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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이 Feb 02. 2022

설렘을 찾아서

설레지 않는다고 슬퍼하지 말자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가슴 설레느니,

나 어린 시절에도 그러했고

다 자란 오늘에도 매한가지,

쉰예순에도 그렇지 못하다면

차라리 죽음이 나으리라.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바라보니 나의 하루하루가

자연의 믿음에 매어지고자.

<윌리엄 워즈워스의 '무지개' >



새해 초에 기숙학교로 옮긴 아들이 인스타그램에 아침에 샤워하다 무지개를 보았다며 사진을 찍어 올렸다. 한창 사춘기인 감수성이 풍부한 아들 눈에는 샤워하다 갑자기 발 밑에 드리워진 무지개가 설레었으리라.

사춘기가 시작된 시점에서부터 아들은 여러 감탄사를 많이 쓰기 시작했다. 본인 스스로는 느끼지 못하겠지만 찰나의 순간들이 감정을 마구 흔들어놓아 저절로 감탄사가 나오는 듯했다. 하고 싶은 일,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은 왜 그렇게 많은지 이젠 엉덩이를 떼려면 끙하는 마음의 소리부터 내야 하는 나이가 되어버린 난 억지로 이리저리 끌려 다녔다.


마흔을 넘은 지 진작이다.

사십 대 초반엔 아이들이 어렸고 나도 일이 바빠 정신이 없었으니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라는 불혹의 의미를 몸소 깨달을 새도 없었던 것 같다. 불혹은 진정한 성인이 되어가고 있는 발판으로 들어서는 입문의 나이이기도 하겠지만 살아보니 설렘을 잃어가는 나이였다. 불혹은 '혹~"하고 미혹되지 않는 참으로 안타까운 나이인 것을 한 해 한 해 채워갈수록 느끼겠다.


새해가 왔다고 설렘으로 맞는  나이는 진작 지났다. 이젠 내 나이를 꼽아 보는 행위를 잊은 척 하고 싶다. 나이 들어 제일 아쉬운 게 있다면 이젠 정수리마저 침범한 흰 머리카락도 아니요, 탄력을 잃어가는 늘어지는 얼굴살도 아니다. 누가 꼰대 마인드를 갖고 있다고 비꼬아 대는 것도 참을 수 있다.

설레지 않는 것, 그것이 가장 나를 슬프게 한다. 산해진미 별미 음식을 만나도, 유리문 앞에서 예쁜 옷과 마주해도, 종이 냄새가 물씬 나는 새 책을 펼쳐도 아주 오래 묵혀왔던 감정들만이 내 마음 안에서 회전하고 있는 느낌이다.



요즘 나의 연구 대상은 무엇을 하면 다시 설렘을 찾을 수 있을까이다. 살아보니 이런 설렘은 누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내는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과 같은 것이었다. 새해가 카운트 다운되기 며칠 전부터 찾았던 설렘 찾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영어 공부를 다시 해보겠다고 스터디 모임에 나가보고, 기록을 제대로 남겨 보겠다고 블로그에 집중도 해보고, 군살을 줄여보겠다고 성인 발레에 도전을 하고.......



여전히 두근대는 설렘은 찾지 못했지만!

다행히 무지개를 보고 설레지 않는다고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은 아직까지 들진 않는다.


설레는 순간과 마주하기 위해 고민하고 약진하는 지금이 그래도 나았다는 생각이 먼 훗날 들겠지.




#별첨#

어쩌면 설레이기는 생각보다 쉬운 걸 수도 있다.

얼마 전 50대 성인들이 가장 많이 읽었다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아직은 40대인 내가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훅 고 들어온 부분이다.


그는 남자나, 꽃핀 나무, 냉수 한 컵을 보고도 똑같이 놀라며 의문을 갖는다. 조르바는 모든 사물을 매일 처음 보는 듯이 대하는 것이다. 전날 우리 둘은 오두막 앞에 앉아 있었다. 포도주 한 잔이 돌았을 때 그가 놀란 듯이 나를 돌아다보았다. <두목, 이 빨간 물이 대체 뭐요? 말해봐요. 늙은 그루터기에서 가지들이 뻗어요. 거기 처음에 달리는 것은 시큼털털한 구슬 뭉치일 뿐이에요. 시간이 지나고 태양이 이것을 익히면 마침내 꿀처럼 달콤한 물건이 되지요. 이게 포도라고 하는 겁니다. 이 포도를 짓이겨, 우리가 술고래 성 요한의 날 열어보면, 아! 포도주가 되어 있지 뭡니까. 이런 기적 같은 일이 또 어디 있겠어요! 빨간 물을 마시면, 오, 보라. 간덩이가 몸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커지고, 하느님께 시비를 겁니다. 두목, 말해봐요. 대체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요?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 


자연인처럼 자유롭게 살았던 그의 삶의 모양이 부러운 게 아니라 깨어있는 감각적인 자유가 부러웠다. 스스로의 감정을 눈치채고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여 내 것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설레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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