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힘주기, 힘 빼기

내 동생 순이

by 동백이 좋아

큰언니의 중년기에 찍은 사진을 보면, 무슨 전사 한 명이 서있는 듯하다. 쇼트커트를 하고, 몸에 잔뜩 힘을 주었다.

동생은 늘 릴랙스 그 자체였다. 부드럽고 유연하고 온화하기 그지없었다. 언니 오빠들의 각별한 사랑을 먹고, 밝고 명랑하고 행복하게 살았다. 우리는 그런 동생을 더욱더 사랑했다. 동생 옆에 있으면 그저 마음이 편했다.

그랬던 동생이 전사가 되어 나타났다. 몸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고, 몸을 잠시도 쉬지 않으며, 빠릿빠릿한 여전사가 되어 나타났다.

"언니, 나는 힘들어서 하루에 방 한 개씩만 청소한당께."라며, 제주의 간세다리(게으름뱅이) 말처럼, 느리고 여유가 있던 아이였다. 걸음도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앞으로 가는지 뒤로 가는지 모르는 몸짓으로 걸으며, 늘 그 자리에 있는 듯 느려서, 나는 속으로 늘 웃었었다. 마트라도 갈라치면 조카(동생 아들)들이 늘 엄마를 제치고 뛰어가, 먼저 물건을 고르며, 장을 대신 봐주기 일쑤였다.

그랬던 동생은 딴 사람이 되어 나타났다.

"언니, 거기서는 이렇게 아니면 못 산당께."라고 말하며, 집안 살림에 영 소질이 없는 나를 위해, 부엌의 싱크대 정리며, 그릇장 정리며, 옷장 정리까지 해 주고 갔다.

동생이 캐나다로 이민 간지 거의 18년쯤 된 듯하다. 부모 형제를 떠나, 그곳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전사 같은 모습이 적응이 안 되고 싫었다.

이는 몽땅 상해서, 서울에 오면 치과 치료를 받느라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했다. 낯선 땅에서 뿌리를 내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동생의 변화된 모습을 보면서 알았다.

동생은 막내이니 형제들에게는 각별한 애정의 대상이다. '고생은 언니 오빠가 할 터이니 그저 너는 행복하고 편하게만 살아라'라며, 동생 앞길에 있는 돌들을 치워주기 바빴다.

캐나다로의 이민은, 더 이상 동생을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한 번도 힘든 일을 해본 적도 없는 아이가, 하루 종일 서서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만들고 포장을 하는 일을 했다. 손이 빠르고 빠릿빠릿 해질 수밖에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언니, 서울 큰집에서 살 때보다 지금 작은 집이 진짜 좋당께. 맘이 편해."라고, 밴쿠버에 방 하나 거실 하나 짜리 방을 마련하고 말했다. 잘하지도 못하는 영어로 대출을 받아 가며, 어렵게 마련한 작은 집이 귀하고 좋다고 했다.

그렇게 동생은 형제들 품을 벗어나, 비로소 갖은 고생을 하며, 이민 생활에 적응했다. 아직도 몸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고, 긴장을 풀지 못하는 모습이다. 타국의 삶이라는 게 그러한가 보다.

"힘들면 걍 와부러야. 대충 언니랑 살잔께."라며, 동생의 낯선 모습에 마음이 아픈 나는 말하지만, 동생도 분명 자기가 마쳐야 할 숙제가 있고, 통과해야 할 인생의 시험이 있기에, 아직 좀 더 힘주고 살아야 할 것이다.

제주 올레길의 상징은 간세다리(게으름뱅이 사투리. 말 모양임)이다. 올레길 곳곳에 서있다. 파란 간세다리 말은 우리에게 어떻게 올레길을 걸어야 하는지 알리지만, 나는 오늘도 전사처럼 걷고 있다. 빠르게 얼른얼른.

궁여지책으로 사진을 찍으면서라도 조금 여유를 찾으려 노력하지만, 그것도 잠깐, '오늘은 이만큼은 걸어야 하는데.' 하며, 또 걸음걸이는 빨라지기 일쑤다.

간세다리 말이 말한다.

"그렇게 걸어서 으디 가려고? 으디 가냐고"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마구마구 걷는다.

동생이 어서 인생의 숙제를 끝내고, 간세다리 말이 되어 오면 좋겠다.

힘이 들어간 동생은 나를 울게 한다. 언니도 오빠도 속으로 운다.

아마, 동생은 자기도 울까 봐 눈물을 꼭 참느라 그렇게나 힘을 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4월에 잠깐 왔다가 다시 캐나다로 들어간 내 동생. 언니가 사랑한다. 그저 건강해라.

제주. 서귀포 이승악 인근 목장. 소랑 까마귀랑 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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