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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이 Mar 22. 2021

내가 노마드 워크족으로 살 줄이야

나를 지탱해주는 고마운 이들에게

“실장님, 중국엔 언제 오세요?”

작년 여름에 집을 구해 준 고객이 나의 계획을 묻는다. 내 고객이지만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다. 한국의 카톡과 비슷한 중국의 위쳇(wechat)이라는 앱을 통해 몇 번의 통화를 하고 집을 구해주고 입주를 했다. 입주 후에도 일이 있을 때마다 역시 위쳇(wechat)으로 소통을 한다.

작년 1월 중국 우한에서 시작한 코로나는 사스나 메르스처럼 특정 지역에서 몇 달 유행하다 말 거라는 내 예상을 깨고 1년 넘게 발목을 잡고 옴짝달싹 못하게 막고 있다.

많은 나라들이 국가와 국가 간 이동을 할 때 격리 기간이라는 것을 만들어 놓고 웬만하면 움직이지 말 것을 종용하고 있다. 내 일터인 중국 서안은 격리 기간이 무려 28일이다. 그리고 다시 가족들 곁으로 돌아올 경우엔 일주일 격리를 더 해야 한다. 그럼 두 나라를 오고 가야 하는 내 사정상 한 달 넘는 격리는 아무리 고민을 해도 무리이지 싶다.

나도 내 고객들의 모습이 매우 궁금하다.


난 노마드 워크족이다. 노마드 워크족이란 노마드(Nomad)와 워킹(working)의 합성어에서 나온 말인데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모바일 기기를 이용해 밖에서 이동하며 일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조금은 일반적이지 않은 직장인의 형태라고 한다.

단어조차도 생소한 이 말이 내 삶이 되어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신조어들이 범람하는 세상에 살면서 파이어족, 욜로족, 딩크족 같은 낯 선 이 종족의 구분들이 마흔을 훌쩍 넘어 오십을 향하고 있는 나에게도 하나의 종족의 자리를 내어줄 줄은 말이다.

어디에 얽매여 일하는 것을 갑갑해해서 동업 하자는 중국 친구들의 유혹에도 꿋꿋하게 버티며 <난 자유로이 살 거야>를 주장했고 그 목소리가 어느새 내 삶에 스며들어 지금의 나를 노마드 워크족으로 살게 하고 있다.

인생이 때로는 선물처럼 뜻밖의 세상을 안겨주는데 이것은 어쩌면 무심코 신호를 보냈던 끊임없는 의지들이 내 소우주 안에서 보이지 않는 작업들을 하며 준비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직업은 해외 부동산 중개인이다. 부동산 중개인이 어떻게 노마드 워크족처럼 살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면대면으로 만나 집을 보여주고 마주 앉아 계약서를 체결해야 가능한 일들을 어떻게 제약 없이 할 수 있다는 거지? 그런데 어쩌다 보니 운명처럼 이렇게 일하는 게 가능해졌다. 더욱이 최근 1년 넘게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전 세계에 유행하는 바람에 난 내 삶의 형태에 당위성까지 부여받을 수 있게 되었다.


난 여행과 자유를 무척이나 사랑한다. 열심히 일에 몰두해서 돈을 버는 일들이 이 두 가지를 누리기 위해 하는 거라고 선포할 정도이다.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 세포인 역마살은 내 몸에 내재되어 있다가 세월을 따라 점점 자라나는 것 같다.

걸음이 자유롭기 시작한 다섯 살 때부터 할머니와 동행하기 시작한 여정(旅程)은 글자를 읽기 시작한 국민학교 때부터는 혼자서도 즐길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여러 시도를 하기에 이른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국민학교 4학년 때 절정에 달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벗어나 할머니가 머물고 있는 도시까지 버스 타고 기차로 세 시간, 전철로 갈아타고 두 시간 걸리는 거리를 어른의 동행 없이 대담하게 혼자 시도했다. 그 시절에도 열한 살 짜리가 충청도 시골에서 인천까지 혼자 가는 건 맹랑한 일이었고 지금 우리 아이들에 비교를 하자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한 것을 난 별 두려움 없이 자행했던 걸 보면 역마살도 나이 따라 성장했음을 의심치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다른 세계를 늘 동경하는 버릇은 어른이 되어서는 한 곳에 안주할 수 없게 만들었다.

남편 유학을 핑계로 중국 대륙을 횡단하며 세 도시에서 각각의 다양한 삶과 문화를 누렸다. 중국은 대륙이라는 말처럼 워낙 땅덩어리가 넓어서 이삿짐 차가 도착하는 데만도 2박 3일의 시간이 소요된다. 어찌 보면 하나의 거대한 도시가 우리나라 크기만 하다고 볼 수 있다. 이주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역마살의 강한 파동이 매번 정착이 주는 여유보다 강했던 모양이다.

