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좋은 사람과 맛있는 것 먹기

내 동생 순이

by 동백이 좋아

'좋은 사람과 맛있는 것 먹기'는 우리가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한다. 행복이란 게 어차피 우리가 느끼는 '좋다'라는 것의 총합이라면 말이다. 물론 좋아하는 물건을 사는 것도 그렇지만, 소비로 '좋다'라는 느낌을 계속 유지하려면, 가산을 탕진해야 할 수도 있으니, 더욱 그렇다.

내 동생 순이는 캐나다에서 한국에 오면 신이 난다. 시차 적응도 할 필요가 없다. 좋아하는 형제와 친구들을 만나, 맛난 것을 먹을 재미에, 얼굴에는 화색이 돌고 빛이 난다.

"언니, 감자 순(고구마 줄기) 노물(나물) 해놨는가? 나, 금방 언니 집 간당께."라며, 벌써부터 입맛이 돋고, 군침이 도는지 전화 목소리는 들떠있다.

부리나케 시장에서 고구마 순을 사다가, 껍질을 벗기고 이파리를 뗀다. 냄비에 물을 올리고 펄펄 끓기 시작하면 고구마 순을 넣고 데친다. 이때 손으로 살짝살짝 눌러가며, 아삭하면서 조금 푹 삶아져 짓이겨질 정도의 것도 있는지, 잘 살피며 삶는 게 중요하다.

찬물에 헹궈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싱싱한 풋고추도 듬성듬성 썬다. 이제 식초를 넣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시중의 식초들은 시골에서 먹던 그 맛이 안 난다. 나는 비장의 식초, 언젠가 우연히 산, '한살림' 식초를 친다. 시골의 소박하고 강하지 않은 식초 맛이 필요했다. 음식에서 강한 식초 맛만 따로 놀지 않고, 식초를 친 듯 만 듯, 뭉근하게 속으로 배어들어 깊은 맛이 나는 식초 말이다.

식초 다음은 된장이다. 이것도 가능하면 시골 된장을 써야 한다. 참기름도 넣고 깨소금도 듬뿍 넣고 빠락빠락 양념이 잘 배어들게 주무른다. 어떤 것은 아삭아삭, 어떤 것은 짓이겨진 듯, 반반쯤 섞인 고구마 줄기에 양념 맛이 밴다.

"언니! 감자 순 노물 했는가."라며, 언니 보다, 그것을 먼저 찾는다.

"오메오메, 진짜 그 맛이네잉. 시상에 맛난그, 징하게 맛나네."라며, 정신없이 먹는다.

'아이고, 참. 그것이 뭐라고 저랐까(저럴까)'하며, 흐뭇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다. 치과치료 때문에, 먹고 싶을 것을 못 먹은 적이 있다. 세상을 다 잃은 표정이라니.

생존에 기본인 먹는 욕구가 채워지면 우리는 행복하다. 연약한 인류가 생존을 위해서는 집단이 되어야 했던 만큼 사람들과 함께 먹으면 더욱 행복한가 보다.

이민생활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키기가 어렵겠다. 한국에서 고춧가루며 된장까지 가져가, 한식만 먹으며 산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먹어야 하는데, 이것이 최근 해결된 듯하다.

손녀딸! 그렇다. 마법의 인간 손녀딸!

손녀딸을 보며 동생은 부평초처럼 내리지 못했던 뿌리를 비로소 그곳에 내릴 듯하다. 돌봐주어야 할, 넘치는 애정을 마음껏 쏟을 대상이 생긴 것이다.

"내 동생 순이야. 요새 니 얼굴이 완전히 폈다. 언니도 좋다. 니가 행복해서 좋다. 이제 감자 순 노물 안 먹어도 되제? 그래도 해놓고 기다리마. 늘 행복해라."

숲 속에서 밥을 먹으려 앉아 있으면, 까마귀도 오고, 노루도 온다. 새도 음악을 연주해 준다. 나도 좋아하는 이들과 같이 맛나게 먹는다. 행복하다.

제주, 서귀포, 이승악 초입, 숲, 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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