이 있다.
둘째 오빠 이름은 '박천원'이다. 하늘 '천'에 근원 '원'이다. 돈과 동음이의어라서 놀림도 받았을 터이다. 사람은 이름을 따라간다고 했던가. 천 원 한 장 허투루 쓰지 않고 평생을 건실하게 살았다.
엄마는 오빠에게 무슨 일을 맡기면 '비문없이(사투리인데 정확하지 않음, '빈틈없이'일까?)' 처리한다며 늘 신뢰를 보냈다. 우리도 무슨 의논할 일만 생기면 둘째 오빠를 찾았다.
'오빠, 이사하는데 돈이 좀 모자라요.'
'오빠, 이사하는데, 집 좀 보러 같이 가요.'등, 시도 때도 없이 우리 형제들은 둘째 오빠를 찾아, 의논을 했다.
착실한 형제를 두었다는 것은 행운이다. 매일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고, 가정을 돌보고 부모를 돌보고 형제를 돌보는 일을 평생 해왔다. 퇴직을 하고는 지금도 경비 일을 한다.
허황한 꿈을 꾼 적도, 요행을 바란 적도 없다. 그저 개미처럼 착실하게 일하고, 인정스럽게 나누며 한평생을 살았다.
"내가 서울에 ㅇㅇ 두 쪽 차고 와서 이만큼 산다."라며, 술 한 잔 들어가면 늘 하는 그 말은 진실이다. 혼자 힘으로 그렇게 살아왔다.
"누가 살짝만 거들어 주었으면 할 때가 많았다."라고도 한다. 기댈 곳 없이 그렇게 살아내며 참으로 신산했겠다 싶다. 기댈 곳보다는, 착실한 오빠에게 모두 기대려고만 했으니, 쓰러지지 않고,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서있는 오빠의 인생이 고달프고 힘들었겠다.
"오빠, 오빠 집이 제일 부티 나네."라며, 캐나다에서 들어와 형제들 집을 순례하는 동생은, 당연한 듯 둘째 오빠 집에 짐을 풀고,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묵어간다.
"오빠는 귀찮지도 않아요? 올케 힘들잖아요."라고 하면 "올케 그런 사람 아니다. 나도 순이 와있으면, 사람 사는 것 같고 좋다."라고 한다. 순이가 가고 나면 허전하고 서운해서 몇 날 며칠을 속상해한다.
조카들도 형제들도 모두 오빠를 따르고 사랑한다. 늘 고맙고 감사해한다. 귀하고 소중한 형제이다.
'착실 과장' 우리 오빠. 엄마 말씀처럼 모든 일을 빈틈없이 처리하고, 늘 믿고 따를 수 있게 한 우리 둘째 오빠.
착실하고 평범한 것은 아름답다. 도는 평범속에 있으며, 평범하고 착실한 삶이야말로 추앙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둘째 오빠를 통해 나는 배웠다.
오빠 얘기를 쓰겠다고 하자 몇 가지 얘기를 보내왔다. 어릴 적 시골 논두렁에서 대보름맞이 불장난을 하다가, 나일론 양말을 신은 발등까지 불에 타고, 양말이 엉겨 붙어서 살이 벗겨지고 해서 진짜 많이 아팠다고 한다. 사람들이 불 끄러 오고 난리가 났는데도 엄마는 혼도 내지 않고 그저 ' 점쟁이가 너를 밖에 내보내지 말고 조심하라고 했는데.'라고만 했다고 한다. 오빠도 자식들의 실수는 먼저 해결책을 찾지, 혼을 내지 않았다며 엄마가 참 좋은 분이어서, 감사하다고 했다.
'작은오빠'는 싫으니, '둘째 오빠'라고 하라고 했다. '큰 놈, 작은놈'하는 게 싫다고 했다. 둘째들이 야무진 이유를 알 듯도 했다.
오빠는 남자로서 무게를 잡거나 이런 것도 없다. 우리랑 수다도 참으로 잘 떤다. 친근하고 인정스러우며 공감 능력도 뛰어나, 우리가 너무 이물 없이 대해서 서운할 때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심리학 방어기제 중에'이지화(주지화)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감정은 감추고 생각만 얘기하는 것이다. 나도 그런 적이 많았다. 감정을 얘기하면, 뭔가 내가 다 무너져버릴 것 같은 공포가 있었던 것 같다. 철갑을 두른 듯 무장을 하고, 힘들어도 표현을 안 한 적이 많았다. 특히 남자들도 그런 경우가 많은 듯하다. 이런 사람과의 대화는 냉기가 느껴지고 재미가 없어 피하게 된다.
오빠는 그런 점에서 매우 자유로운 사람이다. 늘 우리를 짠하다고 하고, 감정 표현도 잘한다. 나도 이곳 제주에 와서, 새들이랑 노루랑 놀다 보니, 감정이나 감수성이 살아나서 삶이 풍성해진 느낌이 든다.
착실하게 살면서, 돈도 모으고 자식들도 잘 키웠으며, 마음까지 잘 나눌 줄 아는 둘째 오빠의 인생은 매우 풍성해 보인다. 자신을 위해서는 스스로는 절대 쓰지 못하니, 이제는 우리가 더 잘해드려야겠다.
제주의 하늘에는 요즘 구름이 많다. 곧 장마가 시작되려나 보다. 구름을 모으고 모아 장맛비를 쏟아 낼 듯하다. 장마 전 마지막 태양과, 아름다운 수국들을 어서어서 즐겨야 한다. 여름꽃들도 모두 지면, 숲은 정글이 될 것이다. 습기와의 한 판 결투도 곧 시작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