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니단이

내 동생 순이

by 동백이 좋아

큰놈, 작은놈(간뎃놈), 시바, 니바, 오바, 육바.

큰가, 장가(간뎃년), 시단이, 니단이, 오단이, 육단이.

아들은 -바, 딸은 -단이.


나는 시단이, 내 동생은 니단이이다.

두 살 차이인 동생을 나는 업어 키웠다. 이건네 밭에서 고구마를 캐다가, 비라도 올라치면, 나는 냅다 동생을 업고 집으로 달렸다.

니단이는 치절거리라고 했다. 막내로 태어나 몸도 제일 약하고 야리야리하다 보니, 엄마는 늘 치절거리라 그렇다고 했다. '치절거리'란 맨 마지막에 남은, 쓸모없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동생이 쓸모없다기보다는, 다른 형제들처럼 건강하게 낳아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뜻이 많았던 것 같다.

진도는 섬이라 비바람이 많았다. 니단이는 검불데기(마른풀, 마른 낙엽처럼 가벼운 것) 같다며, 학교에 오다가다 바람에 날아가 버릴까 봐 늘 걱정이었다.

하루는 집에 오니 난리가 나있었다. 니단이가 집에 없단다. 벌써 학교에서 돌아와 집에서 혼자 놀고 있어야 하는데, 집에 없으니 엄마가 온 동네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글쎄, 친구 미선네 집에서 멀쩡하게 놀고 있었다는.

내가, 나무 하기며 물 긷기, 리어카 끌기며 김매기를 할 때 니단이는 늘 탱자 탱자 하며 놀았다. 내가 성인 몫의 일을 할 때, 동생은 나무를 해오라 하면, 아주아주 작은 나무 동이를 머리에 이고 오니, 그저 웃음만 나올 뿐, 일을 전혀 시키지 않았다. 주로 내가 업고 다니거나, 리어카를 태워 다니거나 했다.

한 번은, 엄마랑 목포에 다녀오다가 큰일이 났다. 버스가 굴러 떨어져서 할머니 한 분까지 돌아가신 적이 있었다. 작고 여린 니단이는 죽었을 거라며 집안에서 울고불고 난리가 났는데, 멀쩡히 살아 돌아왔다. 버스 의자 밑에서 발견됐다나 뭐라나.

동생과 나는 학교도 거의 같이 다니며, 항상 붙어 있었다. 서울에서도 같이 자취를 했다. 지금도 추운 겨울에, 진분홍 코트를 입고, 구두를 또각거리며, 구의역까지 걸어가던 뒷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는 연탄불에 밥을 하고, 근처 시장에서 장을 봐다가 이것저것 반찬을 해놓고, 동생의 늦은 귀가를 기다렸다.

할머니 혼자 사는, 잠실 ㅇ주 아파트 문간방에서도 둘이 자취를 했다. 퇴근 시간이 늦은 동생이 씻느라 시끄럽다고, 할머니가 어찌나 뭐라 하는지, 얼마 못 살고 거기서는 나왔다.

그런 동생이 결혼해서 아들을 둘이나 낳고, 아들들한테 소리 지르느라 목이 다 쉰다고 하며, 씩씩하게 잘 사는 것이 우리에게는 신기하고 그저 기특했다.

동생이 연애할 때 둘만 홍도를 간다고 해서 나도 따라갔다. 나중 얘기로는 그래도 할 거는 다했다고 했다.

그렇게 붙어 있던 우리가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지낼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한 일이었다. 동생이 캐나다로 가면서 나도 그야말로 멘붕이 왔다. 직장 생활에 바쁜 나를 친정엄마처럼 돌봐주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사라졌으니, 나의 진정한 인생 고난도 이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물론 동생도 그랬을 것이다.

'최선의 고통'이라는 책이 있다고 한다. 즐거움을 위해서는 고통이 필요하다는 역설적인 내용인듯하다. 선택적 고통은 사람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궁극적으로 행복에 기여하므로, 고통과 쾌락의 가운데서 최선의 지점인, 견딜 수 있는 최선의 고통을 찾으라는 것이다.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선택적 고통이 행복을 준단다. 견딜 수 있으며, 우리를 더 강하게 할 수 있는 지점의 고통을 선택하라는 것인데, 동생과 나도 무의식적으로 그러지 않았나 싶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먼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이 같은 꽃.'이, 시단이와 니단이는 되었을까.

쾌락에는 금방 적응해 버려, 결국 쾌락을 위해서는 뇌를 완전히 리셋하고, 최선의 고통을 견디며, 더욱 강해지고 행복해지는 그 어느 지점을 우리도 통과한 것일까.

동생도 이제 누구네 '니단이'가 아닌, '자기'로 당당하게 우뚝 서가고 있는 것 같다. 바람에 쉬이 날리는 '검불데기'가 아니라,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뮐쎄, 꽃 됴코 여름 하나니.'처럼, 이역만리 머나먼 타국 땅에서,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진정 본인 만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을 것이다.


오늘따라, 한라산 영실의 소낭(소나무), 비바람과 눈보라에도 단단하고 굳센 저 소낭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니단아! 언니랑 영실 소낭 보러 한 번 가자꾸나. 꼭 또 오길!

제주. 한라산. 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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