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인생의 긴 터널을 지날 때, 작은 올케는 늘 심드렁하게 딸과 나를 자기네 집으로 불렀다. 오빠는 기름이 튈까 봐 거실에 신문지를 조용히 깔았다. 부르스타를 꺼내오고, 불판을 올린다. 올케언니는 고기를 가져오고, 나는 미안해서, 집개를 뛰어들면, 늘 달라고 해서 자기가 굽는다. 올케는 삼겹살 굽기 달인이 되어 있었다.
별 얘기 없이 삼겹살을 얻어먹고, 때로는 닭백숙과 닭죽을 얻어먹고, 그렇게 돌아와 나는 힘을 내고, 터널을 조금씩 통과했던 듯하다.
"너 이사한다며. 언니가 가서 도울 거야."
"오빠, 미안하게 왜 그래요. 그냥 됐어요."
내가 잦은 이사로 힘들어할 때마다, 올케언니는 와서, 꼭 욕실 청소를 해주었다. 나는 오빠네 이사 때, 가본 적도 욕실을 청소해 준 적도 없다. 물론 직장을 다녀서라고 핑계야 댈 수 있지만, 꼭 그것만도 아니었던 것 같다.
"큰형이 남쪽은 책임지고, 내가 그 위쪽은 책임진다."라며, 딸 넷이 왜 다들 그렇게 힘들게 사는지 모르겠다며, 투덜대곤 했다. 남쪽 사는 작은 언니와, 위쪽의 여동생 둘, 큰언니를 형제가 둘이 나눠서 돌보기로 했다는 뜻이다.
오빠는 오빠다. 오빠는 늘 그런 마음으로 살았던 듯하다.
"너 아파서 수술할 때, 수술실 밖에서 6시간을 기다리는데, 그저 불쌍하기만 하더라."라고도 했다.
할머니를 가장 많이 닮은 둘째 오빠는 마음이 가장 여리고 인정이 많다. 부모님도, 형도, 누나들도, 여동생들도 그저 안타깝고 불쌍하기만 했을 것이다. 누나들은 가난했고, 아이들은 많았다. 부모님은 늘 편찮으셨고, 형 또한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다. 여동생들의 결혼 생활도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오빠도 할머니처럼 늘 애간장이 녹았을 것이다. 착한 올케와 가정을 잘 꾸려 나가며, 형제들을 내 몸처럼 돌보고 아끼고 사랑했다.
오빠는 때로 짜증도 내고 화도 내고 술도 마신다. 나는 그것도 오빠의 사랑하는 이들의 아픔에 대한 슬픔의 다른 표현이며, 사랑이며 연민의 표현임을 안다. 형제의 힘듦이 슬프고 아파서, 화가 나고 짜증이 났을 것이다.
오빠. 괜찮아. 사랑이야. 그냥 사랑해서 슬픈데, 말하지 못해서라고. 이제는 그냥 슬프면 슬프다고 해요.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여린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이 무척 약해 보이고, 세상살이에서 도태될 것처럼 느껴져 불안하기도 하다. 수많은 이별과 병고에서 오는 슬픔, 치열한 경쟁에서 오는 불안과 우울, 밥벌이를 위해 참아야 하는 부당함에 대한 분노를 우리는 마음에서 모두 처리할 수 없어, 무의식적으로 '방어기제'라는 것을 작동시킨다고 한다.
남 탓을 하는 '투사',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합리화', 마음속 저편에 차곡차곡 쌓아 놓는 '억압', 감정은 빼고 생각만 얘기하는 '이지화', 아이로 돌아가 버리는 '퇴행' 등, 스트레스 상황에서, 그 힘든 우울과 불안과 분노라는 감정에서 잠시 비켜나 있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심리학에서 말하는 '방어기제'라는 것들인 것 같다. 물론 이것들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직시가 아니라서,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덜 되겠지만, 나약한 인간이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작동시키는 것들인 것 같다. 나 또한 이 모든 '방어기제'라는 것들을 무의식적으로 잘 사용해 왔을 것이다.
오빠. 우린 안당께요. 오빠가 어떻게 표현하든, 그것이 무엇이든, 어떤 무엇이든, 모두 모두 연민이고, 액상함이고 애간장 녹는 사랑이란 걸.
오빠는 모두, 괜찮아, 사랑이야.
우리도 모두 오빠를 무척 사랑한당께요. 오빠의 녹는 애간장에는 못 미칠지라도.
그저 미안하고 감사한, 내 사랑하는 둘째 오빠.
내 사랑하는 둘째 오빠께 이 글을 바칩니다.
저 번 비 온 뒤 사려니 숲에는 때죽나무 꽃길이 수없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모든 이들! 꽃길만 걸으시기를.(특히 사랑하는 둘째 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