세 번째 머물게 된 서안에서는 나름 안정적이고 인정받는 일자리가 있었음에도 살며시 다시 고개를 든 역마살은 마침내 내 영혼을 흔들어 나라를 바꾸는 기록을 한 번 더 만들었다.

하지만 아빠로부터 어린 시절 내내 보아온 것은 책임감이다. 우편 배달원이었던 아빠는 가족들의 경조사 치를 때를 제외하고는 정년퇴직까지 단 한 번 결근한 적이 없었다. 가끔은 몸살이 나서 꾀가 나기도 했으련만 몇십 년을 한결같이 개근하는 모범을 보였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아빠의 일을 사랑했다.

아무리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을지라도 책임을 벗어난 자유는 나 스스로가 용납이 안되었다. 서안에서 6년 동안 일하면서 쌓게 된 내 인맥들과 관리하고 있는 집주인들, 그리고 고객들이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무엇보다 나는 내 일을 너무 좋아했다. 자유의 달콤함 만큼이나 일의 성과가 주는 짜릿함을 쾌감으로 느꼈으니 스스로를 워커홀릭이라고 자칭할 만큼 일에 푹 빠져 살았다.


나라를 옮겨 이주한 곳은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이다. 몇 번의 여행만 생각하고 오가던 말레이시아였는데 어느새 난 MM2H라는 이민 비자를 준비하고 있었고 아이들의 학교를 알아보며 옮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음엔 늘 품게 되는 <일단 가보고 아니면 그때 다시 생각하자>는 일념뿐이었다.

다행히 이주한 쿠알라룸푸르와 서안 두 지역에는 에어아시아라는 저가 항공의 직항이 날마다 있어 내가 원할 때는 언제든 바람같이 날아갈 수 있었다. 비록 비행시간이 다섯 시간이 넘는 쉽지 않은 구간이었지만 일에 대한 책임감과 아이들에 대한 사랑은 두 나라를 오가는데 기꺼이 고소 공포증 마저도 참아낼 수 있게 만들었다.

서안에 도착하면 쿠알라룸푸르 에서의 생활이 꿈만 같았고 다시 쿠알라룸푸르로 가면 서안에서의 일들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다행히 세상은 핸드폰과 와이파이만 있으면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소통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내가 잠시 그 자리를 비워도 고마운 인맥들이 내 공백을 메워주었다.


그렇게 1년 6개월 동안을 여권에 스탬프 찍히는 게 두려울 정도로 자주 오가며 일에, 그리고 내 또 다른 삶에 열중했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지고 갑자기 내 인생 계획에는 없던, 아니 누구의 인생에도 이런 긴 전쟁과도 같은, 세상 속에서 많은 것들과 단절해야 하는 삶이 펼쳐질 거라고는 예상을 못했을 것이다.

이런 단절된 세상 속에서 나 또한 1년이 넘는 시간여를 내 고객들 얼굴도 못 보고 집을 구해주고 가구를 세팅해 주고 집의 하자 처리를 해주는 일을 핸드폰 하나만 들고 하고 있다. 아침이면 내 위쳇에는 이미 일찌감치 출근한 고객들이 나를 찾는 메시지가 줄줄이 대기 중이고 난 그 일을 그들과는 다른 나라에서 처리하고 있다.


아무리 핸드폰과 와이파이로 일하는 노마드 워크족이지만 나의 일을 도와주는 숨은 조력자들은 모두 나의 소중한 인연들이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은 시각까지 내 고객들의 하자 처리를 도와주는 조우 아저씨, 대신 계약서를 출력해 이 곳 저곳으로 보내주는 엉클, 세무국에서 영수증을 끊어 고객들에게 보내주는 레온, 그리고 나의 잔 업무를 기꺼이 도맡아서 처리해 주는 리샹, 내 대신 고객들에게 집을 보여주는 의리파 조 사장과 아르바이트생 견희 씨 등 이들이 없었더라면 내가 원하고 꿈꾸던 이 삶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도 일이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요즘 세상이 아무리 기계가 인간의 삶 곳곳의 영역을 편리하게 해주고 있다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근본은 역시 사람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난 이들이 코로나란 위험 속에서 오늘도 꿋꿋하게 잘 살아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내일도 여전히 안녕하길 바란다는 기도를 하게 된다. 언제쯤 이들을 다시 마주할 수 있을지 아직은 미지수이다. 이 삶이 운명처럼 갑자기 나에게 와준 것처럼 어느 날 정신 차려보니 이들과 마주하고 앉아 지금의 이 코로나란게 꿈 같이 지나갔다고 웃으며 말할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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